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소설가 신용우, "역사보다 더 진실된 역사를 밝힌다"

"러시아 외교문서로 의구심, 추적·취재
'명성황후는 시해 당하지 않았다' 확신
자료 수집… 을미사변 당시 상황 재조명"
"일본의 야욕 벗겨내고 싶은 강한 욕구
조선 마지막 자존심 바로 세움으로써
민족혼 일깨워야 한다는 의무감 가져"

작가 신용우. 사진=김용학 기자 yhkim@sportsworldi.com

▲ 작가 신용우씨는

1957년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나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졸업했다.

제21회 외대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장편소설 '백두산맥' '쪽바리아드님' '도라산역(1, 2)' '천추태후'를 출간했으며 스포츠월드에 장편소설 '요동별곡'을 연재했다. 일본과 중국에 의해 찢기고 왜곡된 우리나라 역사바로세우기와 요동수복, 통일에 관심이 많아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

조선 국모 명성황후는 시해됐는가. 현재까지 역사의 정설은 1985년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가 시해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일본이 기록한 역사와 이를 토대로 한 역사인식일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 중국 등과의 수교가 이뤄지면서 당시를 보다 더 세밀하게 짚어볼 수 있게 됐다.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러시아 외교문서는 2002년 국내 언론을 통해 처음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의 확대와 인터뷰 및 취재, 추적 등의 과정을 통해 수집한 역사 자료를 사건과 대입해, 역사학자 보다 더 날카로운 시선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시점을 재조명한 소설이 출판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역사적 사건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 소설가 신용우씨가 최근 탈고한 ‘명성황후는 시해 당하지 않았다’(작가와 비평 출간)가 그 작품이다.

작가의 의구심은 러시아 외교문서가 밝혀지면서 시작됐고, 확대된다. 외교문서엔 ‘러시아에서 고용한 경호원인 세레딘 사바틴(본래 직업은 건축사)이 을미사변이 일어나기 하루 전에 궁궐에 난동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다. 그러나 대비를 소홀히 함으로써 을미사변을 당하고 명성황후가 시해됐다.’라고 되어 있다.

이 때 작가 신용우씨의 시선은 남달랐다. 그는 “정보를 입수한 사바틴은 왜 대책을 세우지 않았고, 사바틴의 근무태만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당했는데도 도리어 고종은 아관파천 이후 환궁한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의 중명전, 정관헌, 석조전 등의 설계는 물론 건축을 사바틴이 관여토록 했는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고 당시를 토로했다. 소설의 구상은 여기서 출했다. 이후 자료수집 및 분석에 착수한 것은 당연지사.

그 이후 작가는 엄청난 사실을 찾아내게 된다.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장면은 물론 그 시신을 제대로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에조 보고서’에 적힌 몇 줄 되지도 않는 시해 장면으로 조선의 국모는 시해된 것으로 처리됐다. 한마디로 조선 국모의 시해라는 중대한 사건을 담기에는 너무도 빈약한 보고서였다는 것이다.

작품은 작가가 직접 소설 속에 ‘나’라는 인물로 직접 들어가서 비록 주인공은 아니지만 자신이 수집한 역사자료들을 사건과 대입해 역사적인 소설을 쓰는 메타픽션 기법으로 다뤄졌다. 사실에 대한 추적으로 역사적 진실을 소설화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소설은 의혹의 꼬리를 풀어가므로 인해 그동안 가려졌던 많은 부분에 대한 역사적 진실을 찾는 전개방식으로 긴박감있게 그려져 읽는 이로 하여금 단숨에 빠져들게 만든다.

자료를 수집하면서 진실을 찾아가면 갈수록 명성황후가 시해당했다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았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시신을 제대로 본 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시해장면을 봤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각기 달라서 혼란만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오로지 그 혼란스러움은 3류 소설만도 못한 ‘에조 보고서’에 의해 일순간 정리됐고, 이 보고서에 의존해서 조선의 마지막 자존심인 명성황후가 왜놈들의 칼날에 스러져 시해 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것이다.

자료를 수집하고 글을 써내려간 작가는 명성황후는 시해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확신하게 됐고, 조국광복 65년이 되도록 명성황후의 시해사건을 논문이나 기타 저술에 기술해서 조선은 물론 우리 대한민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일본의 야욕을 벗겨내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꼈다.

작가 신용우씨는 “글을 풀어가는 실마리를 찾지 못하던 중에 연해주에 사는 고려인 4세를 만나 중요한 자료를 얻으면서 소설을 시작하게 됐다”면서 “수집한 자료를 근거로 소설을 써서 조선의 마지막 자존심을 세움으로써 민족혼을 일깨워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명성황후와 관련된 충북 음성군 감곡면 소재의 감곡성당 상평공소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조원익 기자 wick@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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