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AOA 사태로 보는 K팝 그룹의 ‘관계성’

 고작 일주일 남짓 지난 일이지만 ‘AOA 지민 ‘왕따’ 사건’은 벌써 ‘옛일’ 같단 느낌이다. 요즘 대중문화 신 화젯거리는 그야말로 사나흘마다 교체되는 분위기라 그렇다. 코로나 19 판데믹 상황 이후론 더 그렇게 됐다. 대중의 외출이 줄면서 인터넷상 접근성 높은 대중문화 화제 소비가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그 수요만큼 화젯거리도 광적인 속도로 교체된다.

 

 어찌 됐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 대해선 더 살펴볼 만한 얘기가 아직 더 존재한다. 일례로, 이 사건을 한국과 거의 동시에 지켜본 해외 K팝 팬들 반응 문제가 있다.

 

관심 있게 지켜봐 온 이들이라면 잘 알고 있겠지만, 국내 K팝 신 이런저런 사건들에 대한 해외 K팝 팬들 반응은 한국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인 때가 많다. 이들 입장은 그야말로 ‘아이돌이 먼저’다. 특정 아이돌이 사회적 물의 또는 엄연한 범죄까지 저지른 상황에서도, 이들은 늘 아이돌을 먼저 보호한다. 소위 ‘쉴드’를 친단 얘기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한국대중 반응 자체를 비판한다. 자신들로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하며 까다로운 잣대로 공적 역할을 맡는 인물도 아닌 사인(私人) 아이돌을 공격한단 이유에서다.

 

 곧 ‘한국대중 vs. 아이돌’ 구도를 만들어, 자신들은 명확히 아이돌 편에 선다. 우리가 나서 날 선 한국대중으로부터 K팝 아이돌을 ‘보호’해야 한단 취지에서다. 그렇게 자신들 해외 K팝 팬들이 있으니 한국대중에 지지 말고(?) 힘내서 열심히 버티란 의미로 ‘Stay Strong’ 해시태그 달기 등도 펼친다.

 

 그런데 이번 ‘AOA 지민 ‘왕따’ 사건’에서 해외 K팝 팬들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거의 한국 내 반응과 다를 게 없을 정도로 완강히 AOA 전 멤버 지민 측을 비난했다. 그리고 그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 측 무책임함에 대해서도 똑같이 비판이 일었다. 대단히 보기 드문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어쩌면 아이돌 개인 문제로 ‘한국대중 vs. 아이돌’ 구도가 성립된 게 아니라, 아이돌들끼리 내부문제가 펼쳐진 흔치 않은 사례라 그럴 수도 있다. 그 첫 사례가 되는 ‘티아라 화영 왕따 사건’ 당시만 해도 해외 K팝 팬덤이 지금처럼 서구권까지 널리 퍼져있던 건 아니어서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없는 점도 있다. 그런데 또 다른 측면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해외 K팝 팬들은 과연 K팝 아이돌들에 ‘무엇’을 원하느냐는 부분에 대해서다.

 

 당연히 해외 K팝 팬들은 K팝 아이돌 노래와 퍼포먼스, 즉 ‘본업’ 요소만 즐기는 게 아니다. 애초 ‘아이돌’이란 상품 자체가 그렇다. 음악퍼포먼스를 둘러싼 수많은 요소를 상품화시키며 일종의 ‘음악 종합상품’ 스탠스로 접근하는 구조다. 그 과정에서 이른바 ‘관계’ 요소도 셀링 포인트로서 작동하게 된다. 팀 내 멤버들 간 ‘케미’를 바탕으로 서로 간 커뮤니케이션이나 관계성 등을 조명, 팀 자체에 대한 애착을 높여주는 요소다. 그리고 그를 통해 해당 팀을 단순한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라, 매우 친밀한 사적공동체로도 여기게 된다.

