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풍경소리] '인간승리의 화신' 충무공 이순신

4월에는 만우절이 있고 식목일이 있으며 청명과 한식이 있다. 그런 날들은 대부분 잘 기억하지만 정말 중요한 날임에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있다. 그날은 4월28일이다. 4월28일이 어떤 날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날은 바로 충무공 탄신일이다. 나라를 구하고 목숨을 잃은 충무공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날이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은 극히 적다. 공휴일도 아니다 보니 더욱 관심이 없다.

누구나 충무공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리 많다고 할 수 없다. 알고 있는 것들도 역사적 사실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사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죽음을 맞이했는지 정도를 아는 것이다. 그것도 대단한 것이지만 충무공을 제대로 알려면 개인의 자취가 담겨있는 진정한 삶에 대해 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충무공은 무신이다. 무신은 전쟁터를 떠날 수 없다는 게 운명과도 같은 일이다. 전쟁이 벌어지는 그곳이 바로 생활의 터전인 것이다. 전쟁의 첫 번째 느낌은 무얼까. 참혹함이다. 극한의 폭력이 있는 곳, 그리고 목숨을 걸고 싸움을 하는 곳이다. 충무공이 평생 동안 만났던 전쟁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 속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극도의 고통이었을 것이다. 충무공의 역경이 어떠했을지는 치러낸 전쟁을 떠올리면 쉽게 상상이 가능하다.

충무공이 겪은 고통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두 번이나 삭탈관직을 당하는 백의종군이 있었다. 한 번은 두만강 하구에 있는 녹둔도에서 근무할 때였고, 또 한 번은 임진왜란의 와중에서 있었던 백의종군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백의종군에서 돌아와 다시 수군을 맡았을 때는 고작 열 세척의 배로 남해를 지켜야 했다. 그러나 충무공에게는 그런 난관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충무공은 평생을 전쟁터에서 지냈다. 삶 자체가 역경으로 점철됐었지만 어떤 일이 앞을 가로 막아도 내색 없이 모든 것을 이겨나갔다.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충무공이 어린 시절 머리가 영민하고 활동도 활발했다고 적고 있다. 아이들과 놀 때는 화살을 만들어 전쟁놀이를 했고, 불의를 그냥 넘기지 않는 성격에 어른들도 충무공 대하기를 어려워했다고 한다. 기개는 평생 이어졌고 숱한 고난을 이겨내고 나라를 구했으며, 그렇게 우리나라 역사 속의 가장 빛나는 별로 남아있다.

상담을 청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세타령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힘들어 죽겠다는 사람, 기가 죽어서 기운이 나지 않는다는 사람, 돈이 벌리지 않아 한 숨 속에 산다는 사람 등 자신이 처한 현실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온다. 지금은 힘든 것 같지만, 그리고 자기만 그렇게 힘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한다. 사람은 모두 역경을 겪는다. 어느 한 사람도 고난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고난의 시기는 누구나 만나지만, 누구는 잘 이겨내고 누구는 실의에 빠져버린다.

충무공을 생각해보자. 평생 전쟁터를 떠돈 충무공의 고난보다 내 고난이 더 힘든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충무공처럼 고난이 오면 정면으로 부딪치고 이겨나가야 한다. 충무공처럼 이겨나가자. 힘든 일을 이겨내야 더 좋은 날들을 만날 수 있다. 충무공을 단순히 역사 속 위인으로만 여기면 그것으로 끝나고 만다. 그러나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를 보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길이 보인다.

  김상회 (사)한국역술인협회중앙부회장  www.saju4000.com 02)533-8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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