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성그룹 싹쓰리 공식 활동이 끝나기 직전인 지난 13일, 싹쓰리 멤버 비는 자신의 개인 웹예능 채널 ‘시즌 비시즌’ 첫 공식영상을 공개했다. 첫 공식영상 조회수는 공개 10일째인 23일까지 152만 회, 채널 구독자 수도 20만 명을 넘어섰다.
당연히 싹쓰리 인기 후광효과겠지만, 그게 ‘전부’라 볼 일은 또 아니다. 싹쓰리는 엄밀히 ‘비의 재기’에 방점을 찍어준 사건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 전부터도 이미 흐름은 형성돼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2020년 들어 비는 이미 ‘재기의 아이콘’처럼 여겨지는 상태다. 싹쓰리 활동 중엔 멤버 이효리에 ‘재기’ 초점이 맞춰졌지만, 엄밀히 이효리와 비는 크게 다르다. 이효리는 수년째 준(準)은퇴 스탠스를 유지 중이면서도, 문득 돌아와 보면 늘 화제중심이 돼있었다. 특히 TV 예능 관련해선 그만한 화제몰이 캐릭터 자체가 없다시피 하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그때그때 절묘하게 대중 트렌드와 합을 맞춰 선도해온 체질적 트렌드 세터다.
그러나 비는 그와는 입장이 다르다. 그간 엔터테이너로서 비의 전성기는 2011년 군 입대와 함께 끝났다고 여겨지고 있었다. 트렌드 상으론 사실상 ‘넘어간 페이지’ 인상이 강했다. 비는 이제 ‘올드’해졌기 때문이었다. 2002년 배우 권상우 등과 함께 ‘몸짱 열풍’ 일원으로 스타덤에 오른 상황부터가 그랬다. 이후 그가 가수로서 표현하던 고독하고 처절하며 자기도취적인 남성상에 이르기까지, 비라는 캐릭터를 둘러싼 이런저런 면면들, 감수성 전체가 지금은 모두 ‘올드’한 콘셉트에 가까워졌다.
‘거기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 이에 대해 미디어는 대부분 그 ‘올드’함 탓에 ‘조롱거리’가 됐다가 그를 기점으로 다시 떠오르게 됐단 분석들을 내놓고 있다. 소위 “오명도 일종의 명성”이란 오랜 원론에 기댄 분석이다. 그 ‘조롱’을 ‘화제성’으로 인식해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쪽이 결국 재기에도 성공할 수 있단 논리.
물론 그 자체로 틀린 얘긴 아니다. 그리고 비는 확실히 ‘그런 식’ 사고전환에 발 빠른 구석이 있었다. 군 제대 후 정규앨범 6집 ‘Rain Effect’ 활동 중 타이틀곡 ‘La Song’이 “태진아가 피쳐링한 것 아니냐”는 조롱을 뒤집어쓰자, KBS2 ‘뮤직뱅크’ 무대에서 아예 태진아를 직접 섭외해 콜라보했던 무대가 한 예다. 조롱=관심=화제성이란 공식을 애초부터 잘 이해하고 있었단 방증이다. 그런 명확한 인식이 ‘1일1깡’ 붐에서 ‘깡’ 리믹스 버전 성립까지 단박에 이어냈고, 싹쓰리는 그렇듯 재빨리 이어낸 흐름에서 성립된 ‘방점’에 속한다.
그런데 또 다른 측면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비’라는 엔터테인먼트 캐릭터 자체의 본질적 면면에 대해서다. 단적으로, 비는 애초 ‘예능이 키워낸 캐릭터’였다. 많이들 잊고 있지만, 실제로 그랬다. 2002년 데뷔 당시만 해도 가수로서 미묘한 반응, ‘될 듯 말듯’ 애매한 상황에서 그를 스타덤에 올려준 게 바로 MBC ‘강호동의 천생연분’ 등 TV예능프로그램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가수 유승준이 2002년 병역기피 사건으로 퇴출되면서 그가 맡고 있던 ‘성실하고 건전한 몸짱’ 캐릭터를 대체한 것에 가까웠지만, 비는 여기서 특유의 소년적 매력을 더해 순식간에 여성층 지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어마어마한 겹치기 예능 출연으로 대중 노출도를 극단적으로 높인 것도 큰 역할을 했다. 당시엔 그런 식으로 해석되지 않았지만, 결국 본인 ‘캐릭터’ 자체가 가장 먼저 팔렸단 점에서, 지금으로 치면 ‘아이돌성’이 부단히 높은 엔터테이너였던 셈이다.
