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당신의 최애 뮤지컬이 될 ‘노트르담 드 파리’

1831년 어느 날 빅토르 위고는 노트르담 대성당 벽면에서 희미하게 새겨진 그리스어 단어 하나를 발견했다. ‘아낭케(ΑΝΆΓΚΗ)’. 숙명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작가에게는 한 인간의 비극적 운명을 압축한 메시지로 다가왔다. 그로부터 19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숙명’의 이야기가 무대에 오르고 있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고전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15세기 파리를 배경으로 자유로운 집시 소녀 에스메랄다를 둘러싼 세 남성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다. 흉측한 외모 뒤 순수함을 간직한 종지기 콰지모도, 평생을 신에게 헌신한 대성당의 주교 프롤로, 아름다운 것은 외모 뿐인 파리 근위대장 페뷔스는 각기 순정, 집착, 욕망을 보여준다. 

 

인간의 욕망과 편견·사회 부조리를 그렸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품고 있는 15세기 프랑스의 모습은 놀랍도록 현재와 닮아있다. 백년전쟁과 흑사병의 여파로 혼란에 빠진 사회, 심화되는 계층 갈등, 기득권층의 타락과 민중에 대한 억압. 위고가 그려낸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기는 급변하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생생한 현실감을 준다.

 

특히 마녀라는 누명을 쓰고 돌팔매를 맞는 에스메랄다의 모습에서 우리는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적 편견과 집단 광기를 목격한다. 프롤로가 보여주는 권력의 이중성과 페뷔스의 무책임한 욕망은 오늘날에도 반복되는 인간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 작품이 20년간 한국 관객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캐릭터의 힘이다. 곱추 콰지모도는 진정한 사랑과 헌신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에스메랄다는 평범한 비극의 여주인공이 아닌 자유와 순수함을 지키려는 강인한 여성으로 재해석됐다.

 

작품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 사회 전체의 운명으로 확장된다. 콰지모도의 외로움과 헌신은 외모로 판단받는 현대사회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묻는다. 에스메랄다의 희생과 자유로운 영혼은 편견과 억압에 맞서는 개인의 존엄성을 상징한다. 그리고 프롤로의 추락은 절대 권력이 어떻게 인간을 타락시키는지를 보여준다. 후반부로 갈수록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음악과 안무다. 집시들의 역동적인 춤사위에서 느껴지는 생명력, 콰지모도가 종을 치며 부르는 애절한 선율, 그리고 민중들의 힘찬 합창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다. 그 어떤 뮤지컬보다 댄서의 비중이 높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압도적인 피지컬과 움직임, 표정연기가 눈을 사로잡는다. 모든 넘버마다 박수가 나오는 까닭 중 하나다.

 

비극으로 끝나는 노트르담 드 파리다. 하지만 숙명을 피할 수 없었던 인물들의 이야기는 결국 인간이 짊어져야 할 운명의 무게와 그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시대를 초월한 고전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오는 27일로 서울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마무리한 뒤 대구, 부산, 세종 등 투어를 이어간다.



최정아 기자 cccjjjaaa@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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