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음악과 같다. 같은 이동거리라도 리듬과 속도에 따라 느낌은 완전히 달라진다. 얼마 전 시내버스를 계속 갈아타며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여행방법이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이런 여행방법은 느리지만 여행지의 구석구석 깊은 속살을 만끽할 수 있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다. 해외에서 이 같은 노선버스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최적지는 일본 규슈다. 규슈의 51개 버스회사들이 연합해 만든 산큐패스 한 장이면 사나흘 동안 무제한 버스 환승이 가능하다.
산큐패스 전규슈 4일권 |
후쿠오카, 사가, 나가사키, 오이타, 구마모토, 미야자키, 가고시마 등 7개 현으로 이뤄진 규슈의 면적은 남한의 약 40%다. 결코, 작지 않은 이 섬을 여행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장거리는 기차, 단거리는 버스나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다. 철도가 동맥이라면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는 노선 버스는 모세혈관과 같다. JR 규슈 레일패스와 산큐패스를 구입하고 렌터카를 빌리는 것이 가장 빠르고 편리하겠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문제다. 시간이 넉넉하고 구석구석 돌아보는 유유자적형 여행자라면 산큐패스를 이용해 순도 100% 버스여행을 즐겨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된다.
산큐패스는 규슈 지역은 물론, 야마구치현의 시모노세키시 지역의 고속버스, 일반 노선버스의 거의 모든 노선 및 일부 선박을 자유롭게 승차할 수 있는 자유 이용 승차권이다. 이용가능한 노선은 약 2400개의 노선에 이른다. 패스의 종류는 ‘전규슈권’과 시모노세키, 후쿠오카, 사가, 나가사키, 오이타, 쿠마모토로 한정된 ‘북부 규슈권’(8000엔)으로 나뉘며 ‘전규슈권’은 3일권(1만엔)과 4일권(1만4000엔) 두 종류다. 국내 산큐패스 취급 여행사에서 구매하면 할인된 요금으로 구매 가능하다. 산큐패스를 구입하면 가이드북을 함께 주는데 버스 승차 이외의 렌터카, 식당, 관광지 할인 등 유용한 정보가 많으니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이 좋다.
규슈를 달리는 다양한 버스들 |
복잡한 노선도와 생소한 지명 탓에 지역 노선버스는 해외여행에서 가장 낯설게 느껴지는 교통수단으로 꼽힌다. 우리나라에 찾아온 외국인들도 노선버스 이용의 어려움을 말하지만 막상 이용해보면 쉽고 편한 것이 동네 버스다. 일본 버스를 타는 방법은 우리와 반대다. 뒤로 타고 앞으로 내린다. IC칩이 부착된 충전식 교통카드가 있다면 승차할 때 단말기에 태그를 하게 되지만 현금 승차나 산큐패스 이용자는 이동한 거리에 따라 차등 부과되는 요금을 후불로 낸다. 버스에 오르면 세리켄(정리권, 번호표)을 뽑는다. 승객이 탄 지점이 번호로 표시된다. 내릴 때는 운전석쪽 상단에 있는 전광판에 표시된 번호 아래 나오는 요금을 지불하면 된다.
하차하는 버스정류장의 안내방송이 나오며 운전기사도 직접 육성으로 안내를 하지만 아쉽게도 일본어다. 차량 내부 앞쪽 모니터에 정류장명이 표시되면 하차벨을 누른다. 하차버튼은 각 좌석옆 또는 좌석뒤, 내부 벽면에 있다. 하차할 때에는 버스가 정류장에 완전히 정지한 후에, 좌석에서 천천히 일어나도 된다. 일본의 버스는 승객이 안전하게 하차할 때까지 여유있게 기다려준다. 산큐패스가 있다면 하차할 때 승무원에게 이용 기간이 확실히 보이도록 SUNQ 패스를 제시하면 된다.
고속버스는 보통은 별도로 예약과 발권이 필요한데 한국에서 출발 전 예약이 가능하다. 001(또는 002)-81-92-734-2727로 전화를 걸면 한국어 서비스를 지원해 누구라도 편리하고 정확하게 예약을 마칠 수 있다.
