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LG와 두산이 맞붙는 잠실구장, '한지붕 두 가족' 두 팀 중 이날 진짜(?) 잠실의 주인은 두산이었다. 3년 전이라면 홈팀이 쓰는 1루 측에서 모습을 드러냈어야 했던 김현수는 이날 회색 어웨이 유니폼을 입고 3루 더그아웃에 자신의 장비를 풀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유턴을 결정한 김현수는 지난 10년간 뛰었던 두산이 아닌 '이웃사촌' LG로 이적했다.
'출가외인'이 처음으로 친정집을 찾는 경기. 경기에 앞서 김현수는 김태형 두산 감독에게 "요새 방망이가 맞질 않는다"라고 투덜대기도 했고, 두산 선수들과 "잘 있었냐"는 안부를 주고받으며 반갑게 포옹했다. 물론 시범경기에서 이미 겪어봤지만, 정규시즌 공식 출격은 느낌이 또 다를 수밖에 없었다. "많이 정들었던 팀이다. 경기하면 기분이 정말 이상할 것 같다"라는 고백도 나왔다.
취재진에게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하냐"라고 묻던 김현수는 첫 타석에 들어서서 바로 헬멧을 벗었다. 등을 돌려서는 두산 팬들에게 허리를 굽혀 꾸벅 배꼽인사를 했다. 1루에서는 환호가, 3루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김현수이기에 가능했던 잠실의 풍경이었다.
'잠실구장 유경험자'의 능력치는 수비에서 먼저 증명됐다. 6회말 투구수 80개까지 올라선 소사의 팔에도 힘이 빠질 무렵, 두산의 신흥 거포 오재일은 단 하나의 실투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힘껏 퍼올린 149km 직구는 높게 떠 좌중간 담장을 향해 달아갔다. 누가 봐도 홈런에 가까웠지만, 좌익수 김현수는 끝까지 쫓아가 펜스에 몸을 부딪쳤다. 쭉 뻗은 글러브 안에는 오재일의 타구가 들어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소사는 모자를 벗고 김현수에게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두산 선발 유희관과의 맞대결은 '깜짝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캠프에서 치른 자체 청백전에서도 서로 붙어본 적이 없다던 둘은 5회까지 땅볼, 내야안타, 볼넷으로 제법 비등한 승부를 펼쳤다. 7회 네 번째 타석, 전광판에는 '자동 고의사구' 안내 화면이 나왔고 유희관은 천천히 걸어나가는 김현수를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두산 벤치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투수교체 사인에 오해가 있었던 게 밝혀지면서, 1루에 있던 김현수는 다시 타석으로 돌아와 보호장비를 찼다. 옛 동지와의 마지막 맞대결은 다소 싱겁게(?) 마무리됐다.
친정팀에 비수를 꽂는 한 방은 9회에 등장했다. 불펜 김강률을 상대로 4번째 타석에 들어선 김현수는 0B-2S의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133km 포크볼이 스트라이크존 가운데로 떨어지는 것을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그대로 당겨친 타구는 비거리 120m짜리 우월 동점 투런포가 됐다. 이 한 방으로 극적인 균형을 맞춘 LG는 11회 연장까지 치르는 혈투 끝에 5-4 끝내기패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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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O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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