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대호', 한반도의 전통과 강산에게 바치는 헌사

[스포츠월드=한준호 기자] 조선왕조가 쓰러지던 시기, 한반도로 깃든 근대화의 망령은 20세기 내내 지속됐다. 전통은 미신이 됐고 한반도의 강산은 탐욕과 개발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다. 20세기 말부터 사라지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다. 전통을 되살리고 강산을 후손들에게 온전히 물려주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생겨나고 있다.

영화 ‘대호’(박훈정 감독, 사나이픽처스 제작)는 바로 한반도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이 잃어버린 것들을 되살려내는 한 판의 굿이다. 조선의 명포수였던 천만덕(최민식)이 총 한 자루 들고 눈덮인 산을 헤치며 오르는 모습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애잔한 감성을 자아내면서 동시에 비장함을 보여준다.

조선 후기 지리산 언저리에 사는 천만덕은 아들 석이를 데리고 사냥 연습을 시킨다. 어렵사리 얻은 아들인지라 천만덕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이다. 명포수로서의 위용을 보여주는 천만덕은 어느날 사냥을 나갔다가 큰 호랑이 한 마리를 사냥한다. 한 번 장전할 때마다 시간이 걸리는 구식 조총으로 깔끔하게 호랑이를 향해 겨누는 천만덕.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일제의 강점이 시작될 무렵, 늙은 포수 천만덕은 아침마다 정화수를 떠놓고 산을 향해 기도한다. 아내가 없는 가운데 아들 석이(성유빈)와 단둘이 사는 천만덕에게 일본군과 조선 포수대 후배들이 연달아 찾아온다. 바로 산군님이라 불리는 지리산의 마지막 조선 호랑이 사냥을 위해서다. 지리산에서 호랑이가 다니는 길을 모두 꿰차고 있는 천만덕이기에 그의 도움이 없다면, 지리산 산군을 잡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미 일본군 병사와 조선 포수대 여럿이 산군을 잡으러 나섰다가 모두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하지만 천만덕은 끄떡하지 않는다. “산군님은 건드리는 게 아녀”라는 말 한 마디로 모든 제안을 물리친다.

근대화의 미명 아래 불교와 성리학조차 뿌리뽑지 못했던 한반도의 정신문화가 송두리째 미신으로 매도됐다. 강토는 개발하고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대상일뿐, 짐승조차 살아남기 어려웠다. ‘대호’는 바로 이 사라진 것들에 대한 헌사다. CG로 되살려낼 수밖에 없던 조선의 호랑이와 ‘연기의 신’ 최민식이 만들어낸 천만덕의 호흡이 결국, 대단한 감동을 뽑아낸다. 단순한 재미를 갖고 접근하기에는 이 영화의 미덕이 크고 웅장하다. 1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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