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스포츠] “배팅볼 투수 겸 불펜포수, 제 이름은 ‘서준영’입니다”

서준영.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선수들이 경기에 나서 플레이를 펼치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땀방울이 함께한다. 훈련을 준비하는 것은 물론 매 순간 선수들을 위해 온 힘을 쏟는다. 프로야구 KT 배팅볼 투수 겸 불펜포수 서준영(28)은 조용히 빛난다.

 

◆선수 생활의 마침표

 

 서준영도 선수였다. 핸드볼을 먼저 시작했다. 야구팬이던 부모의 권유로 광주 화정초 5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광주 진흥중, 진흥고로 진학했다. 포수로 실력을 갈고닦았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유니폼을 벗었다.

 

 서준영은 “고교 3학년 때 팔이 아파서 수술을 받았다. 객관적으로 프로팀에는 갈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며 “대학팀 몇 군데에서 연락이 왔지만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 해도 큰 의미가 없을 듯했다. 야구를 그만두기 전까지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고등학생 때 선배들이 프로팀에서 불펜포수로 일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서준영은 “야구를 좋아하는 마음은 변함없었기에 야구장 안에 남고 싶었다. 프로선수들은 플레이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2013년 말 KT에 지원했다”고 전했다.

 

 KT는 2013년 1월 프로야구 10번째 구단으로 KBO의 최종 승인을 받았다. 서준영도 그해 KT에 합류했다. 창단 멤버다. 2015년까지 KT에 몸담았다. 이후 군 복무를 위해 잠시 팀을 떠났다. 입대가 미뤄져 2016년 1년간 KIA에서 일했다. 군 문제를 해결하고 KT로 복귀하려 했지만 자리가 없었다. 기다림 끝에 2021년 다시 KT에 입사했다.

 

 서준영은 “성인이 되자마자 함께했던 팀이다.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회상했다.

 

서준영.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불펜포수 겸 배팅볼 투수의 삶

 

 불펜포수 임무부터 수행했다. 2021년 선발투수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와 배제성을 전담해 호흡을 맞췄다. 선발 등판 날 몸을 풀어주고 공을 받아줬다. 여러 구종을 체크하고 투수들이 의견을 물으면 피드백해줬다. 중간투수들도 도왔다. 지난 시즌 종료 후 데스파이네와 이별하고 배제성도 중간계투진으로 이동해 배팅볼 투수로서 역할이 더 커졌다. 최근 소형준의 부상 이탈로 배제성이 다시 선발진에 합류해 불펜포수도 겸업 중이다.

 

 서준영은 “불펜포수 할 때는 투수들에게 ‘이게 나을 것 같다’, ‘오늘 공 좋으니 자신 있게 던져도 된다’ 등의 이야기를 해주는 편이다. 잘 던지면 하이파이브하고 조금 흔들려도 괜찮다고 다독여주려 한다”며 “경기 중 주전 포수가 홈플레이트로 나오기 전 내가 먼저 나가 투수의 공을 받아준다. 혼자 속으로 ‘잘 던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응원하는 마음이 정말 크다”고 설명했다.

 

 일과는 배팅볼 투수에 맞춰져 있다. 평일 오후 6시30분 경기 기준 오전 11시쯤 야구장으로 출근한다. 우선 개인 운동부터 한다. 그는 “예전엔 운동을 안 했는데 계속 근육을 쓰니 몸에 무리가 가더라. (박)병호 형, (박)경수 형이 운동을 많이 알려주셔서 따라 한다”며 “오후 1시30분부터 선수들의 훈련을 위한 세팅을 한다. 배팅 케이지나 번트 기계 등을 준비해놓는다. 훈련이 시작되면 배팅볼을 던져준다”고 밝혔다.

