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의 영산 히말라야 신작으로 개인전 여는 전래식 화백…"히말라야는 신의 작품"

“한국 산이 이쁘고 둥근데 반해 히말라야는 날카로움과 장엄함 그 자체였어요. 산이 너무 커서 신의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위압감도 들고 소름끼치기까지 했어요.”

‘산을 그리는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전래식 화백(71·동아대 명예교수)은 2011년 벼르고 벼렀던 히말라야(8757m)를 본 감회를 이같이 말했다. 몇 번에 걸쳐 희말라야 하얀 능선을 트레킹한 그는 “히말라야에서 작은 것에서 느끼는 아름다움과 큰 것에서 오는 아름다움의 차이를 실감나게 느껴봤다”며 “내가 그동안 너무 작은 그림을 그렸고 너무 관념에 빠진 그림을 그렸구나 하는 반성도 들었다”고 했다.

안나푸르나 등 히말라야를 대표하는 트레킹 코스를 걸으며 직접 스케치 하거나 카메라 셔터를 눌러 그림의 밑천을 건졌다. 미국 그랜드캐니언, 일본 후지산 등 세계 여행을 통해 얻은 산의 일부가 더혀져 그림이 줄 수 있는 감동의 최대치를 담아 다양한 산을 그렸다. 히말라야에서 돌아온 후 2년 동안 경기도 파주 작업실에 매일 ‘출퇴근’하면서 산 그림에 매달렸다.

히말라야를 본 후 그의 그림은 확실히 커졌다. 400호 대형 작품들도 즐비하다. 거대한 자연과 맞닥뜨리면서 시야를 넓힌 만큼 작품에선 절대적 미감이 느껴진다. 무아의 경지에서 바라본 그의 히말라야 산은 종교적 명상의 세계로 우리를 이끄는 힘이 있다.

전 화백은 히말라야의 영혼을 담은 신작 40점으로 채워진 개인전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02-580-1300)에서 연다. ‘세계의 산을 품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엔 전시는 19일 오후 개막해 28일까지 9일 동안 계속된다. 

# 비구상의 ‘조형산수’ 개척자…1982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 수상

전 화백은 ‘조형산수(造形山水)’의 개척자다. 한국화 작가인 그는 동양화와 서양화의 융합을 시도해 멋지게 성공한 작가다. 40여년의 화업(畵業) 중 절반 이상의 시간을 ‘조형산수’라는 대칭적 산 그림에 전념해왔다. 그가 세계적 산이 몰려있는 히말라야로 직접 여행을 떠난 것도 자신의 조형적 영역을 넓히고자 함이었다.

전 화백은 한국화가였다. 중학교때 미술선생님이 한국화를 했는데 이러한 영향을 받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선과 여백으로 통하는 동양화의 장점에 조형성이 뛰어난 서양화의 장점을 살려 ‘조형산수’라는 용어를 만들어냈고, 이 분야 최고의 권위자가 됐다.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무채색에 가까운 색채 처리, 짙은 색감, 강한 색조 대비, 비실재적인 색, 평탄한 색면, 장식성 배제, 과감한 생략은 ‘전래식 조형산수’의 구체적 반영의 결과다.

산수화, 문인화에 근간을 둔 한국화는 세월의 물결에 휩싸이면서 변화에 변화를 거듭, 다양한 기법의 작품이 탄생하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그가 조형산수를 시도한 70년대 후반만 해도 한국화는 인기 절정의 장르였다. 그런데도 그는 고정된 한국화 틀에 자신의 창작 열정을 녹여내지 못했다. ‘2%’ 부족한 게 아니라 그 이상 부족함을 느꼈고 한계에 봉착하기도 했다.

마흔의 나이, 틀을 깨야 했다. 실경산수에서 비구상으로 방향 전환을 했다. 다양한 생물과 초목이 공존하는 자연, 그리고 산수. 그 안에 내재하는 원천적인 힘에 주목했다. 그림은 자연스럽게 구상과 추상이 교차했다.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한국적 추상을 시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끓는 물에 뚜껑이 열리듯 ‘조형산수’라는 기이한 정신을 담은 한 작품이 때를 맞았다. 1982년 말썽 많았던 국전을 대신해 문예진흥원이 새롭게 주최한 제1회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 것. 한국화, 그것도 비구상 작품으로 대상의 영광을 거머쥔 것은 미술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성곽의 모습을 추상화한 작품인데, 전 화백은 “느낌은 한국적이고 조형적인 연출이 강했던 작품”이라고 30년 전 미술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작품에 친절한 설명을 가했다. 

# 좀 더 신비롭고 장엄한 히말라야가 될 수 있도록 고민

화가의 눈으로 본 히말라야는 어떤 모습일까.

“산의 모양만 그리는 게 아니고 산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할까 신비감이라고 할까, 산에는 정신적인 것이 뭉쳐 있는데 히말라야는 그게 특히 강했어요. 히말라야는 어떻게 보면 크기만 하고 싱거울 수도 있거든요. 면 분할을 시키면서 좀 더 아름답고 신비롭게 나름대로 의미있는 산으로 그려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좀 더 신비롭고 좀 더 장엄하게 느낄수는 없을까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가 실경산수를 그리는 산수화를 탈피한 것도 자연의 감각적인 외양의 묘사라는 데에서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자연의 근원을 찾아가는 탐구에 눈을 돌린 게 30년 전이다. 자연의 시각적인 모습과 그 속에 내재해 있는 원천적인 힘, 존재의 근원을 같이 보여주고자 했다.

