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만화 거장 오시이 마모루의 ‘블러드-더 라스트 뱀파이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영화 ‘블러드’가 기획됐다. 홍콩영화의 거물 빌 콩을 중심으로 홍콩, 프랑스, 일본, 아르헨티나 자본들을 끌어 모아 할리우드 진출을 꾀하고 있었다. ‘늑대의 제국’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프랑스의 크리스 나혼 감독이 연출자로 낙점됐고, ‘엽기적인 그녀’의 아시아 톱스타 전지현, 그리고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톰 크루즈의 연인이었던 고유키 등으로 진용이 짜였다. 그런데 속빈 강정이었다. 모두가 자신의 이름값을 해내지 못했다.
2000년 기타누보 히로유키의 48분짜리 애니메이션이 등장했을 때는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뱀파이어와 홀로 대결하는 ‘사야’의 현란한 액션은 마니아들을 열광시켰다. 그런데 영화는 너무 늦게 등장했다. 이미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영화 팬들의 눈높이는 한껏 더 높아져있었다. 이미 ‘매트릭스’시리즈 등의 영상혁명을 경험했던 이들에게 ‘블러드’가 보여주는 특수효과는 실소가 나올 수 있는 수준이다. 전지현이 뱀파이어를 칼로 두 동강 내는 등 나름대로 잔인한 장면들을 끼워 넣었지만, 역시 충격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 순간 멈춤 동작을 강조한 전지현의 ‘블더드’ 속 액션은 안타깝게도 비디오게임이 연상된다. 아니 냉정하게 평하자면 ‘바이오하자드’, ‘언차티드’ 등 대작 비디오게임 속 동영상만도 못한 완성도다. ‘데드 스페이스’같은 잔인한 호러게임에 익숙한 미국 관객들은 ‘블러드’를 보고 코웃음을 칠 수 있다.
뻣뻣한 전지현은 영화 내내 무표정한 얼굴로 일관한다. 원래는 차가운 매력의 ‘사야’캐릭터를 강조하려는 의도였겠지만, 실제로는 컴퓨터그래픽으로 그려 넣은 인형처럼 보이고 말았다. 더구나 전지현은 모든 대사를 영어로 한다. 너무 발음에 집중한 나머지 감정이 묻어나오지 않는다. ‘블러드’가 실패한다면 이것은 90% 이상 주인공 전지현의 탓이다. 우리는 왜 그렇게 전지현에 열광했을까. 영화 ‘블러드’는 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3편까지 나올 예정이라니, 정말 ‘오 마이 갓!’이다.
스포츠월드 김용호 기자 cassel@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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