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수빈이 ‘트롤리’로 성공적인 지상파 데뷔작을 장식했다. 

 

지난 14일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트롤리’는 과거를 숨긴 채 살던 국회의원 아내의 비밀이 세상에 밝혀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딜레마 멜로. 정답 없는 선택지 앞에 마주한 인물들의 복잡한 내면을 치밀하게 풀어냈다.

 

신예 정수빈은 김혜주(김현주)-남중도(박희순) 부부를 찾아온 미스터리한 소녀 김수빈으로 분했다. 김수빈 역은 당초 김새론이 캐스팅됐다. 작품 준비 중 음주운전으로 하차 수순을 밟은 김새론을 대신해 정수빈이 ‘트롤리’에 합류했다. 

 

언젠가 나와 같은 이름의 배역을 만나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상상은 꽤 빠르게 현실이 됐다. 3차 오디션을 거쳐 만난 같은 이름의 수빈이었다. 종영을 앞두고 스포츠월드 사옥에서 만난 정수빈은 “‘트롤리’ 팀에겐 내가 의문의 방청객 느낌이었을 것 같았고, 감독님도 내가 그리는 수빈이에 대해 동의해주셨다. 현장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가 생각난다. 혼자 준비할 때는 걱정도 많았는데, 마음에 문을 먼저 열어주시더라. ‘함께’한다는 것에 대해 많은 걸 배운 현장이었다”고 종영 소감을 전했다. 

‘트롤리’의 반전은 상상을 초월했다. 잔잔하게 흘러가다 폭발하는 구조였다. 등장 인물의 시선으로 사건을 따라가던 시청자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여야 했다. 좋은 아빠이자 좋은 어른, 좋은 정치인으로 포장되었던 남중도의 실체가 드러나자 시청자가 받은 충격은 거셌다. 정수빈도 “최종 결말을 공유하기 전까지 서로가 공유하는 서사는 달랐다. 정말 충격적인 서사를 가진 작품이었다”고 돌아봤다. 

 

숨겨져 있지만 명확히 드러나진 않았다. 추측은 엇나갔고 반전은 휘몰아쳤다. 극 중 수빈은 얽히고설킨 비밀의 키를 쥔 인물이었다. 정수빈은 “수빈이 가진 서사도, 비밀도 많았고 아픔까지 있었다. 인물이 표현하려는 아픔과 성장을 최선을 다해 그리려 했다”고 했다. 

 

정수빈의 목표는 ‘끊임 없이 의심하게 하자’였다. 무채색이었던 수빈은 혜주를 만나며 변화했다. 사랑 받지 못해 날카롭고 모질었던 외면 안에는 자신을 지키기 급급했던 따듯한 내면이 있었다. 정수빈은 “좋은 어른 통해 마음을 열고 타인 생각하는 마음 배워나갔다. 수빈이도 그들이 준 사랑을 되갚기 위해 좋은 어른이 되는 인물이었다”고 돌아봤다.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하며 자라온 수빈은 원치 않는 임신을 한다. 위태로운 상황에 찾아간 친모조차 딸을 외면한다. 갈 곳을 잃은 수빈이 겨우 찾아낸 곳이 지훈의 엄마, 혜주의 집이다. 정수빈은 혜주를 찾아간 수빈을 설명하며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안전한 곳이라 생각하고 찾아간 게 아닐까”라고 점쳤다. 

 

중도와 여진의 관계를 불륜이라 여긴 지훈이 아버지를 만나러갔다. 그리고 시체로 돌아온다. 정수빈은 “수빈은 중도가 지훈을 죽였다고 생각한다. 불륜을 알리는 건 지훈이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이라 생각했다”면서 “사랑받지 못해 표현하는 방식에도 서툴지만 수빈이도 점점 마음을 열어가며 성장한다. 혜주를 어른으로서 사랑하고 좋아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정치인으로 성공가도를 달려온 중도, 과거의 아픔을 가진 혜주, 의문의 죽음을 맞은 지훈, 사실은 엄청난 비밀을 품은 여진까지 어느 하나 투명한 인물이 없었다. 흔히 말하는 ‘사이다’ 보단 ‘고구마’에 가까운 전개였다. 

