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여자)아이들, 글로벌 팬덤형 걸그룹의 미래

 걸그룹 (여자)아이들이 ‘10만장 클럽’에 입성했다. 지난 6일 발매된 (여자)아이들 미니3집 ‘아이 트러스트(I Trust)’가 한터차트 기준 음반판매 초동 11만2000여장을 기록하면서다. K팝 걸그룹 초동 10만장 돌파는 아이즈원, 트와이스, 블랙핑크 등에 이어 역대 4번째다. 그리고 중소기획사 걸그룹으로선 사상 최초다.

 

 물론 (여자)아이들 이번 성과는 초동기록만이 아니다. 전 세계 58개 지역 아이튠즈 톱 앨범차트 1위, 타이틀곡 ‘오 마이 갓(Oh My God)’ 뮤직비디오 공개 일주일 만에 5000만 뷰 돌파 등 전체 및 자체기록 경신들이 많다. 그러나 음반 초동판매량은 또 다른 얘기다. 해당아티스트 팬덤 규모를 가늠하는 중점지표이기 때문이다. 아티스트 실제 수익성과 직결된다. 거기다 지금은 그 의미가 훨씬 크다. 현 아이돌시장은 ‘대중성’ 개념이 와해되고 남녀 통틀어 ‘팬덤형’으로 통일돼가는 흐름이기에 그렇다. ‘초동판매량으로 팀 입지와 그 미래가 점쳐진다’는 입장도 과언은 아니다.

 

 그럼 (여자)아이들은 어떻게 미니2집 ‘아이 메이드(I Made)’ 초동 2만300여장에서 이번 미니3집 11만2000여장으로 6배 가까운 성장을 기록하게 된 걸까. 자잘한 요인들은 많다. 피지컬앨범 공백 13개월 간 쌓인 팬덤 ‘원기옥’도, CD 사양을 2종으로 늘린 전략 등도 거론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 요인은 해외팬덤, 그중에서도 중국팬덤의 급격한 성장이다.

 

 ‘아이 트러스트’ 발매일 직전까지 중국서 주문된 앨범 공동구매량만 약 7만8000여장에 달했다. 중국 물량만으로도 이미 지난 앨범 초동 4배 가까이 나온 셈이다. 여기에 추가된 국내 판매량은 미디어노출 및 각종 이벤트에 한계가 있는 중소기획사 걸그룹으로서 고개가 끄덕여질 만한 성장세다. 국내만이라면 ‘그 정도’ 성장을 보이고 끝났어야 정상이다. 여기서 중국팬덤 폭주(?)가 ‘4번째 10만장 걸그룹’ 탄생의 방아쇠였던 셈이다.

 

 그럼 어쩌다 지난 한 해 동안 중국서 팬덤 폭발이 일어난 걸까.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일단 중국선 ‘본래’ K팝 여러 갈래 중 힙합 베이스 그룹들이 인기 있다. 중국 K팝 열풍 진원지는 애초 빅뱅이었고, 지금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 인기를 누리는 K팝 걸그룹이 블랙핑크다. 자국 걸그룹엔 다른 콘셉트를 요구하기도 하지만, K팝 한정으론 걸크러쉬계 인기가 압도적이다. 아닌 게 아니라 (여자)아이들도 데뷔 이래 같은 맥락으로 중국서 주목받고 소소한 반향을 일으켜온 팀이다. 그러다 지난해 중국인멤버 우기가 ‘중국판 런닝맨’으로 알려진 예능프로그램 ‘달려라’ 시즌7에 캐스팅되는 호재를 맞았다. 안젤라베이비, NCT 멤버 루카스 등과 함께 약 3개월 간 고정출연했다. 그만큼 인지도 확충에도 가속이 붙었다.

 

 연이은, 그리고 결정적 계기가 지난해 가을 방영된 M.net ‘컴백전쟁: 퀸덤’이었다. ‘퀸덤’은 중국동영상사이트로도 송출돼 현상적 인기를 누렸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화권 멤버 둘이 포함된 (여자)아이들에 많은 관심이 쏠렸고, ‘퀸덤’을 통해 발표된 싱글 ‘라이언’은 중국 최대 음원사이트 QQ뮤직 K팝 차트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거뒀다.

 

중국대중은 본래 서바이벌 음악프로그램을 유난히 즐긴다. ‘프로듀스 101’의 ‘라이선스 진퉁’과 ‘짝퉁’ 프로그램이 동시에 소화될 정도다. 자국 콘텐츠와 K팝 콘텐츠 가리지 않고 끝없이 소비된다. 그중에서도 ‘퀸덤’은 ‘현역’ K팝 여돌들이 출연한단 점에서 더더욱 관심을 모았다. 그리고 그 관심과 인기가 국내 피지컬음반판매 성장으로 돌아온 사례는 이번 (여자)아이들이 처음도 아니다.

 

 ‘퀸덤’에 함께 출연해 우승을 차지한 마마무 경우가 먼저다. 우승 타이틀만큼이나 인지도와 관심도도 높아져, 지난해 11월 발매한 정규2집 ‘리얼리티 인 블랙(Reality in Black)’이 초동 7만500여장을 판매하는 쾌거로 돌아왔다. 마마무 기존 기록은 미니9집 ‘화이트 윈드(White Wind)’ 3만8500여장이었다. 배 가까운 증진이 이뤄진 셈이다. 그 이변 중심엔 3만1000장대로 폭증한 중국 공동구매가 있었다. 나아가 새롭게 형성된 마마무 중국 팬덤은 마마무 멤버 문별의 솔로1집 ‘달이 태양을 가릴 때’ 초동 6만6000여장 대박까지 이끌었다.

