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풍경소리] 산통(算筒)을 깨지 마라

이번에 터진 어느 기업회장의 자살과 정치인들의 인연법에 대해서는 개개인의 운으로 보아도 필연으로 다가올 기운이 이미 내포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마 이름이 거론된 정치인들이나 공직자들은 진실여부를 떠나 본인들의 앞날에 산통을 깨는 장애일 것이다.

이 산통이라는 말의 기원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산통이라 함은 주역으로 점을 칠 때 산(算)가지를 이용해서 점을 쳤고 이 산가지를 담아 놓은 통을 산통이라 이른다. 산가지란 대나무 또는 옥이나 상아로도 만들었지만, 옥이나 상아는 몹시 비싸서 제후나 귀족 아니면 갖추기 힘들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나무로 만든 젓가락 길이 정도의 막대기에 음(陰)과 양(陽)을 의미하는 색깔이나 모양을 표시해 놓아 산가지로 사용했다. 이러한 산가지 여러 개를 통에 담아 두고, 3개나 6개를 뽑아서는 이때 나오는 음과 양의 갯수에 따라 길흉을 판단했던 것이다. 이렇게 산가지를 담아두는 통을 산통(算筒)이라 불렀는데 혹여 누군가의 방해로 주역점을 제대로 치지 못하게 방해를 한다든지 해 제대로 점사를 치지 못해 일을 그르치는 것을 ‘산통을 깬다’라고 하는 것인데, 이때의 산통이 바로 산가지를 담아 두는 통을 말하는 것이다.

주역점의 기원은 주(周)나라 이전부터도 제후와 제왕의 전유물이다시피 하다가 춘추전국시대 이후에는 일반인에게도 많이 퍼지게 됐다 이 주역점은 나라의 경영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게 활용 됐다. 즉 전쟁을 시작하는 날을 정할 때는 물론 각종 재나 행사의 개최 등 국가의 대소사는 물론 일반 가정에서도 혼삿날이나 집을 짓거나 고치는 일에도 활용 됐다. 주역점을 치려면 이는 단순한 점술이 아닌 주역괘에 대한 배움은 물론 깊은 학문적 통찰이 필요했기에 적어도 사서삼경을 공부한 학인들이나 선비급 이상의 엘리트들만이 할 수 있었다. 주역은 사서삼경 중에서도 가장 나중에 배우는 과목이었다. 즉, 학문적 기초를 단단히 하지 않고서는 주역 64괘의 실상과 물상이 의미하는 바를 읽어낼 수 없었고, 이 64괘를 기초로 우주만물의 본질과 변화현상, 그 만상의 연관성과 펼쳐짐을 통찰해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는 주역서를 보고서는 “신묘하고 또 신묘하도다!”라는 감탄사를 연발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반 평민들은 그 동네의 학인들이나 선비들을 찾아가 본인들의 궁금한 점을 묻기 위해 정중히 괘를 뽑아줄 것을 청하곤 했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음양오행론에서 발달한 역학이 명리학, 매화역수 등으로 발전하게 됐고, 지금은 사회적으로 별다른 여과없이 이런 저런 사람들이 생활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공부는 하면 할수록 오리무중인 듯싶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을 겸손하게 만든다. 정말 알만큼 알았다고 생각될 때는 세상에 있을 수가 없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적이 있다. 마치 노자, 원효대사가 그러하였듯이..

(사)한국역술인협회 중앙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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