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전개, 포기하지 않는 끈기. 배우 남지현은 세 자매의 중심에서 극을 이끌었다. 탄탄한 연기 내공이 뒷받침한 남지현의 ‘작은 아씨들’이었다.
지난 9일 종영한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은 가난하지만 우애 있게 자란 세 자매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유하고 유력한 가문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렸다. ‘돈’이라는 인생의 숙제를 풀어가는 세 자매의 스펙타클한 스토리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남지현은 세 자매 중 둘째이자 옳은 일을 위해 움직이는 기자 오인경으로 분했다. 면직 위기에도 박재상(엄기준)과 정란회의 비리를 파헤쳤고, 꿋꿋하게 소신을 지키며 기자로서 실체를 보도했다.
‘작은 아씨들’은 6개월간의 촬영 기간을 거쳤다. 종영을 앞두고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와 만난 남지현은 “첫 방송 이후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후반부 전개가 폭풍 같아서 더 그런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끝까지 함께 해준 시청자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한 그는 “결말에 만족하고 있는데, 시청자의 의견도 궁금하다. 다시 볼 수 있는 드라마이길 바라고 있다”고 했다.
실제 우애 좋은 언니가 있는 남지현은 인주, 인경, 인혜 세 자매의 돈독한 관계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전혀 다른 언니와 싸울 일조차 없는 관계. 세 자매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기저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있다는 것, 서로가 달라도 결국 ‘가족’이기에 모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인주와 인경은 더 현실 자매 같았어요. 맨날 티격태격하지만 중요한 상황에서는 서로를 먼저 찾고 의지하죠. 그에 비해 인혜는 자식 같은 존재였어요. 우리는 가난으로 고생하고 자랐지만, 인혜만큼은 절대 안 된다고. 충분히 있을법하다 생각했어요. ”
‘작은 아씨들’은 저마다의 가족사, 각자의 복잡한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남지현은 “입체의 끝판왕”이라고 표현하며 “양가적인 면도 결국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더라. 인경은 정의감이 가득한 기자이지만, 술을 마셔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인물이다. 거기에 가정사도 있다”고 했다.
인경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그런 인경을 연기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를 그리기 위해 고민하고 상의했다. 어쩌면, 오히려 더 현실적인 캐릭터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자신만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캐릭터, 결국은 지지 않고 이겨내는 인물의 성장에는 인간 남지현의 성향도 반영되어 있었다. 그 끝엔 한뼘 성장한 자신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지현은 인주, 인경, 인혜 중 둘째 인경을 연기했다. 왜 인경이었을까. 제작진과의 첫 미팅 때 던진 질문이었다.
“인경이가 어려운 캐릭터이긴 하지만 신뢰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하셨어요. 지금까지 캐릭터를 보면 결국은 옳은 방향으로 가는 인물이었어요. 인경이가 복잡한 인물이다 보니 여러 가지 표현할 수 있는 배우로 저를 떠올려 주셨다고 하셨죠. 다양한 모습 보여주고 싶은건 모든 배우의 공통적인 소망이라 생각해요. 결국 옳은 길로 가는 모습과 인혜를 너무 사랑해서 나오는 비뚤어진 모습까지 새롭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죠.”
가글로 위장한 독주를 마시면서 일을 했고, 이 사실이 밝혀지자 정직 처분을 받았다.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상황에서도 정의감에 불탔다. 언니의 20억은 신고의 대상으로 바라봤고, 동생이 엇나갈까 걱정하고 간섭하기도 했다. 시청자에게 미움을 사던 순간도 있었지만 “호불호가 갈릴 거라 예상했다”며 “주변 분들이 걱정하시더라. 나는 상처받지 않았다”고 덤덤하게 털어놨다.
인주는 돈을 좇았다. 반면 인경은 눈에 보이는 걸 좇지 않아 더 어려운 캐릭터였다. 남지현은 “표면적으로는 박재상을 노리는 것 같지만, 그보단 그의 실체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걸 목표로 하는 친구다. 12부 동안 단계를 밟아가는 친구라 초반에는 공감을 못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도 됐다”면서 “그 부분에서 작가, 감독님이 믿음을 많이 주셨다. 그래서 더 겁 없이 연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사회부 기자를 연기하기 위해 현직 기자의 도움을 받았다. 전문성을 표현하기 위한 리포팅 장면들은 수업을 거쳤고, 현장에서도 피드백을 받으며 촬영에 임했다. 인경을 연기하며 ‘이렇게까지 집요한 사람이 있을까’ 갸우뚱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문을 해 준 기자의 말을 듣고 확신을 얻었다. ‘사건을 파고들면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든다’는 말이었다. 진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졌을 때의 쾌감과 성취도 있다는 것. 남지현은 “세상에 인경처럼 사는 사람이 있겠다 싶었다. 그다음부터 인경이 어떤 행동을 하든 과감해졌다”면서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는 분들의 응원을 받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답했다.
