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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민 서양화가 |
저기 마당 한쪽 햇살 좋은 흙 담 아래 평소 장난스럽기 그지없는 강아지가 졸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한 동안 조용했었다. 그때 봄바람에 얹혀 짧게 흘러온 미세한 스침. 엽서 한 장이 와 있었다. 핑크와 레드, 하이얀 꽃 잎 들이 창공을 하늘거리듯 흐른다.
누가 보내 온 것일까. 이 한적한 지방의 조그마한 한옥 낮은 담 너머로. 그림 아래 자그마하게 쓴 한 줄. 봄이 오면 당신에게 이 꽃 한 다발은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2
만해 한용운의 시조 ‘춘서(春書)’
〈따슨 빛 등에 지고/유마경을 읽노라니 /가볍게 나는 꽃이/글자를 가리운다 /구태여 꽃밑 글자 읽어 무삼하리오.〉
진리는 간명하다. 화폭의 한 점이 우주를 담아내듯 나는 꽃이 글자를 가리울 때 어떤 상상의 공간에 머물까. 여백의 사고란 이렇게 힘이 있음을. 이 봄. 동여맨 팍팍한 마음의 때를 벗어던지고 상큼하게 심호흡 한번 크게 해야겠다.
#3
나의 연작시리즈 ‘조제핀의 달콤한 꿈’은 화가인 내가 만들어 낸 상상의 언어이다. 더 부연하자면 누구에게나 있을 ‘지금 생(生)의 절정’의 눈부시게 시린 감미로운 영상을 담아내고 싶었다.
사람의 가슴속에는 누구에게나 꿈이 달콤하게 자리하고 있다. 봄날, 목에 두른 보드라운 스카프의 꽃잎 무늬가 가슴속 열정의 순수되어 아름다운 결이 되는 꿈도 있고 또 나풀거리는 꽃잎 아래 역동적 열정이 정지와 고요의 이미지로 남아있는 고귀한 여린 싹이 있기도 하다. 그 꽃잎 아래 아련한 봉오리까지도 회화의 세계에 응축해 은유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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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핀의 달콤한 꿈 |
#4
시·공을 넘나드는 달콤한 꿈. 그 상상력은 새로움의 창조를 위한 긍정의 변화로 나는 여긴다. 계절은 벌써 남도에서부터 봄의 전령이 소식을 들고 오고 있는 듯하다. 겨우내 얼었던 계곡의 물, 그 맑은 물결이 녹아 맘 속 흘러들어오면 이 봄에도 어김없이 우리 맘 속 꽃이 피어날 것이다.
내 화폭의 꽃잎들도 잃어버린다는 것, 멀어져 간다는 것, 보내야 하는 것들의 아픔을 적신 사람들 그 마음의 그릇에 살짝 꽃잎으로 감싸 아픔을 가릴 수 있다면….
그래서 나의 꽃잎들은 늘 어떤 색채를 그려놓아야 할는지에 대한 나의 되물음이기도 하다.
이형민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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