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 항저우의 ★] ‘태권도 간판’ 장준이 안은 특명… 무너진 종주국 자존심 살려라

태권도 국가대표 장준이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충북 진천군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훈련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47억 아시아인의 최대 스포츠축제, 하계 아시안게임(AG)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23일부터 10월 8일까지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다. 당초 지난해 9월 열릴 예정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1년 연기됐다. 2024 파리하계올림픽을 약 10개월 앞두고 열리는 만큼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태극전사들의 각오도 남다를 수밖에 없을 터. 구슬땀을 흘리며 항저우 하늘에 태극기를 휘날릴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정상을 향해 시동을 거는 태극전사들의 면면을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가 조명하고자 한다.

 

‘금빛 발차기’가 절실하다.

 

한국의 국기(國技) 태권도는 아시안게임(AG)에서도 손꼽히는 효자종목이다. 1986년 서울 AG에서 정식 종목이 된 후, 통산 53개의 금메달을 수확했다. 사격(63개), 복싱(59개) 다음으로 많다. 하지만 실력 평준화로 인해 종주국의 위용이 예전 같지 않다. 다가올 2022 항저우 AG에서 금빛 질주가 필요한 이유다. 한국 태권도 간판 58㎏급 장준(23·한국가스공사)이 그 선봉에 선다.

 

◆혜성 같은 등장

 

2살 터울의 형이 도복을 입은 모습이 부러웠던 소년 장준은 7살에 처음으로 자기 도복을 가졌다. 하지만 순간의 동경은 잠깐의 불꽃으로 끝났다. 그러나 아들의 운동신경을 눈여겨본 아버지의 강한 의지와 그의 지인 태권도 관장의 추천이 계기가 되면서 장준의 인생으로 다시 ‘태권도’가 들어왔다.

 

초등학교 4학년에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홍성중 3학년이던 2015년, 제주평화기에서 첫 전국대회 우승으로 시동을 걸었다.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린 그는 홍성고에 진학하자마자 주니어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2016년 주니어 세계선수권 대회 밴텀급 우승, 2017년 주니어 아시아선수권 우승이 줄을 이었다. 성인 국가대표에도 처음 발탁돼 월드 그랑프리에도 첫 출전(32강 탈락)하며 경험을 쌓았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AG 대표 선발전에서 눈도장을 찍었다. 2014 인천 AG 금메달리스트 김태훈을 상대로 예상을 뒤엎고 2차 결승전에 연장까지 치르는 대혈투를 펼쳤다. 감점 수에서 밀려 아쉽게 티켓을 놓쳤지만 모두의 뇌리에 ‘무서운 고교생’ 장준을 새겼다.

 

◆끊임없는 성장

 

에이스의 길을 걸었다. AG 불발의 설움을 그해 아시아선수권 우승, 월드컵 단체전 우승으로 달랬다. 모스크바 2차 월드 그랑프리에서도 짜릿한 우승과 함께 한국 역대 최연소 금메달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11월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준결승에서 김태훈을 꺾고 또 금메달에 도달했다.

 

스무살이 된 2019년도 경사가 쏟아졌다. 영국 맨체스터 세계선수권 대회에 처 출전해 곧바로 우승에 닿았다. 세 번의 월드 그랑프리도 모두 휩쓸며 세계랭킹 1위에 처음 등극했다. 그랑프리 파이널은 준우승했지만, 세계태권도연맹이 그를 ‘올해의 남자 선수’로 선정할 수밖에 없는 활약이었다. 당시 기준 이 상을 4번이나 차지했던 ‘레전드’ 이대훈을 이은 후계자가 바로 그였다.

 

장준이 우승 후 태극기를 펼치며 세리머니하고 있다. 사진=세계태권도연맹 제공

 

◆불가피한 위기

 

꿈에 그리던 2020 도쿄 올림픽이 찾아왔다. 생애 첫 진출을 노린 그는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김태훈에게 2연승을 일궈 티켓을 차지했다. 2016 리우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자 세계선수권 3회 우승에 빛나는 선배를 또 무너뜨린 완벽한 세대교체였다.

 

걸림돌이 발생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올림픽이 연기됐다. 타 국제대회도 전부 제동이 걸렸다. 실전 감각 부재에 신음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1년 후 열린 올림픽에서 기대하던 금빛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무명이던 튀니지의 모하메드 칼릴 젠두비에게 준결승서 이변을 허용해 체면을 구겼다.

 

포기하지 않고 따낸 동메달은 위안이었지만, 한국 태권도 전체가 슬럼프에 빠진 충격은 씻어지지 않았다. 장준 포함 대표팀 전원이 ‘노골드’에 그쳤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2000년 시드니 대회 후 처음이었다. 종주국의 자존심이 무너졌고, 에이스의 마음도 심란해졌다.

 

장준이 24일 충북 진천군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D-30 미디어데이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명예 회복을 위해

 

태권도계가 이번 항저우 AG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여기서마저 금메달 명맥이 끊기면 곧장 암흑기에 접어든다는 우려를 안아야 한다. 항저우 AG 및 2024 파리 올림픽 전초전 성격을 띠고 이달 초 열린 파리 월드 그랑프리에서 또 ‘노골드’에 그쳐 불안감의 실체를 확인했다. 이다빈(67㎏ 초과급), 홍효림(67㎏급)만 2개의 동메달을 얻었다. 

 

아예 메달권에 들지 못한 장준에게 찾아온 첫 AG는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다. 2019년 세계선수권 우승 후 끊긴 굵직한 족적을 남기기엔 더없이 좋은 대회다. 지난해 세계선수권 준우승을 비롯해 AG대표 선발전도 무사통과했고, 세계랭킹도 2위에 올라있는 등 전반적인 감각을 잘 유지했다.

 

그는 “부담감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도쿄 올림픽보다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며 “당시엔 대회를 거의 뛰지 못하다가 올림픽을 나갔다. 이번 AG도 1년 연기되긴 했지만 그간 대회를 꾸준히 치러와 감각이 괜찮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번 태권도 종목에는 총 13개(겨루기 11개, 품새 2개)의 금메달이 걸렸다. 공교롭게도 장준이 겨루기 종목의 첫 주자다. 오는 25일 58㎏급 경기를 시작으로 출발을 알린다. 그가 수놓을 금빛 발차기가 한국 태권도 명예 회복의 시발점이 돼줘야 한다.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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