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 헤베시 “무너뜨리기 위한 완벽한 미학, 도미노 매력이죠”

◆릴리 헤베시 도미노 아티스트

384만 구독자 16억뷰, ‘도미노 1인자’
82일간 3만 2000개로 작품 만들기도
케이티 페리·윌스미스와 협업도
다큐 영화 ‘릴리의 도미노세계’
디아스포라 영화제 상영작 초청
제레미 워크먼 감독과 첫 내한

“템플릿을 사용해보셨나요? 도미노들이 쓰러지지 않는 데 도움이 될 거에요.”

 

지난 21일 오후 3시, 인천 인천아트플랫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미노 아티스트이자 유튜브 크리에이터 릴리 헤비시(Lily Hevesh)가 아이들의 도미노 작품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효율적으로 도미노를 쌓는 법에 대해 조언해준다. 새로운 도미노 트릭 등 도미노 아트를 시작하기 위한 팁도 꼼꼼히 알려준다.

릴리 헤베시가 세계비즈앤스포츠와 인터뷰에 나서고 있다. 사진=디아스포라 영화제

참가자들은 ‘릴리 헤베시가 알려주는 도미노를 쌓고 무너뜨리는 법’ 워크숍에서 진지한 얼굴로 프로젝트를 만드는 데 열중이다. 장난을 치던 아이들도 어느새 신중하게 도미노를 하나하나 끈기 있게 세우고, 아이들을 도와주던 어른들은 더 진지하게 임한다.

 

384만명의 구독자, 총 조회수 16억 5200뷰. 유명 크리에이터인 헤베시는 이제 24살이 된 젊은 청년이다. 9살, 할머니가 사주신 도미노를 처음 접한 뒤 여전히 도미노와 사랑에 빠져 있다. 이제는 아티스트를 넘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장난감 회사 스핀마스터와 도미노 브랜드 ‘H5’까지 탄생시켰다.

 

국내서 도미노는 ‘어릴 때 잠깐 하던 보드게임’ 정도로 여기지만, 서구권에서는 마니아층이 두텁다. 하나의 블록을 톡, 치면 촤르륵 쏟아지며 화려함을 펼쳐내는 도미노는 하나의 예술로 거듭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도미노 아티스트인 릴리 헤베시는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며 성장해온 인물의 정석으로 여겨진다. 특히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적극적인 현 시대의 젊은 세대를 보여준다.

릴리 헤베시가 워크숍에 참가한 아이에게 조언하고 있다. 사진=정희원 기자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도미노의 세계에 푹 빠져 워크숍을 즐기고 있다. 사진=정희원 기자

헤베시는 현재 셀럽과의 작품은 물론 기업 광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미국 워싱턴주 복권 광고, 세계적인 토크쇼 지미 팰런의 ‘투나잇쇼’ 유튜브 채널 구독자수 2000만명을 축하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배우 윌 스미스, 팝가수 케이티 페리, 도날드 글로버와도 작업했다.

 

헤베시가 인천을 찾은 것은 ‘제11회 디아스포라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번 행사에서는 자신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릴리의 도미노세계(Lily topples the world·2021)’가 영화제 상영작으로 초청받았다. 이를 제작한 제레미 워크먼 감독은 “태어나자마자 중국 보육원에 버려진 후, 미국으로 입양된 작은 소녀가 프로페셔널한 전문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헤베시는 “덕분에 한국을 처음 찾았다”며 “20일 저녁에는 ‘데모쇼’를 통해 한국에서 처음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제레미 워크먼 감독도 함께했다. 23일, 릴리 헤베시를 만났다.

릴리 헤베시가 미국 예능쇼 SNL을 위해 작업한 도미노 작품. 사진=릴리 헤베시 공식홈페이지

“무너뜨리기 위해 쌓는다는 과정 자체가 도미노의 흥미로운 점입니다.”

 

헤베시가 꼽는 도미노의 매력이다. 특히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측면뿐 아니라 공학적 측면까지 다뤄야 하는 점도 도미노를 지속하게 된 부분이다.