그 다음은 드라마였다. 2003년 예능 인기를 등에 업고 출연한 드라마 데뷔작 KBS2 ‘상두야 학교 가자’가 소위 ‘상두 폐인’들을 양산해내며 대대적 인기를 누렸고, 인지도와 스타성이 거기까지 확고해지고 난 뒤에야 가수로서 첫 히트곡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2004년 KBS2 드라마 ‘풀하우스’가 국내는 물론 아시아 전역에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며 비로소 ‘월드스타’로서의 길이 열리게 된 순서다.
이게 바로 ‘비’란 캐릭터의 본질적 면면이다. 늘 ‘본업은 가수’란 스탠스를 취해오긴 했으나, 엄밀히 그의 ‘캐릭터성’이 먼저 예능서 호응을 얻고, 그 캐릭터성 중 특히 소년적 면면을 적극 활용한 드라마를 통해 월드스타로 거듭난 경우. 가수로서 인기와 입지는 오히려 예능과 드라마 인기에 ‘딸려온’ 형태라고까지 볼만 하다. 알고 보면 당대에 비만큼 강렬한 아이돌성을 지닌 캐릭터도 또 없었던 셈이다.
그럼 비의 이후 행보도 사뭇 이해가 간다. 특히 군 제대 후 비는 ‘캐릭터 상으로’ 매우 애매해졌다. 벌써 서른이 넘어 있었고, 애초 그를 띄워 올렸던 소년적 캐릭터를 유지하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애초 배우건 가수건 포지셔닝하기 참 애매한 나이대가 30대 초중반이다. 그리고 그 점이 중요했다. 언급했듯, 비는 애초 예능서 ‘캐릭터’를 쌓아 드라마에 진출하고 드라마를 통해 가수로서 입지까지 세운 엔터테이너였기 때문이다. 침체기는 계속됐다.
그러다 2019년 영화 ‘자전거왕 엄복동’ 대실패와 그에 따른 ‘UBD’ 놀이, 마찬가지 조롱놀이였던 ‘1일1깡’ 붐이 우연찮게 터졌다. ‘왕년의 월드스타’로서 근엄하고 진지한 모습만 알고 있던 신세대들에게 ‘애초 그를 띄워 올렸던’ 예능적 이미지가 부활하게 됐다. 그의 ‘캐릭터’가 십 수 년 만에 새로 씌어진 셈이다. 외모는 여전히 근사하지만 어딘지 어이없고 좀 우스꽝스런 ‘아저씨’. 나이에 걸맞으면서도 차별성이 있다. 여기에 싹쓰리가 남긴 ‘섭섭이’ 캐릭터 등 보다 살갑고 예능적이며, 어떤 의미에선 ‘2020년대 아이돌스러운’ 자연스러운 면면이 더해졌다. ‘올드’함이 순식간에 휘발됐다.
앞선 ‘La Song’ 예로도 알 수 있듯, 비는 늘 이런 흐름을 잘 포착하던 인물이다. 이번에도 흐름을 잘 잡고 싹쓰리 종료와 함께 그 캐릭터성을 살려줄 유튜브 채널부터 개설했다. 거기서부터 모든 게 잘 클리어 된다면, 천천히 드라마나 음악 분야까지 ‘새로운 자기 캐릭터’로 영역을 넓혀나갈 수도 있다. “오명도 명성의 일종”이란 식 단순논리론 좀처럼 해석하기 힘든 ‘비의 재기’도 바로 이런 점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비의 스타덤 구축엔 언제나 기능론 차원 ‘순서’가 있었고, 비는 늘 그 결정적 포인트를 놓치지 않는 엔터테이너였단 점 말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사진=M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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