 

 공식 훈련을 마친 뒤에도 쉴 틈이 없다. 경기 개시 직전, 게임 도중, 경기 종료 후에도 실내연습장에서 타격 훈련하는 타자들을 위해 계속해서 공을 던진다. 서준영은 “대타를 준비하는 선수들은 물론 이닝 종료 후, 클리닝 타임 등에도 공을 치는 선수들이 있다. 많은 날에는 하루에 배팅볼 1000개 정도를 던지는 것 같다”며 “선수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다”고 미소 지었다.

 

 동갑내기 친구 김민혁과의 일화를 들려줬다. 김민혁은 배정대의 손등 골절 이탈로 개막전부터 주전 중견수로 나섰다. 마음속 불안함을 지우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배팅볼을 쳤다. 그 공들을 던져준 이가 서준영이다. 결과로 이어졌다. 3할 중반대 타율로 선전했다. 지난 2일 SSG전서는 앤서니 알포드의 부상으로 급히 교체 투입돼 4타수 4안타 2타점을 선보였다. 팀의 9연패를 끊어냈다.

 

 서준영은 “그날도 경기 중 실내에서 민혁이와 타격 훈련 중이었다. 민혁이가 갑자기 출전하게 됐는데 바로 안타를 치더라”며 “더그아웃에서 민혁이에게 ‘준비하길 정말 잘했다. 감 좋으니 안타 몇 개 더 쳐봐라’ 했다. 진짜 매 타석 안타를 쳐 신기하고 뿌듯했다”고 웃었다.

 

서준영.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감사히 누리는 행복

 

 팀이 승리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서준영은 “1승이 정말 소중하다. 선수들이 잘해서 팀이 이겼을 때 제일 기분이 좋다”며 “가족보다 선수들과 같이 있는 시간이 더 길다. 우린 모두 ‘원 팀(One Team)’이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누군가는 이 일이 궂은일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당연하다고 여긴다. 이게 내 일이기 때문이다. 힘들지 않고 오히려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선수들에게도 고마움을 표했다. 서준영은 “다들 진짜 많이 챙겨준다. 덕분에 힘을 더 얻는다”며 “특히 병호 형은 따로 맞춘 수비 장갑까지 주는 등 엄청 신경 써주신다. 늘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라고 해주신다”며 “야구용품이 아닌 마음을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쉬워 보여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항상 감사하다”고 진심을 전했다.

 

 야구 외에 다른 길은 생각해본 적 없다. 그는 “오로지 야구가 좋아서, 선수들을 돕는 게 좋아서 이 일을 하고 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대한 오래 이 팀에 남고 싶다”고 속마음을 내비쳤다.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서준영은 “팀이 지금은 조금 힘든 상황이다. 앞으로 좋아질 일만 남았다고 생각한다. ‘힘내’라는 말도 조심스럽지만, 항상 응원하고 있으니 선수들 모두 아프지 말고 건강히 야구했으면 한다”며 “우리 팀은 반드시 반등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가족을 떠올렸다. 서준영은 “어릴 때 친할머니께서 키워주셨는데 지난해 돌아가셨다. 하늘에 계신 할머니께 가장 감사하다”며 “어머니와 누나들도 뒷바라지해주느라 고생했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에필로그>

 KT에는 불펜포수 2명이 더 있다. 정유찬(27)과 강재욱(26)이다. 정유찬은 외국인 투수 및 고영표를 전담한다. 그는 “연달아 이길 때도, 질 때도 있지만 언제나 웃으며 선수들의 훈련을 돕고 있다. 시즌이 끝날 때까지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남은 기간 반등할 수 있도록 선수들을 더 열심히 돕겠다. 함께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강재욱은 엄상백과 주권, 손동현을 담당한다. 그는 “경기 상황에 따라 선수들, 코칭스태프들이 힘들어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티 내지 않고 선수단의 기운을 더 북돋워 주려 노력한다. 좋은 타구 하나, 멋진 투구 한 개가 더 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훈련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정유찬, 서준영, 강재욱. 사진=KT위즈 제공

 

최원영 기자 yeong@sportsworldi.com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