 

헤베시의 영상과 작품은 규모가 남다르다. 높게 쌓아올린 시계탑이 무너지고, 다양한 캐릭터나 메시지가 펼쳐지며, 단순히 쓰러지는 것을 넘어 조각이 여기저기로 튀어오른다. 이런 작품들을 만드는 데에는 얼마나 걸릴까.

 

헤베시는 “라인 하나를 세우는 데에는 1분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짧은 작품은 몇분이면 완성되고, 큰 작품은 수일에 걸쳐 완성한다. 헤베시의 최장 기록은 82일간 3만 2000개 피스로 만든 작품이다. 혼자서 작품을 만들 때도 있지만, 주변의 도미노 기사(domino builder)들과 함께 협업해 완성하기도 한다.

 

헤베시는 수많은 작품을 해왔지만, 늘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싶어한다. 더 큰 규모, 기술 개선, 다양한 색상을 활용하려는 것. 헤베시는 “언젠가 누군가의 초상화나 실물 사람 크기의 도미노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다만 도미노를 평평하게 까는 게 아닌 높게 올려야 하는 형태이다보니 더 많은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고, 구조적으로도 까다로워 새로운 도전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릴리 헤베시가 제11회 디아스포라 영화제에서 국내 첫 퍼포먼스에 나서고 있다. 사진=디아스포라 영화제

영화 속에서 내내 보이는 릴리의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침착함’이다. 공들여 만든 작품을 실수로 무너뜨렸을 때조차 화를 내거나 소리지르지 않는다. 잠깐의 탄식 후, 다시 묵묵히 목표를 향해 이어간다.

 

그는 “본래 타고난 성격이 침착한 편이다”며 “하지만 아무래도 도미노를 쌓는 과정 자체가 나를 더 차분하게 만든 것 같다”며 웃었다. 헤베시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것은 전혀 생산적이 못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프로젝트가 순간의 실수로 무너졌더라도 감정에 휩쓸리기보다 이렇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찾는 게 우선”이라며 “또 감정적이다보면 다시 도미노가 무너질 확률이 높아진다”고 조언했다.

 

경력 14년에 이른 요즘, 헤베시는 작품 제작과 유튜브 크리에이팅을 넘어 워크숍 등 교육, 장난감 사업 분야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어떻게 모든걸 다 하느냐’는 질문에는 “열정을 느끼는 모든 부분에 집중하는 게 비결”이라고 했다. 헤베시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사랑한다”며 “도미노를 연결고리로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게 돼 좋다”고 덧붙였다.

 

헤베시는 자신이 좋아하는 도미노로 인생이 바뀌었고,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특히 또래 등 남들의 시선에 영향받기 쉬운 어린 아이들이 자신의 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남들의 말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젊은층이 주목하는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의지를 가지고 지속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 신조어)’와 일맥상통한다.

워크숍에서 강연 중인 릴리 헤베시. 사진=정희원 기자

그는 “‘젊다’는 것 자체가 정말 완벽한 조건”이라며 “뭔가를 해볼 수 있는 시간과 자유, 유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세계가 좋아하는 걸 하지 말라고 밀쳐내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았다면 다른 사람의 말에 영향을 받기보다 ‘GO’해야 한다는 게 헤베시의 조언이다.

 

헤베시는 “나 역시 어린 시절 학교에서 ‘왜 도미노를 계속 가지고 놀아?’라는 질문을 종종 받았다. 상급생이 된 이후에는 한 동급생이 ‘아직도 도미노 갖고 노니?’라고 비꼬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한 확신관 사랑이 컸던 만큼,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헤베시는 자신이 남들과 달리 특별하기 때문에 현재에 이른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나는 미국 메사추세츠에 살며 스키·암벽타기,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24살 여성”이라며 “늘 재미있고 즐겁게 살려고 한다. 일상 속에서 새로운 창조·에너지를 찾으며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고 싶다. 다음에는 어떤 새로운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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