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현의 톡톡톡] 스페인 교실에서 아리랑을

 

제가 호주에서 처음 학교 다닐 때 한 홍콩 친구와 대화를 위한 공통 소재를 찾느라고 ‘노래’를 이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도레미송’을 불렀더니 그 친구는 제게, 자기 나라 노래를 어찌 아냐고 했었지요.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도라지’를 이용해 번안한 것 같은 중국판 ‘도레미송’을 중국 노래로 알고 있었나봅니다. 제가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 배운 중국 민요 ‘모리화’도 물어보고, 포스터의 노래들도 이야기 나눴던 걸로 기억합니다. 음악 교과서에 있는 노래들이었으니까요. 그럼 다른 나라 사람들도 대한민국의 노래를 학교에서 배울까요?

 

물론 21세기 들어서면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K-culture의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프랑스, 태국 등 한국어를 대학입시 제2외국어 과목으로 채택하는 나라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강남스타일’을 비롯해서 최근 BTS까지, 좋아하는 K-pop을 따라부르는 세계인은 말할 것도 없이 참 많지요. 그렇다면 그것보다 더 한국적인 음악은 어떨까요. 혹시 학교에서 배우는 우리 노래도 있을까요? 바로 작년 11월에 우리의 민요 ‘아리랑’이 스페인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리게 되었다는 깜짝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이 빅 뉴스는 ‘세계인이 우리나라 노래를 우리말로 부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한 청년의 꿈에서 시작되었다는군요. 바로 스페인 밀레니엄 합창단의 임재식 단장이 주인공입니다.

 

1980년대 초 우여곡절 끝에 스페인으로 들어가서 성악 공부를 마친 그는, 모든 인종차별을 이겨내고 마드리드 시향 멤버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만난 동료 소프라노가 오디션곡으로 한국노래를 배워서 하고 싶다는 소리에 가곡 ‘동심초’를 알려주었는데요. 그 일이 동기가 되어서, 스페인의 프로페셔널 성악가들이 대한민국의 노래를 부르는 합창단을 만들자는 꿈을 꾸게 됩니다. 그로부터 15년후인 1999년, 드디어 ‘밀레니엄 합창단’을 창단하게 됩니다. 시작은 했지만 과정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열정과 겸손한 태도는 대한민국이 어딘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발음부호를 익히며 자발적으로 우리 노래를 부르게 만들었고, 성인뿐 아니라 우리나라 동요를 부르는 어린이 합창단까지 만들어 우리 노래를 전파시켰습니다. 그가 어디에 있던지, 혹은 이 세상에 없더라도 스페인에서 우리 노래가 울려퍼졌으면 좋겠다는 그의 소원이 음악교과서로 응답을 받은 것이지요. 지금의 K-culture가 있기까지 어쩌면 그의 씨앗 역할도 있지 않을까요. 밀레니엄 합창단의 다음 내한 공연을 응원합니다.

 

배우 겸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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