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談談한 만남] 세계를 제패할 21세 소녀의 꿈 “배드민턴 하면 안세영이 되도록”

배드민턴 국가대표 안세영이 본지와 인터뷰 도중 미소 짓고 있다. 사진=스포츠월드 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그리고 또, 걸어가겠다.”

 

 잠잠했던 한국 배드민턴을 환하게 비추는 보석이 있다. 27년 만에 종목 최고 권위 대회 전영 오픈을 제패한 태극낭자 안세영(21)이 그 주인공이다. 올시즌 세계배드민턴연맹(BWF) 투어에서 3번의 우승, 2번의 준우승을 거두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여전히 목마르다. 대표팀 동료들과 충청남도 서산에 머무르며 강화 훈련을 펼치는 그는 변함없이 새벽 5시40분에 일어나 러닝으로 새벽 운동을 시작해 오전 배드민턴 훈련, 오후 웨이팅 훈련 사이클을 빠짐 없이 소화한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그의 루틴이다.

 

◆월드클래스가 된 소녀

 

 ‘셔틀콕 천재’의 등장이었다. 2017년 12월, 광주체중 3학년 안세영이 국가대표 선발전서 성인 선수를 모두 꺾고 7전7승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중학생이 추천이 아닌 자력으로 선발전을 뚫고 대표팀 자격을 획득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18년 아이리시 오픈 우승으로 성인 대회 첫 우승을 일군 안세영은 2019년 BWF 투어 5승과 함께 한국 최초 BWF 신인상을 획득했다. 2021년에는 ‘왕중왕전’ BWF 월드투어파이널에서 우승까지 차지하며 커리어를 쌓더니 올해 성장세가 더 가파라졌다. 세계 랭킹은 어느새 2위다.

 

 안세영은 “최근 저를 많이 알아봐 주시고 배드민턴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재밌고 즐거운데 한편으로는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며 미소지었다. 이어 “최근 몸 상태도 좋다. 부상 및 컨디션 관리에 신경 쓰면서 훈련 강도를 많이 높이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전영오픈 우승 후 귀국해 열정배드민턴리그, 한일 국가대항전 일정을 소화하며 실전 감각 유지에 힘쓰는 중이다. 그는 “22일까지 서산에서 대표팀 훈련을 갖고 아시아선수권 대회가 열리는 두바이로 출국한다”고 향후 계획을 설명했다.

 

지난 1월 말레이시아 오픈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안세영(왼쪽)과 금메달을 획득한 야마구치 아카네. 사진=안세영 개인 SNS

 

◆‘한·중·일’ 삼국지를 뚫어라

 

2023년은 매우 중요하다. 그간 고배를 들이켰던 정상급 대회들이 연달아 열린다. 8월에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세계선수권 대회가, 9월에는 중국 항저우에서 아시안게임(AG)이 열린다. 또 5월부터의 모든 성적은 이듬해 파리 올림픽 시드 선정 기준이 되는 ‘올림픽 레이스’ 랭킹에도 반영된다. 전력을 쏟을 시기다.

 

영원한 라이벌들인 야마구치 아카네(일본·랭킹 1위)와 천위페이(중국·3위)를 넘어야 한다. 역대전적은 각각 6승12패, 3승8패로 열세다. 그는 “라이벌 구도에 오른 것만으로 뿌듯하다. 그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의심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야마구치에 대해서는 “작지만 스피드와 체력이 대단하다. 특히 공 치는 속도 변화가 특출나서 받기가 어렵다. 그 선수만 만나면 내 맘대로 플레이가 안돼 화날 때도 많다”고 평가했다. 이어 “천위페이는 중국 선수다보니 스트로크의 파워가 정말 좋다. 그 공들을 쫓아다니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세계선수권에서는 항상 야마구치에게 무릎 꿇었다. 2021년 우엘바 대회는 8강(1-2 패)에서, 지난해 도쿄 대회에서는 준결승에서 0-2로 졌다. 천위페이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AG 32강에서 갓 태극마크를 단 안세영에게 굴욕패(0-2)를 안겼다. 지난해 7월 도쿄올림픽 8강(0-2)에서도 아픔을 줬다.

