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넥슨이 2011년 12월 14일 일본 증시상장을 마친 지 올해로 만 10년이 흘렀다. 길게는 김정주 전 엔엑스씨(넥슨의 지주회사) 대표가 회사를 창업하던 1994년 12월부터 미국과 일본, 한국 중 어디로 상장할지를 두고 고심을 거듭해온 넥슨은 게임 산업의 메카인 일본을 종착지로 꺼냈다. 김정주 전 대표의 바람이 투영된 점도 있으나, 무엇보다 구성원들의 소망이 깃든 결과였다.
넥슨이 일본 도쿄증시에 상장한지 100일을 며칠 남겨둔 2012년 3월 13일 기자와 만난 최승우 당시 넥슨 일본법인 대표(현 넥슨 명예회장)는 “메이저리그에 들어와서 입단식은 마쳤는데, 일단 안타는 친 것 같다”며 “홈런도 날리고, 루키(신인)를 짓누르는 2년차 징크스를 깨야한다”고 소회를 전했다. 넥슨의 핵심 경영진 중 한 명으로서 큰 풍선을 불어낼줄 알았지만 의외로 첫 말은 넥슨 특유의 소박함이 감돌았다. 곧장 따라온 “일본 시장은 조용히 지켜보는 분위기여서 말 대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다짐은 긴장감마저 느껴졌다. 그는 “이용자들이 가볍게 즐겨보면서 넥슨의 게임 서비스에 친숙해지고, 결국 충성도 제고와 매출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간단명료한 전략을 밝혔다.
◆10년 동안 충실하게 쌓은 시장의 믿음

“아직도 차분하게 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며 시장 주체들의 시선을 예의주시하던 최 전 대표의 말은 시장에서 실적이라는 신뢰로 갈음됐고, 넥슨은 연 매출 4조 원을 바라보는 초대형 기업으로 도약했다. 넥슨은 매출로 대변되는 기업의 양(量)적인 팽창뿐만 아니라 질적인 발전도 이뤄가고 있다. 게임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원초적인 흐름에 더해 잠재력 있는 개발사를 발굴·육성하면서 게임 외적인 분야로 진출해 기업 가치를 제고하고 있다. 여기에 고용 창출과 나눔·상생 같은 사회적 책무에도 유난히 집중하고 있다.

특히 넥슨은 일본 상장 이후 안정적인 성장세가 뒷받침되면서 해외 상장에 성공한 IT·콘텐츠 기업의 사례로 꼽힌다. 2000년대 중반 그라비티와 웹젠 등 일부 국내 게임 기업이 미국 나스닥(NASDAQ) 같은 해외자본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대다수가 상장 폐지되거나 최대주주가 바뀌는 시련을 겪은 현실과는 상당히 대조된다. 해외 증시에 입성해 많은 자금을 수용하는 이면에는 이를 유지할 수 있는 비용과 인력 등이 부담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와 ‘카트라이더’, ‘던전앤파이터’, ‘서든어택’만을 떠올리던 넥슨은 어느새 ‘히트’와 ‘V4’, ‘오버히트’, ‘카트라이더 러쉬플러스’, ‘바람의나라: 연’ 같은 블록버스터급 모바일 게임에다, 넷게임즈·엠바크스튜디오 등 유망 제작사를 품에 안는 등 덩치를 불려왔다. 상장 첫 날(시초가 1307엔) 약 5500억 엔이던 시가 총액은 2020년 말 2조 8400억 엔(우리돈 약 30조 원)까지 증가하면서 닌텐도에 이어 일본의 주요 게임사 시가 총액 순위로는 2위를 기록했다. 지금은 약 2조 엔을 유지하고 있다. 2012년 1조 5000억 원 정도이던 매출도 2020년 한국 게임 기업으로는 최초로 3조 원을 돌파했고, 올해 3분기까지 2조 3000억 원을 달성했다.

