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42번 국도에는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에서 평창군 방림면으로 넘어가는 문재라는 고개가 있었다. 이 길은 1995년 터널이 뚫리며 직선화됐고 기존에 있던 길은 이때부터 방치됐다. 옛 길은 기억속에서 잊혀져 가다 최근 산악자전거 마니아의 증가와 걷기 여행 열풍에 힘입어 ‘빠른 이동을 위한 길’에서 ‘느린 즐거움을 위한 길’로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문재를 넘어가는 42번 국도 옛길은 비포장 도로라서 좋다. 명색이 국도인데 비포장으로 남은 이유는 영동고속도로 쪽으로 통행량이 몰리면서 42번 국도의 존재감이 미미해진 이유 아닐까 싶다. 영동고속도로 역시 새롭게 확장되며 여기저기 구도로 구간이 있다. 둔내 청태산 숲체원 앞쪽으로 해서 휘닉스파크가 있는 면온IC까지 넘어가는 도로가 예전에는 고속도로 구간이었다.
문재는 청태산과 사자산 사이에 있는 고개다. 안흥면 상안리에서 방림면 운교리를 이어주는 이 길을 인근 지역 사람들은 ‘칡사리 고개‘라고 불렀다. 칡넝쿨처럼 구불구불하다는 뜻이다. 평창 유스호스텔 뒤에 있는 칡사리 고개는 지난 2011년에야 포장이 완료됐다. 70년대까지 이 지역사람들은 덜컹거리는 완행 버스를 타고 이 고개를 넘어 평창과 강릉 등을 오갔다. 그 당시 버스는 하루에 몇 번 되지 않고 주로 군용차와 화물차들이 많았다. 동해와 강릉에서 출발한 화물차 형님들은 구절양장 기나긴 고갯길을 넘어 안흥에 도착하면 잠시 차를 멈추고 허기를 달랬다. 생뚱맞아 보이던 안흥찐빵이 왜 나왔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42번 국도의 원형은 옛 관동로다. 한양과 동해의 평해를 연결하는 이 길은 세종실록지리지 등 옛 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주요 경유지는 한양(서울) - 망우리 - 평구역(양주) - 양근/지평(양평)- 원주- 안흥역(횡성) - 방림역(윤교역,평창) - 진부역 - 횡계역 - 대관령 - 강릉 - 삼척 - 울진 - 평해였다.
이 오래된 옛 길은 나라에서 행정용으로 관리했지만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던 장돌뱅이들의 교역로로 쓰이기도 했다.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 군사들 일부가 이 길을 타고 남한산성까지 쳐들어와 한 참전 도로를 정비했던 고형산이라는 관리는 부관참시를 당해야 했다. ‘관동로’라는 단어에서 ‘관’은 대관령을 뜻한다. 한양에서 출발한 관리들은 강릉까지 가는 여정 중 대관령을 최고 난코스로 여겼지만 안흥역에서 전재-문재-여우고개를 넘어 운교역으로 가는 고갯길의 험난함도 이에 못지 않았을 것이다. 이 길 주변 사자산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백덕산 부근은 호랑이가 출몰하는 지역이었다. 몇 년전에도 호랑이가 맷돼지를 잡아먹었다는 뉴스가 나온 동네다. 사자산에서 사자가 튀어 나오지 않는 것은 천만 다행이지만 여우고개에는 여우가 많았을 테니 우리 조상들은 이 고개를 넘으려면 죽창이라도 챙겨야 했을 것이다.
옛길의 초입은 자작나무 숲이 반겨준다. 차량의 통행이 거의 없어 늦가을 노랗게 변한 자작나무숲의 아름다움을 트레킹이나 산악자전거를 타고 즐기면 좋을듯하다. 조금 더 올라가면 산림청에서 조성한 명품 숲길이 있다. 1930년대 일제시대에 국도변에 심었던 낙엽송과 소나무는 80여 년 세월이 지난 지금 ‘명품 숲’으로 거듭났다. 산책로가 잘 조성이 되어있고 나무데크로 만든 전망대와 야외무대도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1993년에 산림청에서 임도를 만들었다는 표식이 있고 오른쪽으로 빠지는 임도가 있다. 지도에서 끊어진 것으로 나오는 임도의 종착역은 구봉대산 자락 보리소골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정상부다. 무슨 공사를 하고 있는지 포크레인이 주변 숲을 밀어놔서 차를 세우고 잠시 쉴 공간이 나온다. 정상부의 고도는 대략 800미터다. 비포장이 시작된 지점부터 주행거리는 5.4km. 걸어서 오가면 3시간 잡으면 넉넉하겠다.
정상부는 네 갈래 길이다.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녹이 슬기 시작한 이정표가 18Km 직진하면 방림면이 나온다고 알려준다. 반대쪽으로는 횡성군 안흥면에 진입했다는 이정표도 있다. 칡사리 고개를 넘어가면 방림면 운교리 평창유스호스텔 뒤편으로 내려가 새로 뚫린 42번 국도와 만난다. 왼쪽 임도로 계속 가면 청태산 자락 웰리힐리 파크(구 성우리조트)가 나온다. 구글맵에는 길이 끊어져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네이버 지도에는 연결된 길이 표시되어 있다. 산속에서 지도 검색이 어렵다면 산림청 홈페이지 ‘산림공간정보서비스‘의 지도검색을 이용하면 임도 등의 정보가 나온다.
오른쪽은 백덕산을 타고 도는 길이다. 이 길은 웬만한 지도에는 다 나오는데 모험심이 투철하지 않다면 진입할 생각을 말아야 한다. 그림만 봐도 멀미가 나는 ‘꼬부랑길‘, 그것도 관리가 부실해 보이는 비포장 도로다. 마주오는 차가 있으면 교행이 쉽지 않은 이 좁은 길은 국도 구간에 비해 관리상태도 부실하다. 옆은 작은배나무골, 작은비네소골, 공당골, 구절골 등을 거쳐 평창 하일계곡 상류까지 이어진다.
문재 구간과 연계시킬 수 있는 코스는 42번 국도를 따라가 보면 나오는 평창의 멧둔재와 비행기재다. 이 고개들도 터널과 직선화 등 변화를 겪으며 옛 길의 흔적이 남아있다.
한편,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 가장 중요한 도로였던 국도는 1938년 일제의 조선도로령이후 번호가 붙여졌다. 파란 타원 속 흰 글씨로 ‘몇 번’ 또는‘ 몇 호선’이 붙는 ‘국도‘는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며 항만, 비행장, 관광지 등 우리 국토의 주요지점을 지난다. 일제시대에 지정된 노선은 196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다 1967년에 이르러 현재의 노선으로 굳어졌다. 횡성=글·사진 전경우 기자 kwjun@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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