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권영준 기자] 천년만년 전성기일 수는 없다. 오르막길이 있다면, 반드시 내리막길도 있다. 그 내리막길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이 내려오느냐, 아니면 어떻게 해서든 속도를 늦추며 정상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느냐를 두고 늘 고민한다. 프로야구 한화의 김태균과 정근우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들의 처절한 생존기를 누가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한화의 김태균과 정근우는 1982년생 동갑내기로 한국 프로야구를 호령한 스타 출신이다. 고졸 신인으로 2001년부터 프로야구 무대를 밟은 김태균은 일본 진출 시기를 제외하고 지난 시즌까지 16시즌 동안 활약하며 핵심 타자로 존재감을 알렸다. 지난해 개인 통산 300홈런과 2000안타의 대기록을 작성했고, 통산 타율도 3할이 넘는다. 대졸 신인으로 2005년 프로에 데뷔한 정근우은 공·수·주 삼박자를 갖춘 선수로 평가받으며 최고의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역시 통산 타율이 3할이 넘으며 개인 통산 1000안타, 100홈런, 300도루, 1000득점의 기록을 돌파했다.
하지만 흘러가는 시간을 막을 순 없다. 이들도 벌써 30대 후반에 접어들었다. 당연히 기량도 전성기만 못하다. 냉정한 현실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김태균은 1일 현재 타율 0.305로 번뜩이고 있다. 정근우는 외야수로 전향하면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단 1%라도 팀에 보탬을 주기 위해 헌신을 다 하고 있다.
사실 이들은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 벅차다.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만큼, 다른 무언가를 채워야 한다. 본인에게 집중하기도 모자란 시간이지만, 이들은 그 시간을 떼어내 팀과 후배들을 챙긴다. 경험으로 체득한 노하우를 공유하고, 후배들의 어깨를 두드린다. 이들이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 하나만으로도 팀에 불어넣는 사기는 상상 이상이다.
한용덕 한화 감독은 세대교체를 선언했다. 그런데 세대교체가 선언한다고 쉽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한 번의 세대교체를 위해 길게는 10년이 걸리기도 한다. 한용덕 감독은 그 험난한 길을 지난해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았다. 물론 중간 과정에서 혼선을 빚기도 했지만, ‘맏형’ 김태균과 정근우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킨 이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모든 감독은 “팀이 부진하면 감독부터 잘린다. 감독은 잘하는 선수를 기용한다”고 말한다. 당연한 이치이다. 한용덕 감독이 정근우, 김태균을 믿고 활용하는 것은 이들보다 믿음을 주는 선수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출전을 보장해 ‘키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프로는 키워주는 곳이 아니라, 큰 사람이 뛰는 곳이다.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는 베테랑을 넘어서는 능력을 보여줬을 때 이뤄진다. 실제 정은원은 지난해 자신의 능력을 보여줬고, 이를 통해 미래를 본 한용덕 감독이 주전자리를 보장하면서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이것이 세대교체의 본질이다.
김태균과 정근우는 여전히 팀에 필요한 자원이다. 다만 전성기 시절 정상을 찍었기에, 이들을 향한 기대치는 여전히 정상에 있다. 그렇기에 부진한 모습이 보이면 ‘은퇴해라’ ‘이제는 늙었다’고 비난을 쏟아낸다. 이 비난을 쏟아낸 사람도 언젠가 같은 경험을 하고, 같은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김태균과 정근우는 오늘도 방망이를 잡고 구슬땀을 흘린다. 처절하고, 또 절실하게.
young0708@sportsworldi.com / 사진=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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