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들마의 드라마 비틀어보기] 킬링타임용 종영 드라마 3편

퐁당퐁당 연휴가 시작됐다. 해외로, 국내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지만, 자발적 혹은 자포적으로 집에서 연휴를 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 분들을 위한 정주행 드라마 3편을 소개한다. 단, 시작 전 주의를 알린다. 최소한 이틀은 약속 없이 혼자 지낼 요량이라면 시작하라. 끊기가 쉽지 않을 테니.

#정신 쏙 빠지게 집중할 무언가가 필요하신 분께 권하는 드라마, '무정도시' 20부작

'무정도시'(사진)는 JTBC의 2013년 드라마다. JTBC가 2011년 12월에 개국했음을 감안하면, '무정도시'는 편성된 방송국 자체가 안방에 존재감이 없던 시절에 방영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도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됐다. 그 우연 속 10분 동안, 정경호와 윤현민이 수트빨을 뽐내며 까만 도시 위에 있었고, 마약을 거래했고, 자신들을 위협하는 자들과 싸웠다. 이렇게나 매력적인 남자들과 스토리라니, 영혼이 빼앗기는 데 더이상 필요한 건 없었다.

'무정도시'는 언더커버(undercover, 경찰, 정부 등을 위해 첩보 활동을 하는 자)'를 다룬 드라마다. 영화 '신세계'나 '무간도'를 본 사람이라면 언더커버 류가 어떤 내용인 지 대충 감이 올 거다. 시종일관 어둡고 긴장감이 팽팽하며 경찰과 조직 간의 암투가 이어진다. 이런 소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무정도시'를 봐야한다. 20부 내내 탄탄한 스토리로 시청자를 가지고 노는 통에 한 시도 집중을 안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정경호의 인생 연기와 윤현민의 풋풋한 신인 시절, '응답하라 1988' 속 '택이 아빠'였던 최무성의 진가가 한꺼번에 나온다. 이 배우들의 팬들이야 이미 봤겠지만, 길고 긴 연휴를 맞아 다시 한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단, 당부할 말이 있다. 매회가 끝날 때마다 다음 회가 심하게 궁금해져 한번 시작하면 밤을 새는 경우가 많다. 미리 각오하고 시작하길 바란다.

#눈물 콧물 다 쏟아내고 싶다면 이 드라마가 최고! '디어 마이 프렌즈' 16부작

요즘 흔히들 '인생작'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배우나 작가의 마스터피스를 일컫을 때나 어떤 사람이 큰 감동을 받았던 예술 작품을 칭할 때 쓰인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그런 면에서 필자의 2016년 인생작이다. 그리고 고현정이라는 배우의 2000년 대 인생작이라고 해도 좋겠다.

노희경 작가의 작품을 편애하는 편이라, 첫 방을 기대하며 시청했던 기억이 난다. 근데 첫 회는 좀 시끄러웠다. 왁자지껄 계모임을 즐기는 십여 명의 아줌마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어딘 지 모르게 필자와 엄마를 보는 듯한 장면들도 살짝 거북했다. 그러다가 어느새 3회부터 빠짐없이 울고 있는 나를 마주했다. 고현정이 엄마의 아픔과 자신의 상처와 심지어 그 모든 걸 감내해야 했던 세상과 직면했을 때는, 내가 마치 그녀가 된 듯 슬픔이 온몸에서 터져 나왔다.

한없이 소소한 우리 집 이야기였다가, 문득문득 쏟아지는 명대사로 머리를 서 너 번 얻어맞으면서 다시 한번 노희경 작가의 필력에 감탄하기도 했다. 거기에 김혜자, 나문희, 신구 등 대배우의 연기는 논하기에도 죄송한 경지였다. 최소 30년 이상 산 사람이라면, 삶이 각박하고 지친다고 느껴진다면, '디어 마이 프렌즈'를 통한 힐링을 권한다. 각 티슈 준비는 필수다.

#달달함 끝판왕 로맨스가 필요하다면, '인현왕후의 남자' 16부작

송재정 작가는 '나인:아홉 번의 시간여행'(이하 '나인')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수많은 타임 슬립 마니아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마찬가지로 필자도 송재정 작가의 작품을 통해 타임 슬립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다. 그러나 '나인'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 1년 앞서 방영됐던 '인현왕후의 남자'라는 드라마가 문제였다.

'인현왕후의 남자'는 조선 숙종 때 선비와 2012년 현재를 살고 있는 여배우의 사랑 이야기다. 남녀 주인공이었던 지현우와 유인나는 500여 년의 시간을 교차하며 사랑을 나누더니, 결국은 드라마가 끝나고 실제 연인이 되기도 했다.

배우가 정분이 날 정도로 달달한 내용이지만, 절대 단순한 로맨스물은 아니다. 타임 슬립에서 가장 중요한 건 치밀한 인과 관계다. 숙종과 인현왕후의 역사적 사건을 현재의 에피소드와 잘 엮어내면서 시간 여행에 사실감을 부여했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시대를 넘나드는 로맨스에도 감정이 이입되며 둘의 사랑에 충분히 빠져들 수 있었다. 송재정 작가의 히트작인 '나인'처럼 세련되진 않아도, 'W'처럼 톱스타가 출연하지 않아도 충분히 재밌고 신선한 드라마다.

여주인공 유인나는 드라마 내내 라디오 속 그 목소리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매력을 발산한다. 그런 달콤함에 빠져들고 싶은 기분이라면 '인현왕후의 남자'를 적극 권한다. 마지막 회 키스신은 필자가 추측하건대 100% 실제 상황이니 감안해서 보시길.

정들마(필명) / 밥처럼 드라마를 먹고 사는 'TV 덕후'다. 낮에는 남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출퇴근을 하는 회사원이다. 그래서 약 20년째 주로 밤에 하는 드라마를 열렬히 시청 중이다.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