넥슨 내부에서는 상장을 전후로 회사의 체질이 바뀌었다고 입을 모은다. 매출 확대에 몰입하던 과거 대신 상생이라는 책임감이 덧칠되고 있다. 이재교 엔엑스씨 대표는 2016년 4월 넥슨이 200억 원을 기부해 완공된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창업자의 의지가 컸고, 회사 내부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공감대가 큰 버팀목이 됐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처럼 넥슨은 게임 산업 자체에 대한 사회의 선입견과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오히려 낮은 자세로 세상과 눈을 맞춰왔다. 2005년부터 지방 곳곳을 돌며 어린이들을 위한 독서 쉼터(넥슨 작은책방)를 지어주던 넥슨은 이제 ‘통큰’ 키다리 아저씨로 자리매김했고, 이는 경영진과 구성원 모두가 한 마음으로 뭉친 덕분이었다. 넥슨은 그동안 ‘헤쳐 모여’ 형태로 수시로 합심하던 사회공헌활동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2018년 2월에는 비영리 재단(넥슨재단)도 설립했다. 이사장에는 김정욱 넥슨 부사장을 임명했다.
◆다가올 창사 30주년과 앞으로 10년
오는 2024년 창립 30주년을 맞는 넥슨은 IP(지식재산권)와 투자, 인적 자원의 증강(增强) 절차에 돌입한다. 내년에는 넥슨의 미래를 도맡을 신규 타이틀을 다수 선보인다. 넥슨의 DNA를 물씬 풍기는 작품부터 시장 주도형 라인업까지 두루두루 출발선에 선다.

우선, 글로벌 역작 ‘던전앤파이터’ IP를 차용한 ‘던전앤파이터 모바일’은 자회사 네오플의 액션 개발 노하우를 집약한 게임이다. 최근 두 차례 사내 테스트를 거치면서 완성도를 상향시키고 있고 1분기 중 국내 발매된다. 한국을 포함해 일본과 북미, 유럽 등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세 번째 글로벌 테스트를 마친 멀티플랫폼(PC·콘솔) 신작 ‘카트라이더: 드리프트’는 4K UHD 고해상도 그래픽과 HDR(High Dynamic Range) 기술을 탑재해 생동감 있는 레이싱을 자랑한다.

5대5 전략 대전이 근간인 PC 슈팅 게임 ‘프로젝트 D’도 업계의 관심이 남다르다. 여러 변수를 양산하는 캐릭터별 고유 스킬과 사실적인 전투 액션 등 전략적 플레이 요소를 강화한 게 백미다. 또한 중세 전장을 배경으로 30명 이상이 백병전 PvP(이용자끼리 대결) 전투를 펼치는 ‘프로젝트 HP’(가제), 넷게임즈에서 만들고 있는 루트 슈터(Looter Shooter, 3인칭 슈팅 게임 방식에 역할수행 장르의 성장 요소를 결합) ‘프로젝트 매그넘’ 역시 착착 준비되고 있다.

유력 개발사에 대한 투자도 빼놓을 수 없다. 넥슨은 2018년 11월 지분 투자를 단행한 스웨덴 국적의 엠바크 스튜디오를 올해 최종 인수하며 100% 자회사로 편입했다. 넥슨은 엠바크 스튜디오의 처녀작인 3인칭 협동 슈팅 게임 ‘아크 레이더’(Arc Raiders)를 2022년 출시할 예정이다. 다가올 번영을 공유할 인재 영입도 활발하다. 이미 채용 전환형 인턴십으로 200명 규모의 신입사원을 뽑았고, 2022년 안에 1000여명을 충원한다.
넥슨은 AI(인공지능) 기술을 미래 사업의 중심 축으로 잡았다. 2017년 4월 인텔리전스랩스를 세웠다. 이 회사는 머신러닝과 딥러닝 등 AI 기술을 활용해 게임에 적용된 부가 기능을 고도화하기 위한 시스템에 몰두하고 있다. 인탤리전스랩스에는 500여명이 일하고 있다. 향후 전문 인력을 갖춘 조직으로 육성한다는 복안이다. 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는 “우수 인재 확충과 성장 동력 확보에 투자를 지속하겠다”며 “프로젝트 선별에 신중을 기하면서, 선택한 프로젝트에는 과감하게 자원을 투입해 넥슨의 글로벌 경쟁력을 배가시키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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