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월드=권기범 기자] KIA 문경찬은 2019시즌 54경기에 출장해 1승 2패 24세이브 평균자책점 1.31의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 2015년 데뷔 이후 두 번째 풀타임 시즌이자 본인의 커리어하이. 리빌딩에 돌입한 기아에게도 알토란같은 활약이었다. 팀 사정에 따라 갑작스럽게 맡게 된 마무리 보직에 훌륭히 적응하며 기아 불펜의 중추로 거듭난다.
이 같은 활약을 토대로 문경찬은 프리미어12를 앞두고 국가대표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린다. 비록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문경찬은 특유의 시원시원한 피칭을 뽐냈다. 대만전에는 다소 아쉬웠으나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공 7개로 한 이닝을 끝내며 대표팀의 세대교체 전망을 밝게 했다.
문경찬은 특유의 다이내믹한 폼을 앞세워 배짱 있는 투구를 펼친다. 속구 구속은 140km 대 중반. 분명 마무리 투수 치고 압도적이지는 않은 구속이다. 그러나 타자들은 문경찬의 공을 쉽게 공략하지 못 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트래킹 데이터에 따르면 문경찬의 투구에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바로 높은 회전수와 긴 익스텐션이다.
문경찬의 속구 회전수는 주로 2500 중반을 기록하며, 컨디션이 좋을 때는 2600을 상회한다. 이는 KBO리그 투수들이 보통 기록하는 회전수에 비해 200~300 정도 웃도는 수준이다. 속구의 회전수가 높으면 타자가 예상한 궤적보다 떠오르는 느낌을 받는다. 문경찬을 상대하는 타자들이 공 밑 부분을 헛스윙 하는 장면이 많이 보이는 이유다.
익스텐션 또한 남다르다. 익스텐션은 투수의 디딤발로부터 공을 끌고 나오는 거리를 뜻한다. 익스텐션이 길수록 타자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효과가 있다. 한국인의 신장을 감안할 때 보통 투수들의 익스텐션은 1.7m~1.9m에서 형성된다. 문경찬은 2.1m~2.2m, 최대 2.3m까지도 측정된다. 한 마디로 문경찬은 회전수가 높아 치기 어려운 공을 실제 구속보다 빠르게 느끼게끔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공략하기 어려운 속구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문경찬은 2019시즌 자신의 속구 비율을 72%까지 끌어올렸다. 나머지 구종은 25%의 비중을 가진 슬라이더. 강력한 속구 구위를 기반으로 한 슬라이더 투 피치 불펜 투수. 우리는 이러한 유형의 국가대표 불펜 투수를 또 한 명 알고 있다. 바로 키움 히어로즈의 특급 불펜, 조상우다.
실제로 조상우는 2019시즌 속구 73%, 슬라이더 24%의 투구패턴을 보였다. 문경찬과 매우 흡사한 비율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두 선수의 성적 또한 매우 유사했다.

그렇다면 정말 문경찬은 타이거즈의 조상우가 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충분히 가능하다. 10km 정도의 구속 차이가 있음에도 문경찬의 속구 구위는 150km 중반에 이르는 조상우의 속구와 견줄 만 했다.

데이터에 의하면 조상우의 속구는 존 안쪽보다는 존 바깥으로 흘러나가게 던질 때 기록이 좋았다. 이는 조상우의 쓰리쿼터에 가까운 투구 폼으로 인한 횡무브먼트와 빠른 구속이 조합된 결과로 빠져나가는 유인구성 속구의 효과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문경찬은 조상우에 비해 존 바깥쪽 공보다는 존으로 우겨넣는 속구의 성적이 더 좋았다. 존 안으로 들어오는 공임에도 타자들은 문경찬의 속구를 치기 매우 어려워했다는 뜻이다.

정통 오버핸드 투수일수록 속구의 횡적인 움직임보다는 종적인 움직임이 훨씬 크다. 문경찬은 릴리즈 포인트가 2.0m에 가까운 오버핸드 투수이다. 문경찬의 속구는 높은 회전수와 긴 익스텐션과 맞물려 실제 구속 이상의 효과를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높음을 데이터가 드러내고 있다.
물론 한 시즌의 좋은 성적만으로 문경찬을 여러 해 동안 꾸준한 성적을 거둔 조상우와 비교하는 것이 시기상조일지 모른다. 하지만 문경찬은 알고도 치기 힘든 좋은 속구를 가졌고, 데이터 또한 그 이유가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27세의 젊은 나이임을 감안할 때, 갑작스런 구위의 저하가 나타나지만 않는다면 문경찬은 앞으로도 좋은 성적을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묵직한 속구와 역동적인 투구 폼을 무기로 기아 타이거즈 뿐 아니라 국가 대표 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문경찬의 2020시즌을 주목해보자.
polestar174@sportsworldi.com 사진 OSEN 자료제공 (주)스포츠데이터에볼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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