 

 한국대중 입장에서야 이런 것들이 1세대 아이돌 시절부터 아이돌 상품의 ‘당연’한 요소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해외 K팝 팬들 입장에선 다르다. 해외에선 팀으로서 등장한 아티스트들이라도 기본적으론 ‘개인’들이 모래알처럼 모여 있는 형태로 인식하도록 구성돼있다. 각자 사정이 있다면 언제든 부서질 수 있고, 특정 멤버 인기가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솔로 활동을 위해 탈퇴 경로를 밟는다.

 

 비단 미국, 유럽 등 서구 보이그룹, 걸그룹들만 그런 게 아니다. 당장 옆 나라 일본만 해도, AKB48을 위시로 한 48그룹 시스템이 존재한다. 팀으로서 공동체 의식보단 매년 행해지는 총선거 등을 통해 다른 멤버들을 ‘밟고’ 올라가는 구조, 그야말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 이전, 걸그룹 모닝구무스메 등도 특정 멤버 인기가 올라가면 솔로로 데뷔시키고, 빈자리는 새 멤버를 뽑아 채우는 시스템 등이 존재해왔다.

 

 이런 분위기로 자국 보이그룹, 걸그룹들을 소비해온 입장에서, K팝 그룹들은 전혀 다른 코드를 보여줬단 것이다. 하나의 ‘단합된 팀’으로서의 매력이다. 공통목표를 지닌 운명공동체이자 강력한 사적유대체로서 접근했다. 간혹 사정이 생겨 팀에서 탈퇴하는 경우가 발생해도, 이들의 ‘우정’만큼은 지속된단 신호가 이런저런 SNS 등을 통해 늘 보여져왔다. 해외 K팝 팬들은 바로 ‘이런 점’에도 충분히 끌리고 매력을 느껴 K팝 팬덤으로 들어선 이들이다. 자국팀들에선 느낄 수 없는 특유의 끈끈한 분위기가 이들을 매료시킨 것이다. 하나의 스포츠팀인 동시에 학교 교실이기도 하며, 같이 놀러 다니는 마음 맞는 패거리이자 어떤 의미에선 형제자매이기도 한 독특한 연대의식이 이들을 사로잡았다. ‘이것이 K팝’이란 느낌으로.

 

 그런데 ‘AOA 지민 ‘왕따’ 사건’은 바로 ‘이 부분’을 극단적으로 훼손시킨 사건이란 것이다. 자신들이 믿고, 또 즐겨왔던 K팝 그룹들 ‘관계성 신화’를 무너뜨린 사례다. 그러니 그만큼 실망과 분노도 커질 수밖에 없고, ‘한국대중과 똑같은 비판반응’이란 참 보기 드문 현상까지도 일으키게 됐다는 것.

 

 어찌 됐건 ‘AOA 지민 ‘왕따’ 사건’은 결국 문제의 핵심이었던 AOA 리더 지민의 팀 탈퇴로 일단락되긴 했다. 그리고 AOA는 향후 활동지속 자체가 극단적으로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당장 마이크임팩트 측에서 주최하는 원더우먼페스티벌 출연부터 취소된 상태다. 팀 자체로 봐도 음악퍼포먼스 차원에서 지분이 컸던 지민의 탈퇴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상 해체’란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렇게 사건 자체는 일단락되는 분위기라 해도, 이 사건에서 돌아봐야 할 부분들은 너무나도 많다. 아이돌그룹 멤버들 인권 관련 문제가 첫째고, 그와 관련해선 이미 지난 일주일간 수많은 논의가 이뤄졌다. 그런데 ‘그런’ 팀 내 분위기는, 국내와 해외 K팝 팬들까지 모두 포함해, 팀 셀링 포인트 자체를 일순간에 박살 내 소비층 전체를 떠나가게 할 수 있을 정도 ‘사업적으로도 최악의 리스크’란 점 역시 인지해둘 필요가 있다. 소속사 측에서 집중적으로, 그리고 면밀하게 개입해 관찰하고 유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 ‘K팝 신화’는 곧 ‘관계성 신화’를 바탕으로 삼는 측면이 더없이 강하단 측면에서 더더욱 그렇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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