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談談한 만남] 무명에서 국가대표로, 김다은의 배구는 “이제 시작”

사진=왼쪽부터 국제배구연맹 공식 홈페이지, 최원영 기자

 사실상 무명에 가까웠다. 여자프로배구 무대에서 차츰 출전 시간을 늘렸지만 완전한 주전으로 도약하진 못했다. 포기하지 않고 버텼다. 생애 첫 태극마크라는 선물을 안았다. 국제무대서 깜짝 활약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김다은(22·흥국생명)의 이름이 널리, 환히 빛나기 시작했다.

 

◆명랑소녀 김다은

 

 초등학생 김다은은 인사성이 밝은 아이였다. 모든 사람에게 해맑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동네의 한 부부와 친해졌다. 여자배구 호남정유 출신 정미애 내외였다. 키가 큰 김다은을 눈여겨본 부부는 배구를 권유했다. 김다은은 중대초 6학년 말 배구공을 잡았다. “운동할래, 공부할래?”라고 묻는 부친의 물음에 냉큼 “운동”이라 답했다. 일신여중 입학 후 본격적으로 배구선수의 길을 걸었다.

 

 처음엔 후회했다. 가족의 품에서 떠나 기숙사 생활하는 것이 힘들었다. 김다은은 “중학교 1학년 때 계속 부모님께 운동하기 싫다고 떼썼다. 받아주시다가 하루는 ‘그럼 네가 전학 서류 다 준비해 와. 엄마, 아빠는 도와주지 않을 거야’라고 하시더라”며 “중학생이 뭘 할 수 있었겠나. 그때부터 마음을 다잡았다. 어리광부리지 않고 배구에 매진했다”고 밝혔다.

 

 일신여중 시절 미들블로커로 뛰었다. 일신여상 진학 후 아포짓 스파이커로 변신했다. 1학년 초반 해당 포지션에 공백이 생겨 대체자로 낙점됐다. 졸업할 때까지 아포짓을 소화했다. 김다은은 “중학생 때도 공격 폼이 아포짓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제대로 배워보니 어려웠다”며 “정용하 일신여상 감독님께서 남자 선수처럼 공격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마지막 스텝을 빨리 밟는 것과 스파이크할 때 손목 스냅 쓰는 법 등이다.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2019~2020 V리그 신인드래프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1라운드 6순위로 흥국생명에 지명됐다. 김다은은 “당시 같은 학교 동기가 8명 정도였다. 다른 친구들은 떨었는데 나는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가 괜찮았다”며 “내 이름이 불렸을 때도 듣지 못했다. 박수 치다가 ‘나야?’하고 걸어나갔다”고 웃었다.

 

 양친이 현장에 함께했다. 누구보다 기뻐했다. 김다은은 “평소 아빠가 ‘인터뷰 연습 좀 해라. 당당히, 자신 있게 말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런데 내가 지명된 후 구단에서 부모님 인터뷰할 때 보니 아빠가 덜덜 떠시더라”며 “인터뷰 끝나고 ‘내가 뭐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하셔서 크게 웃었다. 동네에도 엄청 자랑하고 다니셨다고 한다”고 미소 지었다.

 

사진=최원영 기자

 

◆백업선수 김다은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첫 시즌 10경기서 39득점(공격성공률 35.42%), 두 번째 시즌 7경기서 4득점(공격성공률 21.05%)에 그쳤다. 김다은은 “동기들이 먼저 기회를 받고 잘하는 모습을 보며 경기에 나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팀 내 잘하는 언니들이 많아 우선 열심히 하자는 생각뿐이었다”며 “언젠가 기회가 오면 그때 잡자고 다짐했다. 조급해하진 않았다”고 돌아봤다. 그는 “웜업존에서 경기를 지켜보며 같은 포지션의 언니들이 어떻게 플레이하는지 살폈다. ‘만약 내가 뛰게 되면 저렇게 해야지’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2021~2022시즌 아웃사이드 히터로 포지션 변경을 시도했다. 출장 시간은 늘었으나 리시브까지 병행해야 해 쉽지 않았다. 18경기서 98득점(공격성공률 32.93%), 리시브 효율 19.90%로 고전했다. 김다은은 “배구하며 눈물 흘린 적이 별로 없다. 웬만하면 참는다. 그런데 처음 리시브를 시작했을 땐 정말 많이 울었다”며 “원하는 대로 안 돼 답답했다. 분명 맞게 플레이한 것 같은데 공이 정확하게 안 가니 속상했다”고 털어놨다.

 

 주저앉을 수 없었다. 그는 “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니 연습량으로 극복하려 했다. 실수하더라도 계속 리시브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훈련, 경기 후 영상을 찾아보며 무엇이 잘못됐는지 분석했다. 꾸준히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이었다. 처음엔 자세가 너무 높거나 낮은지, 어디가 틀렸는지 찾느라 바빴다”며 “이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해봤는데 그제야 잘 되더라”고 덧붙였다.

 

 소속팀 베테랑 선배들의 격려에 힘을 냈다. 아웃사이드 히터 김연경은 김다은에게 “원래 리시브가 제일 어렵다. 계속 받다 보면 나아질 것이다”고 말했다. 리베로 김해란은 “나도 여전히 어려워한다. 넌 충분히 잘하고 있다. 자신 있게 해라”고 다독였다. 김다은은 “언니들이 옆에서 도와주시고 위로해 주셔서 든든했다. 심적으로 의지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성장을 이뤄냈다. 지난 시즌 35경기서 186득점(공격성공률 33.91%), 리시브 효율 34.38%로 기록을 끌어올렸다. 김다은은 “아직 많이 부족하다. 50%밖에 보여드리지 못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데뷔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무대에도 섰다. 4경기서 13득점(공격성공률 35.14%), 리시브 효율 43.75%를 빚었다. 흥국생명은 챔피언결정전(5전3선승제)서 한국도로공사와 맞붙어 2연승 후 3연패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김다은은 “정규리그 때도 많은 팬분들이 응원해 주셨는데 챔프전은 그 이상으로 대단했다. 긴장하지 않고 차분히 플레이하려 했다”며 “모두가 우승을 바랐는데 준우승해 아쉽다. 아직도 마음이 아리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했다”고 말했다.

