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PD의 드라마 관찰기] '시크릿 가든', 비현실적 동화 속 현실적 이야기

비현실적 이야기에 현실적 고민 담았다
‘시크릿 가든’은 비현실적 동화 속, 현실적 이야기다.

드라마 업계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많은 드라마를 보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드라마 시청이란 휴식이 아닌 일이고, 즐거움이 아닌 부담이다. 소파에 편히 앉아 다리를 뻗고, 순수한 마음으로 웃고 울며 드라마를 보기 힘들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서는 자동적으로 출연료와 장소 섭외 비를 계산하며, 제작비를 가늠해본다. 배우들의 연기 및 대본과 캐릭터를 분석하며, 예상 시청률과 시청자 반응까지 예상해본다. 직업병이다. 이쯤 되면 드라마를 보는 것은 중노동이다. 그런데 오랜 만에 순수한 시청자의 입장으로 돌아가 흠뻑 빠져있는 드라마가 생겼다. 그것은 ‘윗몸일으키기’신으로 여자들의 심장에 폭풍을 몰고 온 ‘시크릿 가든’이다.

이 드라마는 비현실적 동화다. 잘생긴 재벌가 왕자님이 등장하고, 또 가난하지만 캔디처럼 씩씩한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식상함을 논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더 식상해지는 ‘백마탄 왕자’ 소재에, 두 남녀의 영혼이 바뀐다는 ‘판타지’까지 곁들였다. 그것이 몹쓸 병에 걸릴 운명을 가진 딸(하지원)을 살리기 위해 죽은 그녀의 아버지가 하는 일이라니...... 이 드라마, 심지어 ‘불치병’ 코드까지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재벌 왕자님, 불치병 여주인공, 영혼 체인지라는 식상하고도 위험한 소재들을 가지고, ‘시크릿 가든’은 시청자의 마음을 잡는데 성공했다. 분명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 묘하게 빠져들고, 분명 비현실적 사랑인데 마치 내가 주인공이라도 된 양 가슴이 설레고, 애가 끓는다.

김주원(현빈)이라는 남자는 그동안 우리가 드라마를 통해, 수없이 만났던 재벌남과 달랐다. 다른 재벌남들은 가난한 여주인공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사랑해주었지만, 이 남자는 어림없다. 만난 순간부터 서로 다른 환경과 신분임을 강조했고, 마음이 가는 순간부터는 끊임없이 재고, 따지며 고민하는 것이 이 남자의 상식이다. 그녀에게 끌리긴 하지만 이름만 대면 알만한 집안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이 걸리고, 그녀의 미소가 머릿속을 맴돌지만 변변찮은 그녀의 옷이 신경 쓰인다. 보고 싶어 찾아간 그녀의 누추한 집은 실망스럽기 그지없고, 다 떨어진 그녀의 가방을 보고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대체 왜 이런 여자를 좋아하고 있나’ 스스로에게 화를 낸다. 그런 가방밖에 들 수 없는 그녀에게도 화를 낸다. 이것은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다. 서로 다른 환경을 살아온 남녀가 그것도 엄청난 빈부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 남녀가 만나 그저 좋기만 한 것은 동화다. 이렇게 삐걱대고, 실망하고, 화나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이 드라마는 완벽하게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듯하지만, 그 안에 꽤 현실적인 감정을 담았다.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로맨스와 판타지를 정신없이 오간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다. 사랑을 하려나 싶더니, 영혼이 바뀌었고, 그냥 그대로의 멜로가 보고 싶어질 무렵, 영혼은 다시 제자리로 왔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는 없으나, 이미 이 드라마에 흠뻑 빠진 팬들의 마음이 꽤 굳건하니, 갑자기 진흙탕으로 빠져주지만 않는다면 마지막에 박수 받으며 끝나는 드라마가 탄생할 것 같다. 열혈 시청자로써 사심 듬뿍 섞어 기대해본다.

*드라마 만드는 여자 유한나씨는 제작PD로 ‘천국의계단’ ‘발칙한여자들’‘내생애마지막스캔들’ 등을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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