 

 결국 이번 (여자)아이들의 걸그룹 음반판매 ‘빅4’ 입성은 지난 1년여 간 차곡차곡 쌓아놓은 경력과 조건들이 차례로 클릭된 결과라 볼 수 있다. 의도한 것인지 ‘하다 보니 그렇게 된’ 운 좋은 흐름인진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 모든 흐름은 중국이란 거대한 시장을 정확히 조준하고 있었다. 그렇게 또 다른 ‘중소의 기적’이 탄생한 것이다.

 

 더 있다. (여자)아이들 이번 성과는 아이즈원의 충격적인 ‘초동 35만장 컴백’으로 가시화된 K팝 걸그룹 ‘다음 단계’, 이른바 ‘글로벌 팬덤형’ 흐름에 다시 한 번 방점을 찍어줬단 점이다. 그 점에서 (여자)아이들은 사실 아이즈원 경우보다도 더 극적이다. (여자)아이들은 데뷔 당시 ‘대중형’ 걸그룹 외양으로 주목받은 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대중형’ 수익모델이 빠르게 와해되는 상황을 맞아 자연스럽게 ‘글로벌 팬덤형’으로 노선이 변경, 오히려 수익과 위상을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그 자체로 현 아이돌시장 ‘대중성’ 몰락과 ‘글로벌 팬덤’ 부상 흐름을 상징하는 팀이 됐다.

 어찌됐건 이번 (여자)아이들 성과가 제시하는 미래 K팝 화두는 다양하다. 먼저 한한령(限韓令)으로 전략적 타깃에서 밀려났던 중국시장 확인 차원이 있다. 한한령 와중에도 중국 팬들은 어떻게든 틈새를 찾아 K팝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더란 것이다. 한한령 이후 ‘어찌됐건 시장 자체를 정책적으로 닫진 않는’ 일본시장 안전성에 더없이 높은 가치가 매겨졌지만, 아무리 불안정한 중국시장이라도 일단 변치 않는 충성도 정도는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계속 주시하며 힘닿는 데까지 관리해볼 필요가 생겼다. 아닌 게 아니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한설과 함께 한한령 해제 기대감도 부풀어 오르는 시점이다. 미래는 어찌될지 모른다.

 

 한편, 말 많고 탈 많은 CJ ENM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역할도 짚을 만하다. (여자)아이들과 마마무까지 효과를 본 ‘퀸덤’ 위력으로도 알 수 있듯, 하여간 K팝 해외시장 진입발판으로 그만한 플랫폼도 또 없더란 것이다. 아이즈원이 합작대상 일본뿐 아니라 중국시장에서도 K팝 걸그룹 중 블랙핑크 다음 2~3위권 인기란 점은 많은 걸 시사한다. ‘프로듀스 48’ 발판이 그만큼 탄탄했단 방증이다. ‘프로듀스 101’처럼 극단적 형식은 아니어도, 그 노하우를 통해 보다 투명하게 작동하는 플랫폼을 기획해볼 만하다. 잘만 하면 ‘퀸덤’처럼 아이돌시장 참여자 모두에 그 수혜가 돌아갈 수 있다.

 

 끝으로, 사실 (여자)아이들에게 올 한 해는 꽤나 우울한 시기가 될 뻔했다. 코로나19 판데믹 사태 탓이다. 물론 경제주체 모두에 해당되는 얘기긴 하지만, 올해는 (여자)아이들 운명에도 ‘획을 그을’ 기점이었다. 본래 4월부터 월드투어 예정이었다. 규모도 컸다. 미국, 유럽 등지를 망라하는 세계 32개 도시 투어기획. 이 투어는 (여자)아이들 ‘글로벌 팬덤’ 완성을 향한 토대가 될 수 있었다. 애초 (여자)아이들은 미국 빌보드 K팝 칼럼니스트 제프 벤자민 등 수많은 현지 전문가들로부터 향후 미국진출이 가장 기대되는 걸그룹으로 꼽혀왔다,

 

 그 기회는 이제 무기한 연기됐지만, 최소 (여자)아이들은 예상치 못한 중국팬덤 등판 덕에 아쉬운 시기를 넉넉히 방어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지난 8일 미국 유니버설뮤직 산하 리퍼블릭 레코드와 파트너십도 맺었다. 코로나19 사태 탓에 당장 왕성한 프로모션 활동을 할 수야 없겠지만, 향후 북미시장 진출에 탄탄한 입지는 얻어냈다. 이래서 ‘발판’은 가능한 여러 지점에 개발해두는 편이 안전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알려준 현실은, 세계는 이미 서로 분리시킬 수 없을 만큼 촘촘히 연결돼있고, 그 탓에 일어날 수 있는 현상들은 예측하기조차 힘들단 점이다. 그저 계란을 힘닿는 대로 여러 바구니에 나눠담으려 노력하는 것 외에 다른 대비책은 없다. 한류를 겨냥하는 한국대중문화산업 전체가 인지해둬야 할 부분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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