-숙박비를 줄여주는 야간버스
산큐패스가 있다면 유럽 철도여행처럼 야간이동으로 숙박비를 아낄 수 있다. 오이타∼가고시마 노선은 3열로 배치된 좌석이 있는 심야버스가 다닌다. 오이타는 유후인과 벳푸, 규슈 온천의 ‘양대산맥’을 품은 곳이다. 최근 한국관광객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구로카와 온천도 산큐패스가 있으면 별도의 교통비 없이 쉽게 이동 가능하다. 닭요리가 유명한 오이타 이자카야에서 맛난 음식과 사케를 즐기고 11시를 넘겨 카나이케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면 아침 6시 20분 가고시마 중앙역에 도착한다. 좁고 흔들리는 버스에서 선잠을 자야하는 힘겨운 일정이지만 호텔에 짐을 풀고 역 근처 온천에서 몸을 담그면 피로는 눈녹듯 사라진다. 2시간 이상 달리는 버스에는 모두 비행기처럼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아마쿠사해변 |
구마모토현 아마쿠사 제도는 한국관광객들에게 가장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다. 크고 작은 1200여개 섬이 시마바라만과 야츠시로해 잔잔한 바다위에 보석같이 박혀 있는 이 지역은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천주교 성지순례로 유명한 곳이다. 아마쿠사는 섬 지역의 특성상 철도 이동이 어려워 버스나 렌터카를 이용해야한다. 가고시마쪽에서 올라온다면 사쓰마센다이-아쿠네를 연결하는 남국의 해안도로를 이용해 북상하면 ‘인형바위’ 등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아쿠네에서 육로로 연결되는 나가시마섬에서 페리를 타고 쪽빛 바다를 건너면 30분 정도 지나 아마쿠사 제도에서 가장 큰 섬 가미시마에 도착한다. 가미시마는 중심부에 산악지형이 있는 제주도, 거제도와 비슷한 느낌이다. 조용한 섬동네를 달리는 노선버스는 한가롭고 평안하다. 가미시마에서 가미아마쿠사를 거쳐 구마모토로 가는 길에는 ‘아마쿠사 고쿄’라 불리는 아름다운 다리들이 섬과 섬을 연결한다. 중간에 있는 마츠시마에는 온천과 숙박시설이 있고 이와지마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브랜드가 수출된 올레길을 걸을 수 있다.
가고시마 사쿠라지마 화산의 분출장면 |
다음 블로그 ‘다카미야 하루카의 니시테츠 홍보실’( http://blog.daum.net/nnr_haruka)은 규슈 버스여행의 거의 모든 노하우가 담긴 ‘버스여행자의 성지’다. 가장 빠르게 최신 정보들이 올라온다. 산큐패스 한국어 사이트도 즐겨찾기에 넣어두자. http://www.sunqpass.jp/hangeul/index.shtml 패스를 구입하면 함께 주는 가이드북은 일본어판이 유일하지만 곧 한국판이 나온다. 뒷면에 쿠폰이 붙어 있으니 꼭 챙기자. 시골로 깊숙하게 들어갈수록 지도 등을 검색하기 위한 스마트폰 데이터로밍이 위력을 발휘한다. 버스여행은 기차에 비해 에너지 소모가 많기 때문에 일정에 온천욕을 반드시, 자주 넣는 것이 좋다.
노조무 사사키 니시테츠 자동차사업본부장 |
산큐패스는 규슈 지역 51개 버스회사들의 연합체인 ‘산큐패스 운영위원회’가 발급하는 패스다. 위원회 사무국 업무는 회원사 중 가장 큰 회사인 니시테츠가 주도적으로 진행한다. 창립 105주년을 맞은 니시테츠(서일본철도 주식회사)는 운영하는 버스만 3000대가 넘는 버스업계의 ‘공룡’이다. 노조무 사사키 니시테츠 자동차사업본부장은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진정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고 싶다.”라고 한국 관광객들에게 산큐패스의 매력을 알리는데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또한, “장기간 이용 가능한 패스도 만들어 보겠다”라며 규슈 버스 여행에 새바람을 불어 넣을 계획도 밝혔다.
규슈(일본)=글·사진 전경우 기자 kwjun@sportsworldi.com
인터넷 사이트 http://www.sunqpass.jp/hangeul/index.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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