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談談한 만남]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는다...하석주 감독, “대학축구의 현실에 맞게 준비해야”

아주대학교 하석주 감독.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과거 많은 인기를 누리며 축구선수 육성의 산실이었던 대학축구가 명성을 잃어가고 있다. 프로선수가 되지 못하면 실패라는 인식을 갖게 돼 젊은 나이에 꿈을 접는 경우도 늘었다. 더불어 대중의 관심에서도 점점 멀어졌다. 하석주(55) 아주대학교 감독은 위기 속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다. 대학축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 대학에 발을 들이다

 

하 감독은 아주대를 거쳐 부산 대우(현 부산 아이파크)에서 프로에 데뷔한 후 세레소 오사카, 비셀 고베(이상 일본), 포항 스틸러스를 거쳤다. 국가대표로도 95경기에 나서 23골을 기록했다. 현역 시절 ‘왼발의 달인’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그는 “축구인이라면 다들 현역 시절이 가장 좋았을 것 같다”고 웃은 뒤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전했다.

 

별명처럼 윙 포워드(측면 공격수)부터 미드필더, 윙백(측면 수비수)에 이르기까지 왼쪽 전 포지션을 소화했다. 하 감독은 “경기 운영을 할 줄 알면 다양한 위치에서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 감독님들의 선택에 따라 여러 포지션을 경험했는데 가장 잘 맞는 자리는 윙백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다만 오른쪽 윙 포워드로 뛰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윙 포워드는 스피드를 활용해 단순히 크로스를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현대 축구에선 왼발잡이가 오른쪽에, 오른발잡이가 왼쪽에 배치되면 스피드를 활용할 수도 있고 페널티 박스로 진입해 슈팅을 때리기도 좋다. 다양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돌아봤다.

 

포항, 경남FC, 전남 드래곤즈 코치를 거쳐 2011년 모교인 아주대학교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다 2012년 8월 전남 지휘봉을 잡고 강등권에 허덕이던 팀의 1부리그 잔류를 이끌었다. 2015년 아주대로 돌아와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하 감독은 “처음부터 대학교 감독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외국에 나가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여러 경험을 쌓으려고 했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면서 “저는 감독이 됐을 때 누가 관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전권을 주길 원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시민구단들이 외부의 요인으로 휘둘리는 것을 많이 봤다. 구단주가 바뀔 때 감독들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지도자에 회의가 들 정도였다”고 밝혔다.

 

하 감독은 오랜 기간 아주대를 이끌면서 인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축구가 팀 스포츠인 만큼 선수들끼리 잘 어울리는 것도 필요하다. 그는 “인성과 예의범절이 중요하다. 어릴 때부터 그런 부분을 잘 배운 선수들도 있지만 행동이 보기 좋지 않은 선수들이 있다. 그런 것들은 확실하게 가르치고 넘어가야 한다”고 철학을 밝혔다.

 

◆ 위기의 한국 축구

 

대한민국과 일본의 축구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최근 각급 대표팀은 일본에 5경기 연속 0-3 패배를 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인프라부터 차이가 크게 난다. 현역 시절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하 감독도 이 부분을 걱정했다. 그는 “예전에는 축구를 즐기는 인구가 많아서 잘하는 선수도 그만큼 다양했다. 최근 인구절벽(생애주기에서 소비가 정점에 이르는 연령대인 45~49세의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는 시점)이 심화되면서 초등학생들도 점점 줄고 있다. 학생들이 없다 보니 좋은 선수가 많이 나올 환경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에선 대학 선수들이 프로와 계약을 맺더라도 학교를 졸업하고 진출한다.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지금 한국은 애매한 상태다.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는데 공부를 추구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운동량도 부족해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됐다. 일본 선수들과 갈수록 기량 차가 날 수밖에 없다. 격차가 벌어져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걱정했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대학축구는 특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프로축구 K리그에서 22세 이하 의무 출전 규정을 실시하면서 대학교 2학년 때까지 취업이 되지 않으면 축구선수를 그만두는 선수도 늘고 있다. 오로지 프로선수만 바라본 선수들이 꿈을 쉽게 포기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하 감독은 “배준호(스토크 시티)는 고교 시절 랭킹 1위였다. 연습 경기를 하면 확실히 달랐다. 고교 때부터 뛰어난 선수들은 프로에 가는 것이 맞다”면서 “그렇지 않은 선수들은 대학에서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뒤늦게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도 있다. 프로선수가 아니라도 졸업해서 지도자, 에이전트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 되는데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아주대학교 하석주 감독.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 돌파구를 찾다

 

아주대는 2015년 대학축구 최초로 프런트를 도입해 홈경기 운영, 홍보 등을 도맡아 하고 있다. 또 대학축구 U리그 홈 개막전을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 하 감독은 올해 현역 시절 함께 뛰었던 동료들을 초청하고 예능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 출연진을 초대해 시축을 진행했다.

 

그는 “과거 많은 지원을 받았던 아주대였지만 제가 돌아올 당시만 하더라도 다소 침체됐다. 총장님, 수원시와 협조를 받아 교내에 인조잔디를 까는 것부터 시작했다. 후원회도 만들고 프런트도 구성했다. 재밌게 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면서 “이벤트도 하고 축구인들도 초청하면서 대박이 났다. 올해 홈 개막전에는 2000명 가까이 찾아왔다. 해마다 규모가 커지고 있다”고 웃었다. 처음에는 낯설어했던 선수들도 이제는 부담감을 털어내고 즐기고 있다.

 

하 감독은 “대학생들이 운동부 하나에 관심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 다양한 흥밋거리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축구를 통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도록 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대외적으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 감독은 지난 5월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직을 맡아 학교 축구와 엘리트 선수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초등학교, 중학교 경기도 찾아다니면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뿐만 아니라 한국프로축구연맹과도 얘기하는 중이다. 장기적으로 K리그1이 16개 팀 정도는 운영돼야 한다. 그래야 선수들의 선택지도 넓어질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 아시안게임을 바라보며

 

하 감독은 현역 시절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4위를 기록했다. 당시 4강에서 우즈베키스탄을 만나 압도적인 경기를 펼쳤지만 실수 한 번에 무너진 아픔이 있다. 그는 “당시 8강에서 일본을 이겼기 때문에 분위기가 좋았다. 4강도 상대를 압도했으나 실수 한 번에 패배했다. 단판 승부가 무섭다는 것을 제대로 느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면서 “지금 우리 선수들에게는 군 면제라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다. 선수들에게 따로 얘기하지 않아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웃었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은 23세 이하 선수들만 나설 수 있다(1년 연기된 항저우 대회는 24세 이하 선수들로 구성). 연령과 관계없이 3명을 선발하는 와일드카드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부터 도입됐다. 하 감독은 황선홍, 이임생과 함께 한국 최초의 와일드카드였다. 그는 “당시에는 되게 부담스러웠다. 어린 선수들에게 권위적으로 해서도 안 되고 빨리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우리보다 더 잘 이끌 것 같다”고 바라봤다.

 

오랜 시간 인연을 이어온 황 감독에게도 응원의 메시지를 건넸다. 하 감독은 “황 감독은 와일드카드도 해봤기 때문에 필요한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경험이 많지만 부담감도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많은 준비를 할 텐데 본인이 하고자 하는 축구를 잘 펼치고 금메달을 따서 금의환향했으면 좋겠다”면서 “상대는 우리나라가 강하다는 것을 알고 수비 라인을 내려서 버틸 것이다. 그런 부분에 말리지 않는다면 잘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정서 기자 adien10@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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