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스포츠] “너의 귀와 입이 돼줄게”…키움 이조일 통역

이조일 매니저(왼쪽)와 푸이그. 사진=본인 제공

 외국인 선수들의 조력자로 지낸 지 4년째다. 늘 곁을 지키며 그들의 귀이자 입이 돼줬다. 낯선 땅에서 타향살이 중인 외인들에겐 최고의 말동무이자 친구다.

 

 야구장에선 같이 울고 웃었다. 직접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는 아니지만, 외인들이 보다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열심히 도왔다. 간절히 응원했다. 프로야구 키움의 운영팀 소속으로 통역 업무를 맡은 이조일(30) 매니저는 올해도 외인들과 함께한다.

 

◆누군가의 통역이 되기까지

 

 어릴 때부터 유난히 언어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생 때 미국에서 2년간 생활했다. 대학에서 국제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언어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왔다. 멕시코로 어학연수도 떠났다. 덕분에 영어와 스페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됐다.

 

 이조일 매니저는 “누군가가 시켜서 혹은 취업 준비를 위해서가 아닌, 언어에 대한 순수한 흥미가 컸다. 외국인들과 어울리는 활동을 무척 열심히 했다”며 “회화를 잘하려면 말을 많이 하는 게 최고다. 두려움 없이 자신 있게 말하다 보면 금방 실력이 좋아진다”고 밝혔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프로야구단 통역 일을 알게 됐다. 이 매니저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서 야구를 좋아하셔서 자주 접했다. 나도 야구팬이었다”며 “그래도 야구단에서 일하게 될 것이란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정말 운 좋게 일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첫 직장은 롯데였다. 2020년 1년 동안 근무 후 2021년 키움으로 이직했다. 처음엔 일반 회사원과 다른 근무 형태에 적응하느라 애썼다. 이 매니저는 “오후에 출근해 경기 끝날 때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등 색다른 생활 패턴에 익숙해져야 했다. 다행히 금세 적응했던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전문적인 야구 용어를 모두 익혀야 했다. 평소 야구를 좋아했음에도 쉽지 않았다. 이 매니저는 “꽤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매일 퇴근하고 집에서 추가로 공부했다”며 “영어단어를 외우듯 공책에 용어를 정리해 이해하고 암기했다. 현장에서 외인들의 의사소통을 원활히 도우려면 필수였다”고 돌아봤다.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수많은 외인과 더없는 추억을

 

 롯데에서는 훌리오 프랑코 코치와 조쉬 헤르젠버그 코디네이터의 통역을 맡았다. 키움에서는 타자 데이비드 프레이타스, 야시엘 푸이그, 투수 에릭 요키시, 제이크 브리검, 타일러 애플러, 알바로 에스피노자 수비코치를 도왔다. 이 매니저는 영어 이름인 ‘Joe’로 불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애플러다. 애플러는 지난해 키움 유니폼을 입었다. 정규시즌 33경기 140⅓이닝서 6승8패 평균자책점 4.30을 기록했다. 포스트시즌에도 준플레이오프 1경기서 1승 평균자책점 0, 플레이오프 2경기서 1승1패 평균자책점 2.00, 한국시리즈 2경기서 1패 평균자책점 4.50으로 꾸준히 역투했다. 올해는 대만프로야구(CPBL) 푸방 가디언스에서 뛴다.

 

 이 매니저는 “애플러는 정말 착했다. 선수들도 다 좋아했다”며 “물론 요키시나 다른 선수들도 착하지만 애플러는 유독 눈에 띄었다. 팀을 위한 희생정신이 컸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즌 중 개인적으로 힘든 상황에도 주위 사람들에게 내색하지 않고 프로답게 행동했다. 무척 인상 깊었다”며 “요키시처럼 한글을 열심히 공부해 어떻게든 글자를 읽으려고 노력하는 자세도 보였다. 마음가짐이 멋진 선수였다”고 덧붙였다. 이 매니저와 애플러는 지금도 종종 연락하며 소식을 주고받는다.

 

 잊지 못할 순간은 지난해 한국시리즈 6차전이다. 정규시즌을 3위로 마치고 준플레이오프부터 차근차근 올라갔다. SSG와의 한국시리즈서 선전했지만 6차전서 패하며 시리즈 전적 2승4패로 준우승을 기록했다.

 

 이 매니저는 “한국시리즈를 마치고 선수단 전체 미팅을 하는데 외인 3명 모두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게 보였다. 6차전에 투수는 애플러(선발 5이닝 2실점 비자책)와 요키시(구원 3이닝 2실점 1자책)만 등판했다”며 “두 투수 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승리를 이끌지 못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더라. 팀원들에게 너무 미안해해서 마음이 아팠다”고 회상했다. 그는 “지난해 가을야구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매일 곳곳에서 숨은 영웅들이 등장했다”며 “여운이 많이 남았다. 요즘도 가끔 그때의 경기 영상을 찾아본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박상우 매니저, 요키시, 애플러, 푸이그, 이조일 매니저. 사진=본인 제공

 

◆올해도 잘 부탁해

 

 올해는 투수 담당이다. 5년 차 장수 외인 요키시와 새 얼굴 아리엘 후라도를 맡았다. 요키시와는 3년째다. 이 매니저는 “요키시는 차분한 편이다. 스스로 연구를 많이 하는 꼼꼼한 스타일이다”며 “사소한 것에도 감사함을 표현할 줄 아는 선수다. 이제는 외인이 아닌 가족 같다. 정말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후라도는 처음엔 낯을 많이 가리지만 친해지면 장난을 잘 친다. 아직 알아가는 단계인데 사려 깊은 선수인 듯하다”며 “인터뷰할 때마다 팀 우승을 돕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책임감이 큰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로 한 시즌을 무사히 치르려 한다. 이 매니저는 “투수들은 선발 등판하는 날 평소보다 예민할 수 있다. 그럴 땐 귀찮게 하지 않고 말도 조심한다”며 “투구 결과가 좋지 않은 날에도 마찬가지다. 어설픈 위로를 건네는 대신 선수가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고 귀띔했다.

 

 벌써 4년 차지만 통역할 때마다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 매니저는 “통역은 외인의 귀이자 입이다. 의사소통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선수의 감정이나 말의 뉘앙스 등을 정확히 표현해야 한다”며 “특히 경기 중에는 짧은 몇 마디로도 순간의 흐름이 바뀔 수 있다. 그래서 항상 집중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올 시즌 목표는 선수들과 같다. ‘우승’이다. 이 매니저는 “정상에 오르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하기 위해 사명감을 갖고 일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외인 3명이 다 함께 큰 활약을 펼쳐줬으면 한다”며 “요키시, 후라도는 물론 에디슨 러셀까지 모두가 투타 각 지표에서 최상위권에 올랐으면 좋겠다. 부상 없이 건강히 잘해주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진=김두홍 기자 kimdh@sportsworldi.com

 

최원영 기자 yeong@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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