인경은 엄기준이 연기한 박재상과 사사건건 대립했다. 박재상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파헤치고 또 파헤쳤다. 그중 인경의 “제가 느리지만 확실하게 일하는 타입이거든요”라는 말이 인경의 캐릭터성을 가장 잘 드러낸 대사라 생각했다.
원상아(엄지원)이 그린 계획을 실천해가던 재상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뉴스 생방송에서도 말을 잃을 만큼 인경에겐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남지현은 “재상의 죽음은 전혀 유쾌하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상실감 주는 신이다. 재상의 죽음을 원했다면, 희재하고 손잡았으면 됐을 거다. 그러지 않고 다 견디며 정정당당하게 뉴스로 보도하려 했는데 죽어버린 것”이라며 “그래도 인경은 불굴의 의지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마침내 깨닫게 된 강훈(종호 역)을 향한 마음도 ‘작은 아씨들’의 관전 포인트였다. 남지현은 “흔하지만 흔하지 않은 느낌을 주는” 관계로 바라봤다. 소꿉친구에서 연인이 되는 관계이지만, 조금 더 특별하게 생각했다.
“종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적이었어요. 하지만 인경은 받아들일 수 없었죠. 어린 시절 고모할머니 집에서 살면서, 가난으로 상처를 받은 아이거든요. 그런데 종호는 태어날 때부터 부자였고요. 열등감도 있었죠. 인경이 상처받긴 했지만, 종호가 잘못한 건 없어요. 그런데 ‘나랑 결혼하고 유학가서 공부하자’는 말에 화가 난 거죠. 화난 걸 보여주기 싫어 연락을 끊었던 거고요. 소중한 친구, 자신을 도와줄 사람은 종호밖에 없었고 여러 사건을 겪으며 깊은 사이가 된 거라 생각해요.”
‘인경 잘 알’ 종호는 인경이 듣고 싶었던 말을 계속해서 건넸다. 남지현은 이 같은 둘의 관계를 설명하며 “마음이 흔들린 결정적 시작은 부장의 실체를 알게 된 인경을 토닥이는 종호의 대사였다”고 했다. 인경이 티 내지 않고 살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을 사실은 모두 알고 있었던 종호였다.
인경은 종호를 보면 설레지 않고 편안하다며 그의 고백을 거절했다. 실제로 남지현은 사랑하는 사람을 어떤 존재로 인식할까. 그는 “사랑은 평화와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정감을 주는 쉼터 같은 거라 생각한다”며 “그래서 종호가 인경에게 하는 말이 설득력 있었다. 전쟁 같은 삶을 살아온 인경이기에 종호의 말을 들었을 때 더 효과 있지 않았을까”라고 점쳤다.
매 작품 발전하는 바를 찾는다. 이번 작품 역시 배움의 장이었다. 유독 ‘도전’의 의미가 강했다고. 남지현은 “매회 촬영 나갈 때마다 새로운 미션이 있는 현장에 가는 느낌이었다.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작은 아씨들’에서만 할 수 있는 도전이었고, 재밌는 과정이었다”라고 돌아봤다. 어찌 보면 무모할 법한 도전들도 좋은 결과로 이끌어줄 동료, 선배들이 현장에 함께했기 때문이다. ‘도전하는 건 좋은 거구나’하는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MBC ‘사랑한다 말해줘’(2004)로 데뷔해 성인이 된 후 MBC ‘쇼핑왕 루이’(2016), SBS ‘수상한 파트너’(2017), tvN ‘백일의 낭군님’(2018), MBC ‘365 : 운명을 거스르는 1년’ 등 주연작으로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배우로 18년. 아역배우로 10년, 성인이 된 후 8년 간 배우로 임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온전히 ‘배우’로 연기한 작품이다. 그는 들뜬 눈으로 “힘이 넘친다. 이것저것, 다양한 장르와 역할을 해보고 싶다. ‘비기너(beginner)’처럼 호기심이 많다. 에너지도 넘친다”며 “뭐든 도전해보고 싶다. 의욕이 불탄다”고 했다.
이제 2년 후면 배우로 만 20년을 채운다. 남지현은 “20대 초에 매 작품 조금씩 성장하길 바랐다. 지금 보니 그 느낌이 나오는 것 같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앞으로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자 한다. 보폭은 조금 키운 채 말이다. “서른 살이 되면 아역으로 10년, 성인으로 10년 딱 반반이 돼요. 그럼 어떻게 될까 더 궁금하고요. 앞으로 남은 2년을 알차게 채우고 싶어요.”
정가영 기자 jgy9322@sportsworldi.com
사진=매니지먼트 숲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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