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그아웃스토리]“아름다운 마무리, 30년 동안 행복했습니다”

 1년 전부터 은퇴를 계획했다. 창단 첫 통합우승으로 아름다운 이별의 판이 마련됐다. 후배들의 애정 어린 만류에 다시 고민하기도 했으나 박수를 받고 떠나기로 결정했다. 지난 24일 은퇴 발표 후 연락이 닿은 프로야구 KT ‘맏형’ 유한준(40)은 “30년 동안 누구보다 행복하게 야구를 했다. 욕심낸 적 없지만 이번에는 정말 축하받으면서 은퇴하고 싶다”고 웃었다.

 

 ▲마지막 홈경기와 홈런

 

 지난달 28일 NC전. 홈경기 마지막 타석에 들어서기 전 유한준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올 시즌 스프링캠프 전부터 은퇴를 계획해온 만큼 홈팬과 마지막 인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한준은 “모두가 짐작했을 테지만 그때가 수원에서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부터 마음을 굳게 먹었는데 꽤 벅찼다”고 말했다.

 

 통산 150번째 홈런을 그때 쳤다. 베이스를 돌아 더그아웃으로 향하던 그는 이례적으로 관중석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울컥했고, 눈가에는 눈물도 고였다. 개인 통산 3할 타율을 유지하고, 150홈런을 완성한 순간이었는데 머릿속에는 열렬히 환호하는 KT팬들의 모습만 남았다.

 

 유한준은 “수원야구장에서 마지막 타석이라는 일은 그때까지 나만 알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홈런이 나왔고 나도 소름이 끼쳤다”면서 “타이 브레이커와 한국시리즈를 홈에서 치르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컸는데 그 장면으로 조금이나마 짐을 덜었다”고 했다.

 

▲한국시리즈와 헹가래

 

 이미 마음을 굳혔어도 막상 30년 동안 입은, 정든 유니폼을 벗기가 쉽지 않았다. 장녀 하진(11) 양도 선수 유한준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쉬워했다. 페넌트레이스를 마친 뒤 가을야구를 준비하는 기간, 한국시리즈 기간도 유한준은 고민의 연속이었다. 그는 “나도 참 간사했다. 우승을 못 하면 어쩌지, 우승할 때까지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결과적으로 팀의 창단 첫 통합우승을 완성했다. ‘해냈다’라고 안도하는데 마운드에서 기다리는 후배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세리머니를 하던 중 후배들이 그를 둘러쌌다. 구현모 구단주, 이강철 감독에 이어 후배들로부터 헹가래를 받았다. 공중에 세 차례 부양할 때 유한준은 은퇴를 결심했다.

 

 유한준은 “경수와 포옹을 하고 ‘맡은 바는 다 이뤘다’라고 안도하는데 후배들이 나를 부르더라. 그리고 감독님과 구단주님만 하는 헹가래를 나도 해주더라”면서 “이성적으로는 알겠는데 감성적인 부분에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세 번 왔다 갔다 하는데 그 순간 ‘정말 행복하다’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사실상 그때 은퇴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통합우승 후 일주일

 

 축승회까지 마친 다음 날부터 유한준은 지도자와 프런트 갈림길에서 자문을 거듭했다. 후배들에게 수많은 조언을 해준 만큼 코치의 길도 가능했고, 시야를 넓혀 프런트에도 도전할 수 있었다. 두 갈래 모두 가능한 길인만큼 유한준은 자신과 확신이 필요했다. 유한준은 “하루에도 12번씩 생각이 막 바뀌었다”고 웃었다.

 

 고민 끝 결론은 더그아웃 바깥이었다. 30년 동안 더그아웃에서 야구를 지켜봤다면 남은 30년은 다른 위치에서 시야를 넓혀보자는 결론에 다다랐다. 지난 24일에는 수원 KT 위즈파크 4층에 마련된 사무실과 기자실 등 선수생활 내내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을 찾기도 했다.

 

 유한준은 “일주일 동안 ‘코치를 할 수 있겠나’라고 자문을 계속했다. 그런데 선배로서 조언과 코치로서의 코칭은 아예 다른 이슈였다. 내가 준비가 덜 됐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한 발자국 물러나서 야구장을 바라보면 어떤 생각일까 싶었다. 층계만 올라가서 야구장을 바라봤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누구보다 성실했던 유한준은 벌써 프런트로서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사진=KT위즈, 스포츠월드D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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