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정가영 기자] 젠틀하지만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다. 자타공인 ‘꽃중년’의 대표주자, 배우 지진희가 ‘언더커버’로 또 하나의 대표작을 남겼다.
지난 12일 종영한 ‘언더커버’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살아온 남자가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며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지진희는 변호사인 아내를 외조하는 가정적인 남편 한정현을 연기했다. 1990년대 시위현장에서 만난 아내와 사랑에 빠진 후 인생을 걸어 가족을 지킨 인물. 하지만 그에게는 안기부 언더커버 요원 이석규라는 과거가 숨겨져 있었다. 비밀을 지키며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남자의 절실함, 여기서 오는 긴장감으로 ‘언더커버’의 축을 이끌었다.
지난 14일 종영인터뷰로 만난 지진희는 ‘언더커버’ 편성시간의 아쉬움을 털어놓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5%대의 시청률로 마무리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시원섭섭한 소감을 밝혔다. 그가 ‘언더커버’ 출연을 결심한 이유에는 ‘액션’이 있었다. 그는 손가락을 보여주면서 “봉고차 문에 손가락이 끼여 지금도 잘 구부려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비록 부상을 입었지만, 이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기도 하다. 집에서 요리만 하는 남자 한정현이 과거에 요원이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아버지를 외면한 채 새로운 가족만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가는 한정현. 지진희는 이 지점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인물의 선택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는 “왜 이렇게 됐을까 끼워 맞춰 봤다. 그러다 보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내가 연수(김현주)를 너무나, 부모도 버릴 만큼 사랑했다는 것. 태열(김영대)이 나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도 있을 테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면서 돌아가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았다. 이석규가 되면 모든 행복이 깨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라고 설명했다.
‘언더커버’는 배우 지진희와 김현주의 세 번째 만남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SBS ‘파란만장 미스김 10억 만들기’(2004년), SBS ‘애인있어요’(2015)에 이어 ‘언더커버’까지 15년을 넘어선 인연이다. 호흡은 두말할 것도 없이 완벽했다. 지진희는 “세 번째 만남에는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만일 멜로가 강했다면 힘들었을 수도 있다. 이번엔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고, 사랑으로 도와주는 관계여서 (선택)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네 번째 만남은 쉽지 않을 것 같다. 혹시라도 하게 된다면 10년 후쯤 시트콤으로 만나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대장금’의 민정호부터 ‘언더커버’의 한정현까지. 배우 지진희에게 대중이 기대하는 부분 중에 큰 축은 여전한 ‘멜로’다. 점점 무르익어가는 ‘꽃중년’의 대표주자로서의 삶은 어떨까.
지진희는 “중년 멜로를 계속 찍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감정이 생길 수 있도록 비주얼적인 준비도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어 출연작 JTBC ‘미스티’(2018)를 언급한 그는 “또래의 사람들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됐다, 다양한 사람들의 취향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중년의) 나이에도 사랑하고 싸우고 하는 모든 감정이 있다는 걸 몰랐구나, 내가 무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나이에 따라 많은 게 달라지지만, 그 안에서 사랑한다는 것, 내가 그걸 (연기)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따뜻한 말 한마디’가 특히 좋았어요. 그 당시에도 중년의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는 않았거든요. 위로를 받는다기보다는 이런 감정이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된 계기였어요.”
연기를 시작한 지 23년. 이제는 “예전과 달라지고, 나아졌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때가 됐다. 지진희는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그렇다.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질 수밖에 없다. 많은 경험을 하고 여유가 생겼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기도 하고 동료들을 배려하면서 서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고 설명했다.
30대에 ‘대장금’이라는 작품을 만나 배우 지진희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었다. 40대에 ‘애인있어요’를 대표작으로 남긴 그에게 50대의 대표작은 ‘언더커버’다. 그는 “제일 마지막 작품이 가장 좋은 작품으로 남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좋은 건 ‘연륜’이다. 어느덧 50대에 접어든 그는 “여유가 생기고 연륜이 쌓이는 느낌이다. 하나하나 쌓이는 공예 같다”고 표현했다. 나이가 들어 좋은 것이 아니라, 여전히 20대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가 느끼는 행복의 이유다. 50대에 마주할 새로운 일과 즐거움이 그를 미소 짓게 한다. 그는 “지금껏 후회 없이 살았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이라면서 “모든 게 살면 살수록 재밌다.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더 많아지는 것 같다”고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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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끌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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