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톡톡] ‘더 글로리’ 임지연 “사랑 받지 못할 바엔 미움 받고 싶었죠”

 배우 임지연이 ‘더 글로리’ 박연진으로 악녀의 역사를 새로 썼다.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해서도 안 되는 악역. 외로울 법도 하지만 온 세상이 외치는 ‘연진아’에 감사한 마음뿐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는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가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로 지난해 공개된 파트 1에 이어 10일 파트 2가 공개됐다. 임지연은 학창시절 문동은(송혜교)에 무자비한 폭력을 가한 박연진으로 분했다. 

 

 17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난 임지연은 “잘 될거란 기대와 확신은 있었지만, 이 정도로 반응이 좋을 거란 생각은 못 했다. 파트 2부터 본격적인 복수의 시작이 나오다 보니 파트 1의 인기에 ‘아직 파트 2가 남았다’는 생각이 들어 더 기쁨이 컸다”고 소감을 전했다.

 “황금 같은 기회였어요. 제대로 된 악역을 구현하고 싶었고, 잘 해내야 한다는 욕심이 컸죠.”

 

 촬영에 앞서 김은숙 작가는 “어떠한 미화나 서사 없이 연진이를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임지연은 “연진이가 나쁘면 나쁠수록 좋다”고 화답했다. 희대의 악역이었다. 문동은을 괴롭히는 이유도, 가해에 대한 죄책감도 없었다. 반성의 기회가 와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첫 악역에 역대급 캐릭터를 완성했다. 임지연은 “악역은 항상 하고 싶었지만, 기대가 크진 않았다. 마흔이 넘으면, 내공이 쌓이면 제대로 된 악역을 제안받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던 중 박연진의 기회가 왔다. 욕심이 생겼고,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제작진의 선택에 “천사 같은 얼굴에 악마의 심장을 느끼신 건 아닐까”라고 웃어 보인 임지연은 “나는 내가 잘할 것 같았다. 내 가능성을 봐주신 것 같아 감사하다”고 했다. 

 

 다양한 방식의 연진이를 준비했다. 아무 감정 없는 모노톤의 악역도 상상했고, 어디를 가나 미친 사람인 듯한 악역도 생각했다. 돌고 돌아 찾아낸 건 임지연만의 악역이었다. 끌어모았던 아이디어를 내려놓고 지금의 모습에서 어울리는 악역을 찾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쁜 년이 되어보자’는 생각에 화려한 패션, 몸짓, 걸음걸이, 표정, 말투, 목소리를 만들었다. 자신감이 이유를 묻자 임지연은 이내 “사실 불안했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촬영 때보다 준비 기간이 더 바쁘고 힘들었다. ‘대본을 씹어먹겠다’는 생각뿐이었고, 촬영 시작 전부터 캐릭터에 대한 확신을 가져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임지연은 박연진을 이해하고 연기해야 했다. 참고할 작품도, 인물도 없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환경적 요인일까, 정신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걸까 다양하게 생각의 나래를 펼쳤다. 하지만 결론은 ‘이유를 모르겠다’였다. 노력 없이 모든 걸 가진 연진은 공감이나 죄책감을 느끼는 법을 몰랐다. ‘나는 이렇게 태어났는데, 뭐가 잘못이야. 난 잘못한 게 없어’라고 생각하니 막혔던 부분들이 풀리기 시작했다. 

 인상 쓰고 소리치면서 악행을 이어갔다. 한 신을 찍고 나면 목에 이상이 느껴질 정도였다. 매 장면 감정 컨트롤도 해야 했다. 악역이긴 하지만 비호감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본 안에 주어진 박연진의 상황과 감정을 세심히 분석했다. 임지연은 “원래 한쪽으로만 웃나 보다. 입도 큰 편이라 그런 것도 과하게 살리고자 했다. 짙은 눈썹, 미간의 주름으로 짜증을 표현했다”고 노력을 전했다.

 

 욕설과 흡연신도 어색하지 않게 노력했다. 캐릭터를 보여줄 주요한 장면이기에 무조건 잘 살려야 했다. “욕을 맛깔스럽게 잘 하진 않아 리허설 때 질러보고 눌러보고 여러 가지로 표현했다. 흡연신도 남편 앞에서 필 때와 혼자 열 받아서 필 때를 다르게 했다. 후반부 절정의 감정에서 상스럽게 담배 피우는 신은 잘 표현된 것 같다”고 돌아봤다. 

 

 악역임에도 사랑받았다. 모든 이들의 사랑과 공감을 받지 못할 바엔 ‘미움을 받아보자’고 결심한 덕분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미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목적을 이뤘다. 성공적인 악역에 카타르시스와 성취감은 덤이다.

 

 “멋지나 연진아, 브라보 박연진.” 문동은의 섬뜩한 외침은 ‘더 글로리’를 관통하는 밈(meme, 온라인 유행 콘텐츠)이 됐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사실 내가 안 나오는 신에서도 ‘연진아’를 외쳐주니 좋기도 했다”고 답한 임지연은 “나중엔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더라. 어떤 상황에서도 ‘연진아’를 해주시니 좋다. 엄마도 ‘연진아, 언제 들어오니’라고 메시지를 보내신다. 캐릭터 이름으로 불려서 행복하다”고 했다. 

 

 임지연은 영화 ‘인간중독’으로 시작해 ‘간신’, ‘타짜: 원 아이드 잭’, 드라마 ‘상류사회’, ‘불어라 미풍아’, ‘장미맨션’, ‘종이의 집’ 등에 출연했다. ‘더 글로리’로 데뷔 12년 만에 배우 인생 최대의 관심을 받는 그는 “항상 절실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항상 절실했고, 노력했죠. 매 작품 연진이를 준비하듯 했어요. 느리더라도 성장해가는 내 모습이 좋아서 어떤 캐릭터도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죠. 이런 제 마음을 아는 가족과 지인들은 ‘더 글로리’를 보면서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아줘서 고맙죠. 난 타고난 배우 아니니까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걸 알아봐 주고 칭찬해주셔서 감사해요.”

 

 ‘더 글로리’는 배우 임지연에게 용기이자 도전이었다. 굳게 마음먹고 두려움을 떨쳐냈다.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은 작품이다. 그는 “앞으로 조금 더 오래 ‘연진아’를 외쳐주셨으면 좋겠다. 사라지면 아쉬울 것 같다”고 했다. 차기작은 이미 촬영을 마쳤다. 서스펜스 가정 스릴러극 tvN ‘마당이 있는 집’에서 김태희와 호흡을 맞춘다. 박연진과는 180도 다른 캐릭터다. 

 

 임지연은 “집요함과 도전 정신으로 열정 있는 배우가 되겠다. 날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바랐다. ‘더 글로리’로 보여준 새로운 얼굴처럼 앞으로의 행보에서도 더 놀랍고 새로운 얼굴로 가능성을 보여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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