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정희원 기자] 세계에서 손꼽히는 유방암 명의인 백남선 원장이 최근 ‘포항 행’을 택했다. 그는 30여년간 유방암·갑상선암 환자를 돌보고, 학술활동에 나서며 세계 의료진들을 대상으로 유방암 수술법을 선보이며 한국 의술의 우수성을 널리 알려온 인물이다. 27일, 포항 세명기독병원을 찾아 백남선 암병원장을 만났다.
-갑작스러운 포항행 소식에 놀랐다. 서울에서 지역 병원으로 향하는 데에는 큰 결심이 있었을 것 같다.
“이대여성암병원에서의 근무를 정리하고 포항으로 내려오게 됐다. 지역 병원을 택한 것은 새로운 도전에 나서며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다. 지역민들이 서울을 가지 않아도 내가 자신 있는 분야의 의료서비스를 가까이서 경험하게 함으로써 지역 내에서 암 치료 분야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었다.
세명기독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통해 암으로 진단받는 환자는 연 200여명이다. 이들의 95% 이상이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향한다.
이제는 환자들이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최상의 진료를 보다 편안하게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암 진단을 받은 환자가 불편하고 비용도 많이 들어가는 타지에 가서 진료받는 것은 선진국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기도 하다.
그동안 국가와 소속된 조직들에서 유방암 분야에서 나를 알리기 위해 무척 노력해줬다. 덕분에 열심히 진료하고 환자를 돌볼 수 있었다. 이제는 서울이 아닌 지역에도 최상의 진료를 제공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열심히 진료에 매진할 생각이다.”
-포항 지역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포항에 특별히 연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병원 측의 ‘지역에 최상의 진료를 제공하겠다’는 미션에 공감했고, 원내 진료시스템을 둘러보고 포항행을 결심했다.
내 전공인 유방·갑상선암 분야는 치료를 시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만 면밀한 진료가 가능하다. 3차병원이라도 여건을 구비하지 못하고 있는 데가 적지 않은데, 이곳은 이미 암 진료를 위한 전반적인 시스템과 다양한 첨단장비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이를 제대로 알리지 못했을 뿐이다.
내 경우 유방암 치료 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향’을 가장 중시한다. ‘유방보존술’, 유방절제술 동시에 가슴을 재건하는 ‘동시재건술’을 도입하고 연구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단, 유방보존술은 대부분 방사선 치료를 시행하게 된다. 세명기독병원은 이같은 치료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
암을 진단하는 영상의학과 전문의, 해부병리과 전문의들의 전문성도 우수하다. 특히 암 치료에서는 병리의사 역할이 중요하다. 유방암은 수술 중 경계암이 있나 없나 동결절편 조직검사 등으로 바로 확인해야 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의료진도 상주하고 있다.
지역에서는 대학병원이 아니면 ‘작은 규모’일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곳의 경우 800병상을 갖추고 있다. 대학병원을 제외하면 전국에서 두번째로 크고, 전국 대학병원들과 비교해도 중간정도의 규모다.
이를 둘러보고 ‘내가 조금 고생하더라도 지역으로 옮기면 환자도 혜택을 얻을 수 있고, 나 역시 지역에서도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 수준을 넘어서는 병원을 함께 만드는 보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과감히 결정했다.
알고 보니 포항은 결코 작은 도시가 아니다. 61만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인근 경주, 영천, 울진 등 인접지역까지 고려하면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환자가 더 늘어난다. 나 역시 국내뿐 아니라 해외 환자들을 치료해왔다. 포항 지역을 시작으로 대구, 울산, 부산 지역을 넘어 해외 환자들까지 포항을 찾을 수 있도록 열심히 진료에 매진할 생각이다.”
-이제는 서울 환자들이 원장님을 만나러 포항으로 올 것 같다.
“그렇다. 역으로 서울 분이 포항에서 진료를 이어가겠다는 환자분들도 있다.”
-쉴 틈 없이 바로 진료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암은 ‘죽고 사는 문제’다. 이대여성암병원을 떠나기 직전 날에도 4명을 수술해 주고 왔다. 내게 있어 휴식이란 하루 종일, 며칠 쉬는 게 아닌 ‘망중한’이면 충분하다. 거취를 옮긴 뒤에도 추석 직전까지 검사를 요구하는 환자들의 수요를 최대한 반영하려 했다. 다행히 이같은 노력을 환자 분들이 알아주셨는지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미 향후 2주간 수술 스케줄이 꽉 차있다.”
-유방암 치료 철학을 공유해달라.
“미래의학은 단순 증상의 치료를 넘어 ‘예방의학’으로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유방암 역시 마찬가지다. 유방암의 예방은 3단계로 나뉜다.
아예 암이 생기지 않도록 교육을 통한 ‘1차 예방’, 조기진단·조기치료로 마치 암에 걸리지 않은 듯한 컨디션으로 관리하는 ‘2차예방’, 마지막으로 조기진단을 받지 못했더라도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 ‘3차예방’으로 나뉜다.
국내 유방암치료는 세계 톱 수준이다. 치료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 국내 유방암 환자의 5년 생존률은 92%, 10년 생존률 84%다. 특히 유방암은 종양만 제거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 유전·생활습관 관리 모두 케어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환자들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케어하려 한다.”
-지역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어떤 클리닉으로 거듭나고 싶은지.
“유방암과 관련된 의료진이 체계적으로 협업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원스톱 진료’를 목표로 지역민의 편의성을 높이려 한다. 면밀한 진단과 정확한 치료는 기본이다. 동결절편 검사를 시행, 암으로 진단되면 바로 수술을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진단까지 하루 만에 나올 수 있도록 조치하면 진단을 받고 초조하게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 게다가 환자는 MRI·CT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서울로 올라가는 시간·경제적 비용까지 감소된다. 그래서 하루만에 진단을 가능하게 한 뒤, 치료 효율성을 높이려 한다. 서울 지역 3차병원은 환자가 워낙 많아 진단에만 4~6주 걸리는 것과 대비되는 장점이다.”
-향후 목표는.
“유방암 분야에서 1등을 해야겠다는 확고한 목표를 갖고 있다. 젊은 의사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이를 이어가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무엇보다도 지역에 있는 병원이니까 당연히 서울보다 못하다는 인식을 지우고 싶다. 미국 메이요클리닉의 사례를 들 수 있다. 메이요클리닉은 주변에 옥수수밭밖에 없는 미네소타 지역에 둥지를 틀었다. 지금은 미국인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의료기관으로 꼽힌다.
영어로 병원(hospital)이라는 것은 ‘호의를 베푼다’는 의미를 갖추고 있다. 나 역시 새로운 둥지에서 실력 있는 의사, 친절함, 아픈 사람을 위해 호의를 베풀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전세계 환자들이 오고 싶은 유방암 분야 특화 클리닉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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