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추석에도 일부 지자체에서 ‘소 힘겨루기’ 대회를 강행키로 하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에 재차 불이 붙었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는 주장, 동물복지를 추구하는 현 시대에 역행하는 동물학대라는 주장이 수년째 평행선을 달린다.
4일 경남도 등에 따르면 의령군은 오는 7~9일, 진주시는 8~12일에 각 지역의 소 힘겨루기 상설경기장에서 대회를 연다. 소 힘겨루기는 싸움소 두 마리가 뿔을 맞대고 힘의 우열을 가리는 것으로, 대중에게는 ‘소싸움’이라는 표현이 익숙하다. 계속 물러나거나 회피하는 소가 패배한다. 보통 30분 이하로 제한되는 경기시간 동안 결판이 나지 않으면 5명 심판 중 3명의 선택을 받는 소가 승리하는 판정승 개념도 있다.
농경사회를 이룬 한반도에서 오래 전부터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을 것으로 예상되는 소 힘겨루기 대회는 경북 청도군, 의령, 진주, 창원, 창녕 같은 영남 지방에서 오늘날까지 정기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21세기를 전후해 동물권에 관한 인식이 조금씩 높아지면서 소 힘겨루기가 동물학대라는 시선도 늘어나고 있다. 인간의 볼거리를 위해서 소끼리 원치 않는 싸움을 부추기며, 경기 중 출혈 등 외상을 입으며, 싸움소로 키우는 훈련 과정에서도 가혹행위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동물보호단체들도 소싸움 대회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15일에도 동물권행동 카라, 동물자유연대 등 단체가 녹색당, 기본소득당 등 정당 등과 함께 청도군청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앞서 청도군은 올해 소싸움 대회 예산을 편성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나 이후 1차 추경에서 소싸움대회 예산 2억9500만원을 배정하자 단체들이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보다 앞선 7월에는 국회 전자청원에 ‘동물 학대, 소싸움 전면 금지 및 관련 조례 폐지 요청에 관한 청원’이 올라와 5만명 이상 동의를 얻었다. 해당 청원인은 “소싸움에 동원되는 소들은 반복적인 훈련과 강제적 충돌 속에서 신체적 부상과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며 “폭력의 전통이 ‘문화재’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학대의 행위가 ‘관광 자원’이라는 이름으로 세금까지 지원받고 있다”고 일갈했다.

이 같은 분위기 아래 소싸움 대회를 중지한 지자체도 생기고 있다. 경남 함안군과 김해시가 대표적이다. 특히 2년마다 전국대회를 치른 함안군은 2022년을 끝으로 경기를 열지 않고 있다. 군 관계자는 “동물 학대 논란과 사행성에 대한 지적이 이어져 왔고, 상설경기장도 없는 지역 특성상 대회 때마다 경기장을 임시로 설치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로 실익이 낮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대회를 유지 중인 지자체에서도 본래 명칭인 소싸움 대회를 소 힘겨루기 대회로 변경했다. 의령군에 본부를 둔 한국민속소싸움협회도 2022년 대한민속소힘겨루기협회로 이름을 바꿨다.
이들 지자체와 협회는 소 힘겨루기 대회를 전통문화 보존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수단으로 봐야한다는 입장이다. 협회 의령군지회 관계자는 “대회가 1800년대부터 추석마다 열렸고, 실제로도 민속놀이와 같은 무형유산 역할을 했다”며 “요즘 대회는 싸움소가 최대한 다치지 않도록 한다. 소뿔을 날카롭게 깎는 등 부상 우려가 높은 행위를 금지하고, 싸움소가 힘에서 밀려 등을 보이면 경기가 그대로 끝나도록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도내 대회를 개최하는 한 지자체 관계자는 “소 힘겨루기 대회로 지역 방문객 숫자가 늘어나면서 지역 농특산물 판매가 증가하는 등 주변 상권이 살아난다”며 “법적으로 금지된 대회가 아닌 만큼 싸움소가 안전하게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해당 지자체 관계자의 말처럼 소 힘겨루기 대회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2002년 제정된 전통 소싸움 경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소싸움은 동물보호법 제10조 2항 3호(도박·광고·오락·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를 적용하지 않는다. 소싸움 경기 투표권의 발매에 관해서도 사행행위 등 규제 및 처벌 특례법을 적용하지 않는다. 해당 조항에 따라 소싸움은 법적으로는 동물학대도 아니고 불법 사행성 게임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동물보호단체와 동물애호가는 해당 법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는 입장이다. 아울러 지역 관광의 측면에서도 일부 지차체의 상설 소싸움경기장이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지난달 청도시청 앞 기자회견을 가진 동물보호단체들도 “지방공기업인 청도공영사업공사가 운영하는 청도 상설 소싸움경기장은 2011년 개장 이후 매년 막대한 적자를 기록했다”고 꼬집었다. 이들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연평균 약 70억원 보조금이 투입됐으나, 2021년 10억원이 넘는 적자가 발생했다. 지난해의 경우 96억원 보조금에도 순수익은 5900만원에 그쳤다.
이들 단체들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동물을 착취하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의 적자 운영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소싸움 대회 및 상설경기장 폐지를 촉구한 바 있다.
박재림 기자 jam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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