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첫 천만영화로 등극한 ‘겨울왕국’의 흥행에는 OST ‘렛 잇 고’(Let it Go)의 공이 컸고, 올해 유난히 두드러졌던 아트버스터 열풍 속엔 어김없이 음악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비긴 어게인’으로, ‘로스트 스타즈(Lost Stars)’는 개봉 이후에도 오랫동안 음원차트에 줄곧 오르 내리며 대중들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뿐만 아니다. 블록버스터 대작에도 음악은 빠지지 않았다. 올해 새롭게 선보인 마블버스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는 ‘끝내주는 노래 모음집’이란 이름으로 옛 올드팝들을 삽입해 스크린을 수놓았다. 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는 아날로그 사운드를 통해 SF 감성을 한껏 끌어냈다. 이렇듯 영화와 음악은 어느 순간부터 공생 그 이상의 의미를 담게 됐다.
한국영화에서도 음악의 중요성이 커진 가운데, 올 여름 한국형 감성 공포영화로 주목을 받은 ‘소녀괴담’도 주목할만하다. ‘소녀괴담’은 공포와 로맨스, 유머를 적절히 조합시킨 작품으로, 그 이면에는 관객의 감정선을 이끄는 음악이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자처했다. 덕분에 ‘소녀괴담’은 공포영화 가뭄 속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고, 이후 토론토릴아시안국제영화제에 초청받는 등 다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소녀괴담’에 이어 공포영화 ‘십이야’까지 음악감독으로 이름을 드높이고 있는 옥은혜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작곡가 겸 음악감독 옥은혜다. 한예종 음악원을 나왔고, 영상원에서 석사과정으로 음향전공을 했다. 주로 단편영화 사운드와 음악을 많이 했고, CF 음악도 함께 작업했다. 올해 개봉한 공포영화인 ‘소녀괴담’을 통해 음악감독으로 입봉했고, 공포영화 ‘십이야’ 작업에도 참여했다.”
▲최연소 음악감독이라 들었는데.
“정확히 내가 최연소 음악감독인 것은 모르겠다. 다만, 비교적 어린 나이에 음악감독으로 입봉했다는 건 맞는 것 같다. 사실 작곡가라고 소개할 때도 있고, 음악감독이라고 소개할 때도 있다. 그만큼 감투보단 내가 하는 일을 존중하고 사랑한다. 작업은 주로 혼자 하는 걸 좋아한다. 여러 작곡가들과 함께 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까지 맡았던 영화들 모두 혼자서도 소화할 수 있는 작품들이라 무난하게 작업했던 것 같다.”
▲한 편의 영화에서 음악을 혼자 작업하기엔 힘들지 않나.
“보통의 경우 음악감독이 있고, 그 밑에 작곡가들이 여럿 있다. 다만 내 경우는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작품들이어서 혼자 한 것이다. 당연히 작곡도 내가 다 하고 있다. 덕분에 영화 개봉을 앞두는 시점에선, 폐인 아닌 폐인이 되곤 한다(웃음).”
▲창작이라는 건 굉장히 고된 직업인데, 표절 등 신경 쓸 문제들도 참 많겠다.
“신경을 아예 안쓴다면 거짓말이지만, 나는 기존의 음악들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다. 코드는 비슷해도, 음악을 풀어내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음악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도 안들어 본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항상 한다. 하지만 가장 좋은 음악은, 듣는 사람의 귓가에 익숙하게 들리는 음악인 것 같다. 그런 부분을 중점적으로 신경쓰고 작업한는 편이다.”
▲음악감독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작곡은 물론이고, 녹음 방식도 결정하고… 연주자와 스튜디오까지 직접 섭외해야 한다. 또 영화가 해외로 수출이 되면, 그와 관련된 문서작업과 음악 저작권 관련해서도 처리해야 한다. 작곡가는 작곡만 하지만, 음악감독은 제반적인 사무업무까지 다 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한예종에 다닐 때, 단편영화 음악 작업을 많이 했었다. 그러다보니 하나 둘 인적 네트워크가 쌓이게 됐고, 여러 감독님과 일을 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음악감독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소녀괴담‘을 연출하신 오인천 감독님과도 그렇게 인연을 맺게 됐고, 나란히 상업영화에 입봉하게 됐다. 그 인연으로 오인천 감독님의 또다른 작품인 ‘십이야’도 함께 작업하게 됐다.”
