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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보고 싶었던 세계' 책 표지/석지영 글/송연수 옮김/북하우스/1만4000원 |
2011년 가을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 초대를 받은 저자를 일면식도 없던 대통령이 알아볼 정도로 그는 유명세를 떨쳤다.
그는 머리말에서 자신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관심과 관련 “다른 곳에서라면 학자에게 일어날 법한 일이 아니다. 내가 이룬 성취가 독특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교육과 배움의 성취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인들에게는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미국 이민생활의 변곡점에 있던 나는 감동을 받았다”며 “나의 이야기가 단지 나의 것으로 머무르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인들로부터 깊은 흥미를 유발하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내 삶이 한국인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연결을 귀히 여긴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나는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이 책은 한국에서 태어나 만 여섯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간 저자의 자서전적 성격의 책이다.
석지영은 발레, 피아노를 전공한 청소년기를 거쳐 예일대에서 프랑스문학을 전공하고 옥소퍼드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땄다. 그후 하버드 법대에 입학해 졸업 후 검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발레리나가 꿈이었던 소녀가 법학교수가 된 것은 순전히 그의 선택이었지만 책 읽기와 선생님들, 그리고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면서 키운 감성과 상상력이 큰 몫을 차지했다.
석 교수는 “책 읽기는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었다”고 회상한다. 늘 책에 푹 빠져 산 덕택에 상상력과 문화적 감수성, 그리고 보편적 교양을 얻을 수 있었다. 탄탄한 인문학적 소양이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원동력인 셈.
석 교수의 부모는 이북 출신이다. 1951년 1월, 그의 아버지가 세살, 어머니가 두살 때 남한으로 피난을 내려왔다. 할아버지는 공사주의 정권에 소유 농토와 집을 몰수당했다. 외가 역시 원산에서 미 군함을 타고 북한을 탈출했다.
그의 아버지는 서울대 의대에 입학해 장학생으로 공부했다. 피난 내려와 버스사업을 성공적으로 일군 외할아버지 덕택에 그의 어머니는 풍요롭게 자랐다. 전후 곤궁하던 시절 외제 랜드로버를 타고 학교 통학을 할 정도였다. 그의 어머니는 이와여대 약대를 졸업했다.
석 교수는 1973년, 아버지가 수석 레지던트로 일하던 병원에서 고고성을 울렸다,. 그는 두 살 때 전래동화를 외워 몇 시간씩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조숙한 아이였다. 한마디로 말해 부모를 잘 둔 영재였다.
만 여섯살에 미국으로 이민간 석 교수는 어렸을 때 기억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히 풀어놓고 있다. “나는 군사독재 하에 있던 한국의 일상과 민주와 투쟁을 여전히 기억한다. 야간통행금지도 기억난다. 공습경보 사이렌이 길고 날카롭게 울리면 돌 교통이 멈추고 사람들이 지하로 몸을 숨기던 광경도 기억난다.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투옥된 아버지의 친구들도 기억난다.”(26쪽)
그는 서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립유치원에 입학했다. 그의 어머니는 남들과 달랐고 자연스럽게 어린 지영 또한 남들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잠실의 한 초등학교에 입학해 몇달간 1학년 생활을 했다. 학교가 파하면 학원에 가 산수를 공부했다. 그게 한국 생활의 마지막 추억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미국에서 의사로 일했다. 그의 학교생활은 내성적 성격 때문에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수학경시대회, 재능발표회 등 대회에 나가 이기지는 못했지만 그 과정을 즐겼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는 그가 읽은 첫번째 소설이다. 소설이 주는 감동의 여파는 거셌다. 그 후 그는 지독한 책벌레가 됐다. 이틀이 멀다하고 새 책을 집어들었다. 이를 닦을 때도, 심지어 옷을 입을 때도 소설책을 펼쳤다. 모두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소설은 읽고 또 읽었다.
그의 어머니는 딸이 다재다능 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피아노를 배우고 무대에 올라 연주를 했다. 무대 공포증에 시달리면서 말이다. 피아노에 이어 바이올린도 2년 동안 배웠다. 열한살 때 발레 레슨도 받았는데, 뉴욕시티 발레단 창단자인 조지 발란신이 세운 발레학교(SAB) 학생이 되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선생님의 권유로 영재 학생들을 위한 특수실험학교인 헌트스쿨에 입학한다. 그리고 SAB에도 오디션을 거쳐 합격한다. 전문 무용수가 되려는 사람들이 다니는 이 발레학교 입학은 부모님의 뜻과는 상관 없이 이루어진 일종의 ‘사고’였다. 발란신은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친 무용가였다.
1∼2년만 더 있으면 발레단 입단의 영광을 얻을 수 있지만 그러려면 헌트스쿨을 그만둬야 했다. 어머니의 반대에 부닥쳤다. 그는 슬픔을 혼자서 속으로 삭였다.
다시 피아노로 눈을 돌렸다. 집중특강을 받고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합격했다. 당시 나이는 18세였다.
헌터스쿨에서 그의 학업성취도는 높은 편이 아니었지만 명문 예일대에 합격한다.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그는 마셜장학금을 받고 영국 옥그퍼드대 대학원에 진학해 문학박사 학위를 땄다. 석 교수의 여동생도 하버드대 학부를 졸업하고 마셜장학생이 돼 영국으로 왔다. 자매가 모두 마셜장학생이 된 신기록을 또 세웠다.
문학박사학위를 받았음에도 그는 자신이 문학자로서의 길이 별로 맞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유대인 출신 남편과 결혼 후 1999년 하버드대 법대에 진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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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지영 교수가 하버드대법대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다. ⓒMichael Malyszko(사진제공=북하우스) |
그는 에필로그에서 ”부모는 자녀들을 위해 기회를 만들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자녀들이 무엇을 하게 강제할 수는 없다. 자녀가 그들의 관심사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내버려 두라, 그들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고 당부하고 있다.
간결하게 팩트 위주로 전개되는 글은 마치 영화 필림을 거꾸로 돌려 다시 보는 듯한 빠른 속도로 술술 읽혀 책장이 잘 넘어간다. 책은 미국이라는 나라, 유복한 가정환경, 타고난 지적능력, 그리고 지식과 예술에 대한 열정이 오늘의 석지영 교수를 만들었음을 증언한다.
강민영 기자 mykang@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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