오랫동안 한국화 작가들과 함께해온 한국미술센터 이일영 관장은 “전래식 선생님의 작품은 신성한 자연에 담긴 메시지이다. 작품 앞에 서면 서기가 어린 빛깔이 전하는 태초의 자연이 전하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 하다”고 말했다.

미술평론가 임영방(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작가 전래식은 신성과 교응하는 순수한 자연의 영적인 모습을 포착해냈다. 거기에는 인간의 자아가 들어가 있지 않다. 그 결과 분명 산을 그린 것인데도 마치 정신적인 환영처럼 보이면서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고 평했다.

유석우 미술시대 주간이 본 전래식의 작품세계는 이렇게 요약된다. “전래식은 동양화가라든가 산수화가라는 범주에 들어가 있는 화가가 아니다. 새로운 조형법의 현대회화작가라 칭하는 것이 옳을 것같다. 선묘, 구도, 채색까지도 그만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동양화든 서양화든 그의 것과 유사한 것은 없다. 모든 건 그가 만들어낸 것이다. 무게와 깊이는 동양 쪽에 가깝고 오묘한 선과 색감은 서양쪽에 가까운 현대적이다.”

# 산만 보면 습관적으로 스케치…장녀 미국서 중견사업가로 성공가도

산만 보면 습관적으로 스케치를 한다는 전 화백에 있어 여행은 곧 작업의 일부다. 1년에 한두 번은 꼭 국내외로 스케치 여행을 떠난다. 그가 각국을 돌며 눈에 담고 마음에 품은 산들은 그대로 그의 작품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 중 가장 자주 가는 나라는 미국이다. 1∼2년에 한두 번은 꼭 미국행 비행기를 탄다. 한번 갔다하면 한달정도 머물다 온다고 한다. 2남 1녀의 장녀 혜미(47)씨가 미국에 살고 있기 때문.

혜미씨는 미국으로 건너가 의류사업으로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로, 몇 개의 굵직한 의류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인기 있는 의류에 속하느 헤이븐이 그 대표적 브랜드. 혜미씨는 연 매출 1억달러에 이르는 중견사업가로 활발히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혜미씨는 숙명여대 미대에서 한국화를 전공,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적 미감에 바탕을 둔 티셔츠를 디자인 아르바이트 하면서 자연스럽게 의류업에 발을 들여놓아 성공을 거둔 것이다.

전 화백은 성공한 사업가로 성장한 딸을 뒀음에도 주위에서 이를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 말 없이 수억년을 묵묵히 버티고 있는 자연의 맡형 산을 그려온 예술가답게 화려함보다 수수함, 겸손함을 가까이 두고 생활해온 게 습관적으로 몸에 배였기 때문일 터.

마음을 비우고 산 시절도 있었다. 40대 때 이미 블루칩 작가의 반열에 올라 메이저 화랑에 소속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서서히 빛을 잃는 듯 했다. 20년 전에 학문의 길로 들어서 지방대 교수 직을 택했기 때문. 지방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니 자연히 대한민국 문화 중심인 서울의 미술계의 스포트라이트를 적게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노익장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작품에 대한 열정을 활활 불태우고 있다.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서고 국내 유명 산도 수시로 오른다. 그렇다고 전문 산악인은 아니다. 산을 탄다기보다 산과 함께 유유자적 노닌다고 하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다.

오늘의 그는 오랜 친구처럼 되어버린 산이 주는 선물일지 모른다. 산은 언제든지 그가 원하면 묵묵히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였다. 자연도 그가 조형미를 발휘해 더 좋은 옷을 입히고 자연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느낌을 찾아낼 때면 고마움의 탄성을 자아낼지 모른다.

그의 산 그림은 실물 사진보다 더 아름다운 조형미를 안겨준다. 실제 히말라야 보다 더 신비스럽고 더 장엄하고 엄숙하고 숭고하다. 그것은 예술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는 한 예술가가 우리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이기도 하다.

강민영 선임기자 mykang@sportsworldi.com, 사진 제공=전래식 화백

<사진설명>

트레킹 중 히말라야 설봉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전래식 화백

고라파니 언덕(2874m)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남봉과 다울라기리(130×405cm), 천 배접에 먹과 아크릴·2012

히말라야 여정(1272×80cm), 천 배접에 먹과 아크릴·2012

신의 산 마차푸마레(147×163cm), 천 배접에 먹과 아크릴·2011

■전래식 화백 약력

-서라벌예술대학 회화과(현 중앙대 예술대학) 졸업 ▲중앙대 대학원 졸업 ▲제 1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 수상 ▲한국미술작가 대상 수상 ▲개인전 19회 개최(서울, 부산, 대구, 대전, 울산, 미국 LA 등) ▲국제수묵화연맹전 (서울, 쿠알라룸푸르) 등 국제전 20여회 출품 ▲현대한국회화전(호암갤러리) 등 국내 그룹 초대전 300여회 출품

-대한민국 미술대전, MBC 미술대전, 부산 미술대전, 전국 대학미전등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역임 ▲중학교 3학년 미술 교과서(교학사 발행)에 작품 수록 ▲동아대 예술대학 교수 정년퇴임(2008년 12월)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부산싧미술관, 거평그룹 본사, 국가안전기획부, 해운대그랜드호텔, 동아대학교, 동아대학교병원, 평화은행 행장실, 부산고등검찰청, 삼성전기, KDB산업은행 등에 작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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