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현의 톡톡톡] 헤어질 결심과 시리와 안개

 

칸영화제 감독상에 빛나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을 보러 갔습니다. 산꼭대기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사건에서 시작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건을 담당한 자긍심 강한 형사 해준(박해일)과 추락해서 사망한 남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입니다. 미스테리로 출발했지만 자료에는 멜로/로맨스가 제일 먼저 쓰여져 있는 걸 보면 쉽게 만날 수 없는 박찬욱 감독의 로맨스 영화인 듯 합니다. 일단 해준은 연구원인 이과 와이프와 ‘섹스리스는 절대로 불가능한’ 주말 부부이구요. 서래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한국에 귀국한 후에는 출장 간병인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화 속의 주요한 증인이 되는 인물 중에 서래가 매주 월요일마다 간병을 가는 할머니가 있는데요. 고령의 할머니가 스마트폰을 잘 사용하시는 것이 맞나 형사가 확인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장면에서 할머니가 ‘시리야..’라고 말씀하셨는데 갑자기 극장 안에서 제 핸드폰이 우렁차게 “네”라고 답하는 겁니다. 순간 어찌나 당황했는지 핸드폰 무음 확인하고 음량 버튼을 다시 제로로 만들어서 내려놓았습니다. 앞쪽 옆쪽 관객분들이 쳐다보시더니 쓱 웃으시더라구요. 가슴을 쓸어내렸죠.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선 이후, ‘시리야, oo노래 좀 틀어줘’ 라는 할머니 목소리에 조용히 있던 제 시리가 또 한번 “음악보관함에 음악이 없습니다”라고 명확한 목소리로 우렁차게 답을 하는데 어찌나 화들짝 놀랐던지 그때는 그냥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습니다. 다행히 제 주변분들이 웃어 넘겨주셔서 어찌나 맘속으로 감사하던지.. 추정해보건데 아마도 월요일 할머니 역할을 맡으신 정영숙 배우님 목소리와 제 목소리를 비슷하게 인식한 저의 시리가 충실하게 답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때맞침 며칠전 어느 극장 상영관에서 전회차 관람객이 분실한 휴대전화 알람이 여러차례 울리는 바람에 소동이 있었다는 기사를 보며 느낌이 남다른 1인이 저였습니다. 어쨌든 ‘헤어질 결심’은 제게 ‘시리의 추억’도 함께 남긴 영화가 되었습니다. 아 하나 더 남았습니다. 영화 마지막에 흐르는 정훈희, 송창식이 함께 부르는 ‘안개’. 꼭 끝까지 듣고 나오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배우 겸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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