 

안세영은 “2018년 AG은 정말 최악이었다. 어리고 경험도 없었다. 그때 세계적인 레벨의 천위페이를 만나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 순간이 창피하기도 했지만 좋은 자극이 돼 여기까지 왔다. 그간의 노력을 보여주는 대회가 돼야할 것”이라 힘줘 말했다. “이번에 한 번쯤은 천위페이를 만나 설욕하고 AG 우승하는 게 새로운 목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지난 3월 전영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한 안세영(왼쪽)과 은메달을 목에 건 중국의 천위페이. 사진=안세영 개인 SNS

 

더 경계되는 것은 최강자 야마구치다. 안세영은 “지금은 천위페이보다 플레이가 더 어렵다. 워낙 잘 뛰는 선수라 내 자신이 포기하는 느낌이 있다”며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이어 “단점을 아직 많이 파악하지 못했다. 그게 숙제라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

 

현 흐름은 안세영이 우위다. 지난 1월 인도오픈에서는 야마구치를 꺾고 우승했고 3월 전영오픈에서는 야마구치를 이긴 천위페이를 잡았다. 1월 말레이시아 오픈에 이어 천위페이 상대 첫 연승이기도 하다. 

 

그는 “아직 부족하다. 멘탈적으로 자신감만 얻은 상태다. 분석을 더 완벽하게 해서 임해야한다”며 “최근 대회들은 욕심을 버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하다보니 좋은 결과가 나왔다. 너무 멀리 보지 않고 즐기다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모두와 함께, 전인미답의 길로

 

안세영의 경기 전 루틴은 딱 하나다. 언제나 신발끈을 확인한다. 풀리지 않게 꽉 매는 건 기본이고 절대 꼬이지 않게 한다. 그는 “끈이 꼬이면 경기도 꼬이는 것 같아서 항상 신경 써왔다”며 웃었다.

 

그 루틴과 함께 어느새 6년째 태극마크를 달고 있다. 힘든 순간은 많았지만 주변에 있는 이들이 언제나 버팀목이 돼줬다.

 

배드민턴채를 잡은 계기가 돼준 복싱 국가대표 출신이자 배드민턴 동호인인 아버지는 그가 의지하는 1순위다. 어머니도 해외 대회 때마다 딸이 좋아하는 마른 반찬을 빠짐없이 챙겨주신다. 숱한 해외 생활이 익숙해진 안세영도 여전히 혀를 내두른다.

 

대회장을 찾는 빈도도 잦아졌다. 안세영은 “국내는 다 오신다. 해외는 가끔씩 오시는데 아버지는 일 땡땡이 치려고 오신다고 농담도 하신다”며 웃었다. 이어 “예전엔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어서 모시는 게 부담이었는데 이젠 보여드리고 싶은 자신감이 생겼다. 오히려 내가 더 부른다”고 덧붙였다.

 

안세영이 전영오픈 우승 이후 대표팀의 성지현 코치와 기념촬영 하고 있다. 사진=안세영 개인 SNS

 

대표팀 성지현 코치도 큰 원동력이다. 여자 단식을 주름 잡았던 성 코치는 선배이고 언니이자 과거 직접 겨뤘던 상대기도 했다. 안세영은 “나는 훈련하는 내 자신만 믿기에 휴일도 새벽 운동을 한다. 그때마다 피곤하실 법도 한데 항상 나와주신다. 전적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분”이라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평소엔 엄하지만 취재진 앞에선 안세영 칭찬만 늘어 놓는 ‘츤데레’ 김학균 감독의 존재감도 말할 것 없다. 이외에도 6년째 막내인 안세영을 귀엽게 돌봐주고 조언해주는 대표팀 오빠, 언니들도 마찬가지다.

 

이제 대회만 바라본다. 안세영은 “팬들이 내 수비적인 플레이를 아쉬워하시기도 한다. 공격력 강화를 위해 훈련도 많이 했다. 반대로 공격만 하는 것도 재미없지 않나. 공격과 수비를 두루 갖추고 자유롭게 전환하는 그런 플레이들을 해나가겠다”며 굳은 다짐을 드러냈다.

 

이어 “모두가 배드민턴 하면 ‘안세영’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아무도 걷지 않아온 길이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그 길을 걸어가겠다”는 그는 “힘들겠지만 지금처럼 행복하게 배드민턴을 즐기면 분명 잘 될 것이다”며 힘찬 각오로 인사를 건넸다.

 

서산=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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