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거리에서 만난 '스타일리쉬' 스쿠터족들의 모습. |
호안끼엠 호수옆 고층건물에 마련된 카페 테라스에 앉아 내려다본 도로는 흡사 스쿠터 레이싱 서킷 같은 모습이다. 새하안 아오자이를 팔랑거리며 자전거를 타는 아리따운 처자와 만나려던 로망은 무참히 깨져 버렸지만 스쿠터로 가득 찬 생경한 거리 풍경은 여행자에게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해 준다.
처음 하노이를 방문한 외국인이 끊이지 않는 스쿠터의 물결을 헤치며 길을 건너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신호등은 시내 중심부에 몇 개 있는 희귀한 존재다. 사고나지 않고 길을 건너려면 반드시 한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스쿠터가 달려온다고 뒷걸음질은 금물이다. 스쿠터는 앞으로 걷는 보행자의 동선을 예측하고 사람의 뒤편으로 피해가기 때문이다. 몇 번 건너다 보면 나름대로 요령을 터득하게 된다. 하지만 이곳은 여전히 위험하다. 기자가 하노이에 머물렀던 3일 동안에만 교통사고로 2명이 사망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재래시장 좁다란 통로에도 스쿠터를 몰고 들어온 아주머니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
명품 스쿠터의 주인은 뽀얀 얼굴과 S라인 몸매를 자랑하는 하노이 상위 1% 급의 ‘엘프녀’일 확률이 높다. 그녀들은 미니스커트에 망사 스타킹과 아찔한 킬 힐을 신고 명품백을 한쪽 팔에 두른 채 스쿠터를 탄다. 헤어스타일을 생각해 헬멧은 보통 쓰지 않는다. 공안의 단속이 엄격하지만 헬멧을 벗고 탄다는 것은 단속 걱정 없는 특권층이라는 과시 역할도 해준다. 하얀 피부를 절대적으로 선호하는 그녀들은 한국에서 수입된 자외선 차단용 ‘BB크림’으로 무장하거나 아랍여자들처럼 스카프로 얼굴 전체를 감싼다. 스쿠터 시트 역시 루이뷔통 모노그램 문양으로 튜닝하는 것이 인기다.
하노이 젊은이들에게 스쿠터는 훌륭한 휴식처 역할도 해준다. |
스쿠터는 하노이 거리의 90%를 점유하고 있지만 최근 몇 년 사이로 자동차들이 많아지고 있다. 스쿠터의 물결 속에서 자동차를 몰고 간다는 것은 무척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지만 하노이에서 자동차를 탄다는 것은 부를 과시하는 또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에 운전자들의 표정은 도도하기 그지없다. 일본차와 한국차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가끔 포르셰나 벤틀리 같은 고가의 차들도 지나간다. 이곳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차량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일제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 혹은 아우디 같은 차량이다. 우리나라보다 대략 20년 이상 뒤떨어졌다고 평가되지만 이 도시에는 벌써 광케이블이 깔렸고 스마트폰 사용이 일반화되어 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발전의 속도와는 개념이 많이 다르다. 몇 년 후에는 하노이 거리가 스쿠터 대신 고급 수입차로 가득 차는 모습이 될 수도 있다.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는 나라 베트남에 스쿠터 부대를 보려면 바로 지금 떠나야 한다.
하노이(베트남)=글·사진 전경우 기자 kwjun@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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