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슈 향토맛집, 애타게 찾지 마세요! 기차만 타세요!

열차서 창밖 풍경과 함께 도시락 즐기는 '에키벤 여행'
큐슈지역 역·기차서 판매하는 에키벤 200여종에 달해
100년을 이어온 어머니의 맛 '…카레이가와' 꼭 맛봐야

에키벤은 기차여행의 낭만을 극대화시켜 주는 아이템이다. 기차를 타고 가다 배고파서 먹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음식을 먹기 위해 기차를 타는 것이다
‘에키벤’은 일본어로 기차역인 ‘에키’와 도시락인 ‘벤토’의 합성어다. 지역색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음식재료를 주로 쓰며 도시락의 특수성을 살린 조리법과 아름다운 포장재가 특징인 에키벤은 종류만 전국적으로 무려 2500여가지에 달한다.

에키벤의 역사는 1872년 철도 개통 직후로 추정된다. 나름대로 100년 넘는 역사가 있는 음식이다. 400엔대 저렴한 제품에서 무려 1만엔이 넘어가는 초고가 도시락도 있지만 대략 600엔∼1000엔 사이의 제품이 주력이다. 일본인들의 도시락 사랑은 유별나다. 길이나 공공장소에서 음식 섭취에 대해 엄격한 일본이지만 도시락은 예외다. 여행을 위해 비행기를 탈 때는 에키벤의 공항 버전 ‘소라벤’을 챙기며, 야구장에서는 ‘규조벤’이라고 부르는 도시락을 먹는다. 편의점에서 파는 ‘콤비니벤’도 인기가 좋다. 도쿄 시내 유명 백화점에는 전국의 유명 에키벤들이 입점해 하루에도 수백 개씩 팔려나간다.

에키벤 여행을 떠나기 전 만났던 코지 카라이케 JR 큐슈 사장은 “일본의 에키벤은 다른나라에는 없는 문화다. 축소와 집적을 잘하는 일본인이 도시락을 예술의 경지로 발전시켰다“라고 에키벤의 배경에 대해 이야기 한다.

▲ 에키벤 여행 일번지


창밖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그 지역 에키벤을 즐기는 것은 일본인들이 꿈꾸는 기차 여행의 진수다. 큐슈 지역은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다양한 관광열차들을 운영하고 있어 일반 열차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낭만 가득한 기차 여행을 즐기는데 최적지로 꼽힌다.

큐슈 지역의 역과 기차에서 판매하는 에키벤은 200여종이다. 일 년에 한 번씩 에키벤의 순위를 매기는 경연대회도 열리는데 최근 대회에서 1등은 카리이가와역에서 한정판매되는 ‘백 년의 여행이야기, 카레이가와’가 3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2등은 가고시마의 ‘와인 스테키 벤토’, 3등은 인기 사극의 주인공 사카모토 료마를 주제로 만든 ‘료마벤’이다. 큐슈 에키벤 여행은 후쿠오카에서 시작하는 것이 정석. 후쿠오카의 옛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하카타 역’에서는 대회 2등과 3등을 포함한 다양한 에키벤을 판다. 오전 중 후쿠오카에 도착해 역에 있는 에키벤 전문점에서 점심거리를 챙겨 구마모토행 열차에 오르는 것이 첫 번째 순서다.

관광열차 '하야토노 카제'는 2004년 큐슈 신칸센 일부 구간이 개통되며 함께 데뷔했다. 느리게 가는 것도 소중히 한다는 일본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기차다.
▲ 큐슈의 다양한 관광열차들


큐슈 관광철도의 백미는 구마모토-히토요시-요시마츠-가고시마를 달리는 루트를 꼽는다. 쿠마카와 강의 아름다운 모습을 내려보며 달리는 히토요시까지 가는 노선은 3월에서 9월까지는 ‘SL 히토요시’라는 이름의 증기 기관차가 다니는데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비시즌에는 스위스 기차처럼 빨갛게 칠한 ‘큐슈 횡단 특급’을 타고 간다. 히토요시에서 요시마츠 까지는 ‘이사부로·신페이’ 라는 기차로 갈아탄다. 이 열차는 볼거리가 풍부하다. 산악열차에서만 볼 수 있는 루프선과 스위치 백을 경험할 수 있다. 야타케-마사키 구간에서는 ‘일본의 3대 차창 풍광’인 기리시마 연봉과 에비노 분지의 풍경을 볼 수 있다. 나머지 두 곳의 차창 풍광은 나가노 시노노이선 오바스테역, 홋카이도의 네무로 본선 카리카치곶을 꼽는다.

