[허행운의 굿럭항저우] 관객 없는 런웨이가 돼버린 믹스트존… 찾는 이 없는 외로움만이

4일 배드민턴 경기가 열린 항저우 빈장 체육관의 믹스트존. 비인기 선수간의 매치업이 열리자 믹스트존이 텅 비어있다. 사진=허행운 기자

 

사뭇 쓸쓸한 퇴근길이다.

 

국제 스포츠 대회가 열리면 많은 사람들이 평소에 잘 모르고, 잘 보지 않던 종목 경기를 접하게 된다. 월드컵과 같은 특정 종목 대회가 아닌, 종합 대회라 그럴 수밖에 없다. 다들 한 번쯤은 채널을 돌리다 리모컨을 멈춘 기억이 있으리라.

 

기자는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첫 국제 대회 출장이다. 그래서 그 빈도가 더 잦아졌다. 스포츠를 업으로 삼았기에 최대한 많은 종목에 관심 가지려 하지만, 전 종목 척척박사가 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항저우에서 새로이 접하는 나만의 ‘비인지·비인기 종목’들이 참 많았다. 종목만이 아니다. 인기 종목 안에도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나만의 ‘비인지·비인기 선수’들이 즐비했다.

 

현장을 누비면 그 선수들까지도 얼굴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TV로 보는 것과 달리 눈과 눈을 맞추다 보면, 사람인지라 더욱 그들이 신경 쓰인다. 특히 경기 후 선수들을 만나는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서 있을 때면 더욱 그렇다.

 

말 그대로 모두가 뒤섞이는 장소다. 메달리스트, 스타 플레이어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담으려는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루기 마련이다. 녹음을 위해 스마트폰을 들이미려면 숱한 몸싸움에서 승리해야만 하는 전쟁터다.

 

다만 비인지·인기 종목 및 선수들의 믹스트존은 그 명칭이 무색하다. 섞일 재료가 없다는 표현이 딱 맞겠다. 선수들은 있지만 찾는 기자가 없다. 순진한 눈을 뜨고 소임을 다하는 자원봉사자들만 자리를 지킨다. 말을 거는 사람이 없으니 선수들은 관객 없는 런웨이를 걷듯 쓸쓸히 그곳을 지나쳐 간다.

 

네팔의 마하르잔 라실라가 찾는 기자가 없는 믹스트존을 돌아 나서고 있다. 사진=허행운 기자

 

4일 배드민턴 종목이 펼쳐진 항저우의 빈장 체육관을 찾았다. 여자 단식 16강에서 중국의 허빙자오를 만나 0-2로 완패한 네팔의 마하르잔 라실라가 한 바퀴를 돌 믹스트존을 들어가 봤다. 휑했다. 허빙자오를 만나려는 중국 기자만 한 명 있었을 뿐, 그를 보려는 네팔 기자조차 없었다. 나만 스마트폰을 들고 런웨이를 걷는 라실라를 찍고 있었을 뿐이다.

 

용기 내 말을 걸어봤다. 소감을 묻자 웃으며 “Did my best(최선을 다했다)”라고 답했다. 패배가 아쉽지 않냐고 묻자 “물론이다(Of course)”며 고개를 까딱했다. 이어 “하지만 큰 대회에 나섰다는 것으로 정말 기분 좋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환상적이다”며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줬다. “땡큐”라고 답했다.

 

생전 처음 보는 기자를 보고도 친절하게 웃어주는 그를 보니 말 걸기를 잘했다는 뿌듯함이 들었다. ‘어쩌면 누구보다 말을 하고 싶진 않았을까?’ 싶었다. 그리고 태극마크를 단 누군가도, 지금 어느 체육관에서 그 감정을 느꼈으리라는 생각에 닿았다.

 

4일 양궁 컴파운드 혼성 단체전이 열린 항저우 푸양 인후 스포츠센터의 믹스트존. 기자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사진=허행운 기자

 

이곳에 오고 관성처럼 메달 유력 종목을 쫓아다니고, 스타 선수의 뒤를 밟는 게 일상이 됐다. ‘기삿거리’라는 뚜렷한 명분이 뒤를 받쳐줬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군가의 이야기를 놓치고 있다는 걸 실감하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비인기 종목의 관심을 촉구하고, 메달 색을 신경 쓰지 말자는 ‘대의적인’ 문장을 가끔 적어왔다. 이제 선뜻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다. 대회가 끝나기 전에 내 동료들이 없는 텅 빈 믹스트존을 몇 번은 더 찾고 나서야, 그 문장을 다시 적을 수 있을 듯하다.

 

항저우=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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