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스포츠] 신영수 ‘과장’은 여전히 대한항공맨

대한항공 신영수 과장. 사진=김용학 기자 yhkim@sportsworldi.com

 19년째 한 팀과 동행 중이다. 시작은 선수였다. 토종 에이스로 팀의 자존심을 세웠다. 수많은 승리와 영광을 함께했다. 은퇴 후엔 구단 최초로 사무국에 발을 들였다. 배구공 대신 엑셀, 한글을 다뤘다. 서툴렀던 날들을 지나 어느새 5년 차에 접어들었다. 전력 코디네이터로 선수단의 곁을 지킨다. 남자프로배구 대한항공 신영수(41) 과장은 오늘도 바쁘다.

 

◆신영수 ‘선수’의 마지막

 

 프로원년이던 2005년 대한항공의 1라운드 1순위 지명을 받았다. 그해 데뷔해 2017~2018시즌까지 현역으로 뛰었다. 통산 12시즌 동안 342경기에 출전해 3323득점, 공격성공률 49.40%를 기록했다. 포스트시즌에는 22경기에 나서 189득점, 공격성공률 48.30%를 만들었다.

 

 V리그 초기의 대한항공은 하위권을 전전했다. 서서히 순위를 끌어올려 2010~2011시즌 처음으로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다. 2012~2013시즌까지 3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도 진출했다. 그러나 만년 2인자에 그쳤다. 번번이 챔프전 준우승에 머물며 눈물을 삼켰다.

 

 신영수 과장의 현역 마지막 시즌이던 2017~2018시즌 고대하던 ‘V1’을 달성했다. 정규리그를 3위로 마친 뒤 챔프전서 업셋 우승을 빚었다. 당시 신 과장은 주축은 아니었으나 동료들과 우승의 기쁨을 나눴다. 그는 “정말 행복했지만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아 됐다’, ‘홀가분하다’는 마음뿐이었다”고 회상했다.

 

 모순적이게도, 첫 우승과 동시에 ‘끝’을 실감했다. 신 과장은 “당시 은퇴에 관해 고민 중이었다. 우승하고 나니 ‘이제 진짜 끝이구나’라는 게 느껴졌다”며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그만두는 게 나을 듯했다. 어차피 누구에게나 끝은 있다. 새로운 삶을 빨리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11살에 시작했던 배구를 내려놓으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해야 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준비했던 일이기에 겁이 나진 않았다”며 “당연하다 여기고 받아들였다. 우승해보고 은퇴할 수 있어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현역 시절 신영수 과장(왼쪽). 사진=KOVO 제공

 

◆신영수 ‘과장’의 처음

 

 2018년 7월 1일 자로 인사 발령이 났다. 공교롭게도 신 과장의 생일이었다. 일요일이라 다음 날인 7월 2일 첫 출근을 했다. 신 과장은 “걱정이 많았다.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업무를 무사히 수행할 수 있을지 불안했다”며 “대비하기 위해 책도 찾아보고 컴퓨터도 두들겨본 뒤 출근했다”고 돌아봤다.

 

 선수 시절부터 신 과장을 지켜봐 온 대한항공 구단 관계자는 “처음 사무실에 나온 형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간 알던 ‘영수 형’이 아닌 ‘회사원 신영수’의 모습이더라”며 “‘무엇이든 맡겨만 달라’는 분위기가 풍겼다. 그만큼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온 듯했다. 앞으로 같이 일할 동료가 왔다는 느낌이 딱 들었다”고 귀띔했다.

 

 만반의 준비에도 익숙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먼저 출퇴근이다. 선수 생활을 할 때는 구단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회사원이 된 뒤에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오전 8시30분까지 사무실에 도착하려면 6시에 일어나 6시40분에 집에서 나와야 했다. 신 과장은 “집이 회사와 정반대 쪽이다. 9호선을 타고 다녔다”며 “다행히 집이 종점 쪽이라 항상 앉아서 갈 수 있었다. 회사가 위치한 김포공항도 9호선의 끝자락이라 퇴근할 때도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운전해서 다닌다”고 미소 지었다.

 

 낮잠 시간이 없다는 것도 크게 다가왔다. 신 과장은 “선수일 때는 운동 후 밥 먹고 낮잠 잔 뒤 다시 운동하는 패턴이었다. 회사원은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종일 근무다”며 “점심만 먹으면 졸려서 혼났다. 그래도 금방 적응했다”고 웃었다.

 

◆선수단의 곁에서

 

 가장 먼저 유소년 배구교실(리틀 점보스)을 관장했다. 팀 운영, 서류 작업, 대행사와의 만남 등을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는 업무였다. 이후 전력 코디네이터 일을 병행했다. 팀의 방향성에 따라 선수단 구성, 외국인 선수 및 신인선수 선발 등을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이룰 수 있도록 도왔다.

 

 외국인, 신인 드래프트를 예로 들었다. 신 과장은 “특정 선수에 대한 업계의 평가가 높다고 해서 우리도 그 선수를 무조건 좋게 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며 “또한 드래프트는 확률 추첨으로 이뤄져 변수가 많다. 여러 안을 미리 만들어가야 현장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모두의 노력 속에 대한항공은 강팀이 됐다. 이번 시즌 V리그 역대 두 번째 통합 3연패(정규리그·챔피언결정전 우승) 위업을 달성했다. KOVO컵 대회 우승까지 포함해 창단 첫 트레블도 기록했다. 남자부 역대 두 번째다.

 

 신 과장은 “현역 시절 통합우승은 해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우승을 겪었다. 선수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아니 더 몰입됐다”며 “마치 선수 때로 돌아간 것처럼 후배들과 같은 마음을 느꼈다. 모두가 고생하고 노력해 이룬 것이라 나 역시 기쁘고 좋았다”고 전했다.

 

 이어 “지금의 대한항공은 상위권이지만 언제까지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른다.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버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해서 고민해야 한다. 더 노력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최원영 기자 yeong@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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