 

사진=왼쪽부터 국제배구연맹 공식 홈페이지, 최원영 기자

 

◆국가대표 김다은

 

 깜짝 소식이었다. 지난 4월 2023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에 아웃사이드 히터로 발탁됐다. 김다은은 “밥 먹고 있는데 구단에서 ‘축하한다’고 연락이 왔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너무 놀랐다”며 “부모님께 전화드렸더니 ‘진짜야? 정말 뽑혔어?’라고 물으며 좋아하셨다. 특히 ‘아빠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하시더라. 내 배구 인생을 통틀어 가장 기쁜 날이었다”고 미소를 머금었다.

 

 본가가 있는 서울 구로구 궁동이 뒤집혔다. 동네에 플래카드가 속속 걸렸다. 김다은은 “아빠가 어릴 때부터 이 동네에 사셔서 ‘궁동 대장’으로 통한다. 성격도 좋고 사람을 잘 챙기셔서 동네 분들이 좋아하신다. 덕분에 나도 축하를 많이 받았다”며 “내가 두 살일 때부터 이웃이던 분들이 있다. 오래 봐서 큰아빠라고 부르는데 사비로 플래카드를 해주셨다”고 밝혔다.

 

 이어 “큰아빠가 ‘궁동의 딸 김다은’이라고 문구를 정하려 하자 가족들이 ‘촌스럽다. 요즘 누가 그렇게 하냐’고 말렸다고 한다. 그래서 ‘언제나 우린 김다은 선수를 응원합니다’로 바꿨다고 들었다”고 웃음을 터트렸다.

 

사진=김다은 제공

 

 4월 말 진천선수촌에 소집됐다. V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과 함께 손발을 맞췄다. 김다은은 “말로만 듣던 대표팀에 가니 입구부터 ‘진천선수촌’이라 쓰여 있어 멋있었다. 선수촌 밥이 진짜 맛있어서 먹을 때마다 감탄했다”며 “훈련할 땐 선수들끼리 잘 맞춰보려는 분위기가 좋았다. 다들 의지와 열정이 넘쳐 재밌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격수마다 스파이크 스타일이 다르다. 타 팀 선수들의 장점을 보고 배우려 했다”며 “특히 (박)정아(페퍼저축은행) 언니의 공을 쳐 내는 기술, 네트플레이 등을 눈에 담았다”고 전했다.

 

 1주차 튀르키예 시리즈서는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세자르 에르난데스 곤잘레스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은 김다은에게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네가 못해서 빠지는 것은 아니다”며 “대표팀이 처음이니 웜업존에서 다른 선수들이 어떻게 플레이하는지, 상대의 높이를 극복할 방법은 무엇인지 등을 생각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김다은은 2주차 브라질 시리즈부터 출전했다. 3주차 수원 시리즈까지 코트를 지켰다. 아포짓 스파이커로 펄펄 날았다. 서브 6개, 블로킹 3개 포함 총 83득점을 선보였다. 아웃사이드 히터 강소휘(GS칼텍스)와 함께 팀 내 득점 공동 1위에 올랐다. 공격득점은 74점으로 단독 1위, 공격성공률은 34.91%로 날개공격수 중 1위였다. 대표팀은 12전 전패, 최하위로 대회를 마쳤지만 김다은은 최고의 수확으로 꼽혔다.

 

 김다은은 “2주차에 경기해 보니 예상보다 상대가 훨씬 높았다. 어떻게 공격해야 점수가 나는지 계속 연구했다”며 “경기 영상을 보면 상대 블로킹이 완벽히 떠 있지 않거나 블로킹 사이가 비어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 상황에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며 다음 경기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세계무대를 휘젓는 타 팀 선수들을 보며 느낀 점도 많다. 김다은은 “신체조건은 다르지만 공격할 때 마지막 스피드, 타구의 각도 등을 열심히 봤다. 어렵게 올라온 공을 처리하는 법도 배웠다”고 언급했다.

 

 김희진(IBK기업은행)의 뒤를 이을 차세대 아포짓으로 떠올랐다. 김희진은 무릎 수술로 이번 대표팀에 함께하지 못했다. 김다은은 “완벽하게 자리 잡으면 좋겠지만 잘하는 선수들이 많다. 지금처럼 기회가 오면 잡아내겠단 각오로 임하겠다. 부담감은 느끼지 않으려 한다”고 속마음을 내비쳤다.

 

 흥국생명에선 다시 아웃사이드 히터로 돌아간다. 오는 29일 개막하는 2023 구미·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와 2023~2024시즌 V리그를 준비한다. 김다은은 VNL을 마치고 짧은 휴식을 취한 뒤 팀에 복귀했다. 지난 13일부터 훈련을 시작했다. 그는 “최우선순위는 리시브다. 어렵지만 꼭 잘 해내고 싶다. 포기하지 않겠다”며 “안정적인 리시브형 공격수가 되는 게 목표다. 팀과 함께 우승을 반드시 이뤄보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지막으로 김다은은 “나에게 배구는 정말 소중하다. 엄마, 아빠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있게 만들어준 고마운 친구다”고 미소 지었다.

 

사진=국제배구연맹 공식 홈페이지

 

최원영 기자 yeong@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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