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해외에서는 뜨거운지 몰라도 국내 방송계는 물론 가요계에서조차 아이돌의 파워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이돌이 각종 차트는 물론, 웬만한 예능프로그램을 장악하며 그 힘이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아이돌들을 내세워서 제작한 프로그램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가요 차트에서도 아이돌들이 기존 가수들에게 밀리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올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신인 아이돌들이 쏟아져나왔지만 뚜렷한 족적을 남긴 팀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이는 대형기획사는 물론, 중소기획사 소속 신인들도 마찬가지. 기존 아이돌들도 상반기까지만 해도 차트 장악력을 보여줬지만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힘이 달리는 분위기다.
◇ 예능에선 이미 오래된 이야기…아이돌 잔혹사
방송가에서 가장 최근의 예는 MBC가 런던올림픽을 맞아 특집으로 마련한 ‘아이돌 스타 올림픽’이다. 그야말로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27일 시청률조사회사 AGB닐슨 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6일 방송된 ‘아이돌 스타 올림픽’ 2부는 전국 기준 7.9%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동시간 대 최하위였다. 비슷한 포맷으로 설이나 추석 때 방영했던 10%대의 시청률과 비교해도 하락세가 뚜렷하다.

관심조차 희미해진 프로그램도 있다. 걸그룹 멤버들이 농촌생활을 경험한다는 형식의 KBS ‘청춘불패’는 시즌1에 비해 시즌2는 거의 존재감마저 사라졌다. 한 자리수 시청률에 이슈에서 멀어진 지도 오래다. 기존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아이돌들보다는 기존 가수, 조연 배우들이 훨씬 더 게스트로서 주목받는다. 그 나마 KBS2 ‘불후의 명곡’ 정도가 아이돌들을 적절히 활용해 음악 프로그램으로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아이돌들로 출연진을 대거 채우는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들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두 자리 수 시청률이었지만 올해는 한 자리수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이처럼 그 동안 아이돌들이 주름잡던 예능계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한 아이돌 매니저도 “지상파 방송 3사의 가요 프로그램 시청률이 올해 들어서는 한 자리수에 불과하다”면서 “물론, 신인 아이돌들이 워낙 많아서 출연하기 힘들긴 해도 예전처럼 3주 이상 출연시켜봐야 소용없다는 인식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 차트에서마저…아이돌 힘없이 무너지기 시작하다
7월 들어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대형 아이돌 스타들이 주 단위로 컴백에 나섰다. 올림픽은 피하고 싶었을까. 하지만 의외의 복병을 만나고 말았다. 바로 가수 싸이다. 싸이의 새 앨범이 발매되면서 기존 아이돌들은 차트에서 대부분 정리됐다. 새롭게 아이돌들이 컴백해도 싸이의 신곡 ‘강남스타일’은 또 다시 치고올라오며 차트 정상을 지켜냈다. 곧이어 지난 27일 에는 또 다시 이변이 벌어졌다. 남성보컬 그룹 포맨의 막내 멤버 신용재가 발표한 신곡 ‘자꾸만 자꾸만’이 ‘강남스타일’을 밀어내고 1위에 오른 것.

올해 상반기에 이미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돌이라 할 수 없는 밴드 버스커버스커의 돌풍이 그것이다. 올해 상반기 엄청나게 쏟아져 나온 남성 신예 아이돌들은 똑같은 신예 밴드 버스커버스커와 비교하면 대중에게 인식되는 것조차 힘들었다. 날 것 그대로의 밴드에게 철저한 계산으로 기획된 대형 아이돌들이 속수무책으로 깨진 형국이다. 그나마 태국 비하 발언으로 뜨거운 화제를 모은 블락비 정도가 대중적 인지도와 함께 나름의 음악성을 인정받아 해외로까지 그 인기가 이어지고 있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중소 아이돌 기획사 대표는 “남성 아이돌 인기의 척도를 나타내는 여러 지수 중 블락비가 의외로 올해 데뷔한 신인 중 가장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음악이 나름 좋았고 악재가 있었지만 팬들의 결집도를 높여주는 호기로도 작용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신한류의 주역들이 지금의 아이돌들이다. 이들도 이제는 이미지 소비를 자제해야 할 때가 온 듯 하다.
한준호 기자 tongil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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