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전영민 기자] “더 빨리 올 걸 그랬나 싶어요.”
프로스포츠에서 베테랑들은 설 곳이 없다. 젊고 유망한 선수들이 즐비하고 연봉마저 낮다. 구단 입장에서도 운영비를 축소하기 위해서 고참들을 내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자프로농구 신한은행은 시대에 역행한다. 올 시즌을 앞두고 한채진(36)과 김수연(34)을 영입했다. 각각 원소속팀에서 자리를 잃었는데 정상일(53) 감독이 품었다. 팀 사정을 고려했다기보다 두 명의 능력만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지난 시즌 꼴찌팀의 선수 구성에 외부에선 비관적인 시선을 보냈다. 에이스 김단비(30)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선수들이 새로 호흡을 맞추는 상황이었다. 실전은 물론 훈련에서부터 마찰음을 냈다. 온전히 훈련을 진행하기도 여건이 어려웠다. 베테랑은 좋지 않은 상황을 오히려 동기부여로 작용했다. 김수연은 “우리 팀은 사실 처음에 ‘외인구단’이었다. 새로 호흡을 맞춰야 하는 선수들도 많았는데 노장들까지 합류한다고 하니 비난도 셌다. 그래서 그런 예상을 꼭 뒤집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사실 정 감독의 혹독한 훈련에 지치기도 했다. 실전보다 더 혹독한 정 감독의 훈련을 이겨내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런데 인고의 시간을 함께 하니 무형의 울타리가 생겼다. 고참들이 직접 나서 자신들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기 시작했다. 설 자리를 잃어가는 베테랑들이 수년간 쌓아온 생존 방식을 동생들에게 전파한 것이다. 아무리 ‘원팀’이라고 해도 자신이 은퇴하기 전까지는 내놓지 않을 수 있지만 두 베테랑도 팀처럼 역행했다.
언니들의 오픈 마인드에 동생들도 마음을 열었다. 먼저 다가가 장난을 거는가 하면 눈만 마주쳐도 뜻을 아는 관계로 나아갔다. 한채진은 “사실 나만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알려준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라며 “그런데 신한은행에 오니 그런 생각이 들지 않더라. 후배들에게 나누고 공유하면 팀이 잘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다 알려주고 싶을 정도다”라고 설명했다.
두 베테랑은 “이런 팀은 진심으로 처음입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나이를 불문하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눔의 미덕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깨달았다. 정 감독이 만든 판에 한 채진과 김수연의 나눔이 이뤄지고 있다. 올 시즌도 꼴찌 유력 후보였던 신한은행이 버티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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