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 워크샵 다녀오는 날엔 일주일은 족히 쓸 호텔 샴푸나 비누 따위를 집어와 욕실 수납장에 쟁여놓았다. 골프장 가는 날엔 “우리 집 휴지통에 딱이야”라며 비닐봉지를 예닐곱 장씩 공수해왔다. 세상 살기 각박하다지만 나름 풍요의 시대여서 공것이 넘쳐났다. “딸링, 이거 숯 치약이래. 요 앞 치과에서 나눠주더라” 가족 수대로 챙겨온 걸 보면 더 달라고 대놓고 징징거렸음에 분명하다.
남의 밥상에 숟가락 얹기는 주된 장기였다. 난 지금껏 화장품이나 향수를 사본 적이 거의 없었다. 고등학교 모임 ‘두별단’의 면세점 다니던 친구 ‘홍면세’가 시시때때로 명품 주름개선 에센스며 향수 샘플들을 조달(?)해왔기 때문이다. ‘뭐 남는 화장품 좀 없냐’는 우대리의 집요한 성화에 만날 때마다 탈탈 털려온 것이었다. “딸링의 예쁜 생얼은 내가 지켜줄게” 여름엔 선크림, 겨울엔 핸드크림, 수시로 마사지 팩 등 ‘1일 1넝마 정신’으로 참 부지런히도 주워 왔다.
명절 즈음에는 친구 회사들을 순회했다. “야, 뭐 남는 선물 없냐” 맡겨 놓은 물건이라도 찾으러 온 양 의기양양하게 사무실을 한 바퀴 빙 둘러보고는 멸치니 스팸이니 살림에 요긴한 것들을 선별해왔다. 자칫 썰렁할 수 있는 명절에 시댁이나 친정에 바리바리 싸 들고 갈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남편의 빠릿빠릿한 활약 덕분이었다.
광고주의 협찬(?)도 마다하지 않았다. “전 혼자 맛난 거 먹으면 애들 생각에 목구멍에 넘어가질 않아서, 켁~” 회식 자리에서 온갖 청승을 떨며 곁다리로 보쌈이니 초밥이니 추가 1인분씩 포장해왔다. 2차 노래방에선 취흥에 겨워 ‘광고주님’을 위한 열창무대를 선사하다가도 귀가 때만 되면 예능인의 복무를 휙 벗어던지고 검은 봉지나 남은 양주 등을 신주단지처럼 챙겨들고 집으로 부리나케 달려오는 것이다. “여기 초밥, 강남에서 제일이다. 얼른 먹어봐. 아아~” 애들 입에 초밥 하나씩 넣어주는 그의 입이 동긋이 벌어진다. 어서 넙죽 받아먹으라고, 달덩이처럼 토실토실 크라고 애비 마음이 둥그렇게 애달았다.
남의 밥상도 나의 밥상인 그의 거룩한 세계가 난 참으로 따뜻하였다. 칼같이 구분하는 가진 사람들의 냉혈 계산법보다 낫지 않은가. ‘홍면세’를 떠올릴 때마다 웃긴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홍면세’가 군대 첫 휴가 나온 날, 우대리는 친구에게 평생의 추억을 만들어주고자 유흥비 마련을 고심하던 중,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가 무턱대고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떡하니 들고 나오더란다. 아버님이 노발대발하여 몽둥이 추격전을 벌였는데 쫓아가보니 결국 들고 튄 곳이 동네 전당포였다나? 큭큭. 그만큼 친구라면 죽고 못 사는 우대리였으니 징글맞은 빈대 짓도 귀여운 것이다.
만약 그가 가난으로 심히 위축됐다면 빈손을 쾌활히 내밀 수 있었을까. 우대리는 여전히 철부지 아이의 눈빛이 아닌가. 그건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사람의 눈빛이 아니었다. 눈 하나 꿈쩍 안 하고 행복에 겨워하는 그를 가난이 무슨 수로 주저앉히겠는가. 그즈음 난 서서히 주눅 들고 있었기에 그의 놀라운 회복의 탄성(彈性)이 빛나 보였다. ‘이십대 후반 내가 우연히 흙바닥에서 주웠던 게 이런 보석이었나?’ 이제 그의 희망자락에 얹혀살게 되었으니 진정한 빈대 대마왕은 나인 셈이다.
김라라 / 식품기업 R사 마케팅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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