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즈음의 겨울밤이었다. 계속되는 부부싸움에 진이 빠진 우리는 안방으로 고작 몇 걸음을 옳길 기운조차 없어 쇠락한 몸으로 거실 평상에 드러누웠다. 베란다 창밖으로 소진된 삶의 의욕이 어둠어둠 내려앉고 있었다.
우리는 등을 돌린 채 드러누웠다. 어떤 말도 서로를 찌르는 가시여서 한 마디 말도 나눌 수 없었다. 등 뒤에서 끝없는 뒤척임과 깊은 한숨이 들려왔다. 불행의 썩은 눈알을 파먹느라 입은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적막한 밤에 수시로 부릅떠지는 젖은 눈들. 자정을 넘어 누운 밤이 새벽 3시가 되어가도록 잠들 줄 몰랐다.
무슨 생각에서 그랬을까. 난파된 집의 지붕에 항복을 고하는 흰 깃발을 내걸어야 할 그 때, 행복을 남발한 공수표들이 허탈한 바닥에 뒹굴고 있던 그 때, 애들은 우리들 주름을 먹고 씩씩하게 자라겠지 위안하던 그 때, 무엇에 동했는지 희붐한 어둠 속에서 몸을 섞었다.
한숨과 한숨이, 뒤척임과 뒤척임이, 잠들 수 없음과 잠들 수 없음이 한 데 섞였다. 우리들의 몸은 깊은 침묵을 휘저으며 잠시 밤의 대기 속으로 둥실 떠오르는 듯도 하였다. 황홀의 순간에는 부르르 떨기도 했던가. 하지만 언제 뒤엉키기라도 했느냐는 듯 곧 서로의 몸에서 속절없이 떨어져 나왔다. 섞일 수 없는 외로움이 쓸쓸히 나동그라졌다.
비릿한 환락의 끝에 누워, 우리 둘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음을 느꼈다. 우리의 혀는 여전히 쓴 모래를 잔뜩 문 채 어떤 말도 나눌 수 없었다. 다시 등 뒤에서 들려오는 끝없는 뒤척임과 깊은 한숨들. 내 눈물이 네 눈물에 섞이지 못하고 덩그러니 가감 없는 그대로의 질량으로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황홀도 핥지 못한 저마다의 쓰린 상처는 뒤척임뿐인 긴긴 밤의 나락으로 가라앉았다.
몸에도 언어가 있다면 그 밤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우린 그저 ‘살의 위로’가 필요했던 것일까. 사랑의 빈혈을 치료할 파릇파릇한 살의 수혈. 살결이 살결을 어루만지고 한 데 섞여 내가 너인 듯 네가 나인 듯 흘러가는 곳. 굳이 우대리가 아니어도, 라라가 아니어도 상관없을 갈급한 몸짓이었다. 비록 한 순간에 피고 질 위안일지라도, 잠시의 황홀로나마 슬픔의 억센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서로에게 값싼 감정의 동전을 치르고 혼자선 피울 수 없는 봄을 구걸할 수 있다면. 외로움의 실오라기를 벗고 익명의 실팍한 살내음이 진하게 흘러 들어오길 바랐을 것이다.
아니라면 그건 ‘새벽의 스크럼’이었을 것이다. 네 팔에 내 팔을 바싹 끼고 삼중고의 사막을 기어코 건너가자는 다짐 같은 것. 이 밤의 어둠과 한숨, 누구에게도 위로 받을 수 없는 비릿한 상처를 보듬고 죽어도 이 깍지를 풀지 말자는 결심 같은 것. 불안의 무덤에 갇히지 않기 위해 외따로운 몸과 마음을 어떻게든 한데 섞여야 한다는 절박함 같은 것. 새근새근 자는 저 어린 것들의 위태로운 둥지를 위해 연대의 스크럼을 짜고 전진하는 작은 몸짓이었을 것이다.
김라라 / 식품기업 R사 마케팅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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