요시마츠역에 도착하면 검은색의 멋들어진 기차 한대가 마중을 나와 있다. 이 기차의 이름은 ‘하야토노 카제’다. 전망용 대형 차창을 갖추고 내부는 고급 목재로 마무리해 관광열차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JR 큐슈 레일패스로 이 열차들을 탈 수는 있지만 지정석 예약이 현지에서만 가능해 이용이 불편했으나, JR 큐슈 여행사업본부에서 한국여행자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 중이다.

▲ '에키벤 종결자'는 '어머니의 맛!'

‘하야토노 카제’를 타야하는 또하나의 이유는 큐슈에서 3년 동안 에키벤 순위 1위를 지키고 있는 ‘에키벤 종결자’를 만나기 위해서다. 덜컹 덜컹 한참 달리던 기차는 드디어 카레이가와 역에 멈춰 선다. 고풍스러운 역사는 1903년 문을 열 때 모습 그대로다. 여기서 파는 도시락이 그 유명한 ‘백 년의 여행 이야기, 카레이가와’다. 도시락 상자는 대나무로 만들었고 가고시마 특산품 적고구마 튀김, 표고버섯과 죽순을 넣어 튀긴 감자크로켓, 가지와 단호박 된장 구이, 무와 곤약 조림, 무와 당근 식초 절임 등 소박한 일본의 시골 반찬들이 ‘히노 히카리’라는 이 지역의 쌀을 사용해 표고물로 지은 밥과 함께 나온다. 심심하고 담백한 맛이 대부분이고 별다른 매력이 없어 보이는 이 도시락이 에키벤 마니아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어머니의 손맛 같은 그리운 느낌이 물씬 풍겨 오기 때문이다. 

에키벤 경연대회에서 3년 연속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백 년의 여행 이야기, 카레이가와'.
열차가 다시 출발하면 얼마 후 탁 트인 바다가 보인다. 가고시마를 상징하는 화산 ‘사쿠라지마’도 차창 밖으로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최근 가고시마의 소도시 기리시마 인근 ‘신모에다케’ 화산이 대규모 폭발을 일으켜 여행객들이 취소 사태를 일으켰지만 가고시마에 도착하니 화산재 대신 청명한 공기만이 가득했다. 

마사키역의 소박한 도시락 판매대.
▲ 에키벤 여행의 가이드북은 만화책?


‘미스터 초밥왕’으로 시작된 일본 미식만화는 우리나라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 2000년대 후반부터 불기 시작한 와인 열풍은 ‘신의 물방울’이 주도했고 ‘맛의 달인’ ‘심야식당’ 등이 나온 이후 ‘이자카야’ ‘라멘전문점’ 등 일본의 대중음식들도 인기몰이 중이다. 철저한 취재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일본의 미식만화들은 다양한 음식 문화를 접할 수 있게 해주는 입문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만화 ‘에키벤’은 철도 고등학교 출신이 저자가 만들어낸 책으로 일본의 철도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함께 각 지역 에키벤에 대한 상세한 정보들이 가득해 에키벤 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가이드북 역할을 한다. 국내판에는 JR 큐슈 여행사업본부에 근무하는 한국인 윤지원씨의 도움으로 큐슈지역 에키벤 투어 지도와 함께 유명 에키벤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들을 담은 컬러판 부록이 있어 가이드북으로 가치를 더한다.

일본 3대 차창 풍경에 꼽히는 기리시마 연봉과 에비노 분지의 모습.
현지에서 취재를 도와준 윤씨는 “일본의 지역 요리들을 먹고 싶지만 전문식당들의 높은 가격 때문에 망설였다면 에키벤을 통해서도 저렴한 가격에 경험이 가능하다”며 “특히 큐슈는 일본내에서도 향토요리가 다양하고 맛있기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JR 큐슈를 이용해 여행을 할 때는 꼭 역에서 에키벤을 구입해 멋진 자연과 맛있는 음식을 즐기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가지 또 눈여겨 볼 것은 만화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백팩을 매고 다닌다는 것이다. 기차를 자주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짐을 단출하게 꾸려 가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가고시마(일본)=글·사진 전경우 기자 kwjun@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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