▲‘소녀괴담’ 오인천 감독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한예종에서 함께 지냈고, 단편영화 음악작업을 서로 도와주면서 알게 됐다. 대부분의 감독들이 그렇듯, 입봉할 때 편한 스태프와 함께 하는 게 좋다고 하더라. 특히 음악의 경우 서로 마음이 잘 통하지 않으면 굉장히 고생스럽다. 그래서 취향도 잘 맞고, 어떤 음악을 원하는지 마음으로 통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게 나 였던 것 같다.”
▲오인천 감독의 차기작인 ‘십이야’는 웹툰, 책, 영화로 동시에 출간된다고 하던데.
“‘십이야’는 2013년 세 개의 에피소드를 촬영한 후 모바일을 통개 공개하려던 작품이다. 그러던 중 마지막 네번째 에피소드를 촬영해서 내용을 보강하고 극장개봉을 준비하려던 중, 오인천 감독님이 갑자기 ‘소녀괴담’ 연출을 맡게 돼서 개봉이 지연됐던 작품이다. ‘소녀괴담’을 끝낸 뒤 ‘십이야’ 후반작업을 다시 하게 됐는데, 어쩌다보니 음악을 새로 다시 작업하게 됐다.”
▲‘십이야’의 음악을 싹 바꾼건가? 음악적 콘셉트에 대해 알려달라.
“‘십이야’는 인더스트리얼 테크노 장르 음악을 중심으로 했다. 그건 오인천 감독님의 간곡한 요청이었다(웃음). 개인적으론 오케스트라 음악을 넣고 싶었지만, 감독님과 상의해 본 결과 신디사이저로 만든 음악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 결과 굉장히 미니멀한 음악이 나왔다. 아마도 감독님은 젊은층을 공략하려 젊은 음악을 콘셉트로 잡은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소녀괴담’에 ‘십이야’까지 모두 공포영화다. 평소 공포물을 좋아하나.
“굉장히 좋아한다(웃음). 주위 사람들은 내 음악 정체성이 ‘로맨스’라고 하더라. 하지만 내가 단편 때 작업했던 작품들 대부분이 공포였다. 그러다보니 공포영화 음악 작업을 많이 하게 됐고, 어느 순간 공포영화를 전문적(?)으로 하게 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센 공포물을 좋아한다. 최근엔 ‘나를 찾아줘’와 같은 센 스릴러도 좋았고, 센 작품들이 굉장히 내 스타일과 잘 맞는 것 같다.”
▲‘소녀괴담’의 경우 공포와 유머, 로맨스가 적절히 조화된 작품인데. 음악적 콘셉트는 어땠나.
“‘소녀괴담’은 공포와 로맨스가 반복되는 작품이지 않나. 관객들도 그 흐름에 빨리빨리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래서 로맨스 음악은 굉장히 서정적으로 느껴지게 했고, 공포의 경우 긴박감 넘치는 센 음악으로 콘셉트를 잡았다. 그래서 배우들의 연기와 전개, 그리고 음악이 함께 어울려 관객들이 함께 흐름에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줬다.”
▲실제로 극장에 가서 반응을 살펴보기도 하나.
“물론이다. ‘소녀괴담’ 개봉 후 극장에 직접 가서 본 적이 있다. 그땐 영화에 집중하고 싶어도, 내 눈은 관객만 보고 있더라. 관객들이 놀라나 안놀라나, 웃나 안웃나 그런 표정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마지막 장면이었다. 극중 여자 학생들이 우는 장면인데, 관객석에 앉아 있는 소녀들도 함께 울더라. 내가 의도한 것이 제대로 관객들에게 전달되니, 내가 잘못한 게 아니란 생각이 들어 굉장히 흐뭇하고 뿌듯했다.“
▲혹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젠가.
“‘소녀괴담’에서 강하늘과 김소은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장면이 있다. 그땐 시나리오만 보고 떠오르는 느낌을 담아 피아노 곡을 만들어 데모로 녹음을 해놨다. 나중에 촬영본이 와서 음악을 맞춰보니 딱 붙는 게 아닌가. 덕분에 로맨스 느낌도 많이 살아났다. 그때 굉장히 행복했다. 그 무엇을 줘도 바꾸고 싶지 않은, 최고의 순간이었다.”
▲음악감독으로서, 어떤 음악으로 승부하고 싶나.
“‘영화도 재밌지만, 음악도 좋았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 요즘보면 OST 덕분에 흥행하는 작품들도 많이 있지 않나. 그렇다고 영화보다 음악이 돋보이게 하고 싶진 않다. 영화를 도울 수 있는 영화음악을 꾸준히 만들고 싶다. 마치 영화에 스며들듯, 더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도록 든든한 조력자가 되고 싶다.”
윤기백 기자 giback@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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