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정가영 기자] 장한서에게 빈센조가 그러했듯 곽동연에게도 ‘빈센조’는 큰 의미다. 또한 장한서가 성장했듯 곽동연도 그를 통해 뿌듯한 성장을 맛봤다. 변화무쌍한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완성하며 존재감을 각인시킨 작품이었다.
지난 2일 종영한 tvN 드라마 ‘빈센조’는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가 베테랑 독종 변호사와 함께 악당의 방식으로 악당을 쓸어버리는 이야기를 그렸다. 곽동연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겁 많은 빌런 장한서를 연기했다. 안하무인 악독한 바벨그룹 총수의 모습부터 단순무식하고 어설퍼서 더 귀여운 ‘빈센조 바보’의 면모까지 스펙트럼 넓은 연기로 캐릭터를 다채롭게 채웠다. 안타까운 가족사로 연민의 감정까지 불러일으키며 도무지 미워할 수 없는 빌런으로 확고한 캐릭터를 구축했다.
곽동연은 지난달 29일 화상으로 ‘빈센조’ 종영 인터뷰를 진행했다. 차기작 준비로 짧게 자른 머리로 등장한 그는 “반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촬영하는 동안도 행복했고, 방영 중에도 많은 사랑을 받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고 벅찬 소감을 전했다.
처음 작가, 감독과의 만남에서 곽동연은 장한서에 관해 ‘형에게 완전히 억압된 삶을 살고 있지만 빈센조를 통해 옥죄던 삶을 벗어날 것 같은 인물’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마치 본방송을 기다리는 시청자의 마음으로 대본을 기다렸다는 그는 “대본이 너무 재밌고, 예측이 안 됐다. 오히려 시청자분들이 우리보다 더 잘 맞추시더라”고 웃으며 “정말 설레는 마음으로 대본을 기다렸다. 예측하지 못한 내용이 나올 때마다 박수를 쳤다. 뜬금없지 않고 변주하는 대본에 감탄했다”고 했다.
시작과 끝이 완전히 달랐다. 곽동연은 점층적으로 변화하는 장한서의 서사를 탄탄한 연기력으로 그려내 설득력을 더했다.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입체적으로 변화해갔다. 형 장한석(옥택연)에 대한 공포감이 가득했던 눈빛에서 반격의 기회를 노리는 탐욕의 눈빛으로, 무차별적 폭력에도 무한 복종했던 모습에서 날아오는 트로피를 피하고 감옥에 가는 장한석의 수갑을 손수 채워주는 태도로 내면의 변화를 그렸다. 빈센조(송중기)를 향한 분노가 관심으로, 동경으로 바뀌는 과정 역시 ‘빈센조’에서 놓칠 수 없는 순간들이었다.
부담보다 설렘이 큰 작품이었다. 곽동연은 자신의 많은 얼굴을 꺼낼 수 있을 거라 상상했다며 “살면서 축적해 놓은 소스들을 꺼내어 써볼 수 있겠다는 생각,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작품이라 행복했다”고 돌아봤다.
곽동연은 장한서를 ‘성장 캐릭터’라고 표현했다. “대본에 한서의 일대기가 잘 명시되어 있어서 (표현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시청자들이 한서에게 어느 정도의 연민을 가지고 공감해주길 바랐다”는 그는 “오해의 소지 없이 인물의 성장기가 진실하게 보일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답했다. 한서의 성장만큼이나 곽동연도 성장했다. 수많은 선배 배우들, 훌륭한 작가, 감독과 함께하는 순간순간이 성장의 발판이었다. 그는 “마치 ‘교과서’를 보는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일생을 억압 속에서 살아가던 장한서의 ‘답답함’이 살아남겠다는 ‘독기’로 바뀌었다. 빈센조라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혼란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희망을 맛봤다. 그는 “후반에는 빈센조와 감정적으로 교류하고 그로 인해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로 비치길 바랐다”고 했다.
그의 기억 속에 가장 인상적으로 남은 신은 장한석이 돼지 피를 뒤집어쓴 13회의 엔딩. 빈센조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한서의 장면이다. 곽동연은 “한서가 그렇게 환하게 웃은 건 처음이었다. 사실 방송에 나간 것보다 몇 배는 더 과하게 연기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장한석을 꺾고 내 삶을 찾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느끼는 장면이었다”고 의미를 찾았다.
“억울하고 아팠고 힘들었어요.(웃음)”
장한서는 형에게 평생을 당하고 살았다. 그럼에도 ‘억울함’보단 ‘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인물이라 생각했다. 형의 악행을 보면서 ‘나도 언제 죽을 줄 모른다’는 공포에 가득 차 있었다. 그 두려움을 전달하는 것이 곽동연의 숙제였다.
시청자는 장한서의 표정 변화에 주목했다. 얼굴에 다 티가 났다. 곽동연은 “한서는 그걸 검출만 한 지능도, 의도도 없었다”고 설명하며 “감정의 쓰레기통이 꽉 차서 더이상 숨길 수 없는 지경까지 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빈센조’ 속 인물들은 몰라도 시청자는 알아챌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는 “감독님이 포인트를 다 집어 주셨다. 덕분에 칭찬받을 수 있었다”고 겸손한 답변을 이어갔다.
어떤 인물과 붙여 놓아도 돋보이는 곽동연의 케미 역시 안방극장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곽동연은 옥택연과는 정상을 차지하기 위해 권력싸움을 벌이는 피 튀기는 형제의 모습을, 송중기와는 친형보다 더 친형 같은 브로맨스를, 조한철과는 보기만 해도 웃음을 유발하는 코믹 호흡을 자랑하며 극의 흥미를 자극했다.
“택연이 형은 밝고 유쾌한 에너지 가지고 계세요. 다만 저는 준우에 대한 애정 하나도 없는 캐릭터 맡아서 너무 많이 친해지지 않도록 조심했죠. 최대한 극 중의 관계가 돋보이도록 노력했어요. 송중기 선배님은 내공이 어마어마하세요. 항상 배려를 많이 해주셨죠.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면서 제가 뭘 하든 다 받아주고 맞춰주셨어요.
빈센조를 만나 장한서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빈센조를 향한 존경심을 쌓았고, 정상적인 기업가가 되고자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물었다. 만일 장한서의 삶에 빈센조가 없었다면. 만일 빈센조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는 어떤 삶을 살아갔을까. 곽동연은 “늘 생각했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만일 빈센조를 못 만났다면 얼마 가지 않아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거라 본다. (장한서는) 그만큼 위태위태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을 것 같다”고 예측했다.(인터뷰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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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이치앤드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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