 

“이 작품을 택한 배우들은 마지막 진실을 밝히기 위해 많은 걸 쌓아왔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에 더 큰 힘을 실어 경각심을 줬을 때 문제점을 더 크게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고 감춰오지 않았을까요. 의미가 잘 전달되면 좋겠고, 이러한 과정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트롤리’에서 다룬 ‘드라마 같은’ 사건은 이미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에 놀라움을 표현하며 정수빈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내가 믿는 것이 과연 정말 믿을 수 있는 것인가’였다”고 했다.

 

“가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 수사가 종결되고 진실이 규명되지 못하잖아요. 피해자는 2차 피해도 겪고 가해자로 몰리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어요. 선배님들은 더 나은 세상이 되도록 목소리를 내기 위해 작품을 선택하셨다고 들었어요. 소외되고 아픔이 있는 사람들의 사연을 알리고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랐죠. 각 인물마다 믿음에 있어서 통찰할 것이 있어요. 믿고 믿지 못하는 관계 속에서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세상 된다면 ‘믿을 수 있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큰 의미를 던지는 것 같아요.”

 

첫 작품 ‘소년심판’의 소년범 백미주 이후 ‘3인칭 복수’에서 복수를 의뢰하는 태소연, ‘아일랜드’의 데이트 폭행 피해자 이수련, 그리고 ‘트롤리’의 김수빈까지 강렬한 작품 속 더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신인 배우로서는 더없이 값진 기회였고, 아픈 서사를 가진 인물을 연기하며 정수빈도 함께 성장했다. 

 

아픔을 겪은 이들에게 불편함 없이 잘 그려내고 싶어 맡은 바 최선을 다했다. 전작을 하나씩 언급하자 정수빈은 브래드 피트와 마고 로비 주연의 영화 ‘바빌론’을 언급했다. 꿈을 위해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바빌론’의 여운을 전하며 그는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정말 좋은 어른, 좋은 선배님들을 만났다. 모두 내 목소리를 경청해주셨다. 영화를 보면서 그 감사함을 느끼게 됐다. 나도 배턴을 이어 받아 좋은 선배가 되고 싶은 마음”이라고 감동했다. 소속사 식구들도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고 애정을 쏟아주고 있다며 “그분들이 나를 좋은 사람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분”이라고 인사했다. 그러면서 “밝은 작품도 해보고 싶다”며 밝게 웃었다. 

 

극 중 수빈은 혜주라는 좋은 어른을 만난다. 정수빈에게 물었다. 좋은 어른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아직 어떤 게 어른인지 모르겠다.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면서 “혜주처럼 좋은 어른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를 믿지 못한다. 좋은 사람조차 의심하게 되는 상황이 답답하지만 언젠가 그 진심을 이해하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고 했다. 

 

한 번 읽었던 책이 시간이 흘러 다시 이해되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연기하고 있다. 새로운 작품,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트롤리의 딜레마’에서 나오는 법을 배우게 된 작품이다. 

 

실력으로 얻은 지상파 주연의 자리다. 정수빈은 “아직 TV에 나오는 내 얼굴에선 부족함이 더 보이는 것 같다. 한편으론 운이 좋았다는 생각도 든다. 감사함을 알기에 더 열심히, 성실하게 연기하겠다”고 겸손하게 답했다. 

 

연기로 다양한 사람의 감정을 느끼고 다양한 직업을 경험한다. “(연기를 통해)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모두 열심히 살고 있구나 하는 마음에 존경심이 생긴다”고 말한 정수빈은 “더 다양한 분들을 이해하고 언젠가는 좋은 어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싶다”고 이번 작품을 통해 깨달은 바를 전했다. 

 

‘트롤리’는 ‘트롤리 딜레마’에서 착안한 제목이다. 달리는 전차의 진행 방향을 바꿀 수 있다면 5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이 있는 선로로 기차를 돌릴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고찰이다. 제목을 처음 접하곤 고민에 빠졌다. 작품을 마무리할 즈음엔 ‘아무도 희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을 찾았다. 

정수빈은 “‘트롤리’를 통해 함께하는 행복을 배웠다. ‘트롤리 딜레마’에서 나는 무엇을 선택할까 고민했는데, 만일 내가 혼자가 아니라면 주변 사람들과 함께 기차를 멈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악순환을 가져오는 딜레마, 그 딜레마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트롤리’가 전차를 멈추게 하는 힘을 갖춘 세상을 그리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배우하길 참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고 의미있는 답변을 내놨다. 

 

사진=김용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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