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걸그룹으로 최정상 인기를 누린 함은정은 대중에게 친숙한 스타지만 배우로서는 또 다른 이미지를 쌓아오고 있다. 특정 장르나 캐릭터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작품마다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며 배우 함은정의 정체성을 확실히 굳혀가는 중이다.
함은정은 지난 19일 종영한 일일드라마 여왕의 집(KBS2)에서 주인공 강재인을 연기하며 작품을 이끌었다. 강재인은 극 중 YL그룹 디자인팀의 최연소 리더이자 재벌가의 딸로 태어나 많은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받는 삶을 살지만 남편의 불륜 등 충격적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고 자신을 배신한 사람들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강렬한 연기 변신이 호평을 받은 가운데 부상 투혼까지 발휘했다. 작품 종영 전 열린 인터뷰에서 함은정은 목발을 짚고 등장했다. 걸그룹 티아라 활동 당시 다쳤던 무릎이 또 말썽이었다. 촬영 종료를 한 달여 앞두고 길에서 미끄러져 무릎 인대가 파열됐다. 함은정은 “배우가 다쳤다는 걸 알고 드라마를 보면 몰입을 못하지 않나. 007 작전처럼 숨기려고 노력하면서 티 안 나게 촬영을 마쳤다”고 돌아봤다.
100부작이라는 긴 호흡의 대장정을 무사히 마쳤다. 함은정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었다. 끝나서 쉴 수 있어서 몸은 좋지만 연기하는 게 재밌었던 강재인으로 더 이상 분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고 종영 소감을 밝혔다. 작품과 강재인의 매력에 대해 함은정은 “전개가 워낙 빠르고 한 장면 안에 한 가지 감정만 있는 게 아니라 두세 가지 감정이 담겼다. 속에 깔린 여러 가지 감정을 보여주는 대사들이 있다 보니까 연기하는 게 특히 어렵고 재밌었다”고 덧붙였다.

드라마는 최고 시청률 11.9%(97회)를 기록하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고 주연 함은정을 향한 연기 호평도 쏟아졌다. 주인공 강재인의 쉴 새 없이 변화하는 감정과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시청자가 몰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배우의 몫이 크다. 시청자 또한 이번 작품을 통해 함은정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댓글이나 실시간톡, 블로그 등 시청자 반응을 있는대로 다 찾아봤다는 함은정은 “시청자들은 제가 잘할 때 잘한다고 해 주시고 못할 때 못한다고 해 주신다. 그래서 신뢰하고 따른다”며 “‘늘었네’라는 말이 제일 좋았다. ‘옆에서 도와주는 동료들과 열심히 했더니 이런 얘기를 듣는구나’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더 신나게 열심히 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글이어서 좋았다”고 미소 지었다. 또 “악역 연기하면 재밌을 것 같다고 얘기해 주셔서 신선했다. 강재인이 마냥 선역이지만은 않고 왔다갔다 하는데 악역하면 잘할 것 같고 기대된다는 반응도 좋았다”고 덧붙였다.
함은정은 2021년 ‘속아도 꿈결’을 시작으로 ‘사랑의 꽈배기’(2022년)·‘수지맞은 우리’(2024년) 그리고 ‘여왕의 집’까지 연달아 KBS 일일드라마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함은정은 “작년에 ‘수지맞은 우리’가 끝나고 엄마와의 발리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몇 년동안 여행을 못 가서 가려 했는데 어머니의 작고가 있었다.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12월에 ‘여왕의 집’ 제안을 받고 준비해서 다시 촬영에 들어갔다. 못 쉰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다 상쇄될 정도로 선물 같은 작품이었다”고 작품을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시놉시스를 받았는데 너무 재밌더라. 복수극을 안 해봤는데 정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겠다는 개인적인 욕심이 있었다”고 출연을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연이어서 일일극을 하게 된 것을 두고는 “정말 감사했다”고 진심을 전했다. 함은정은 “한 방송국에서 드라마를 연이어서 한다는 게 그럼 4년째 연기대상 참석인데 상을 타든 안 타든 정말 감사하다. 어쨌든 일일드라마의 시스템을 잘 이해하는 배우로 봐주신 거니까 너무 감사했다”고 부연했다.
드라마는 욕망에 사로잡혔던 황기찬(박윤재)과 강세리(이가령)가 몰락하는 권선징악 엔딩으로 마무리됐다. 황기찬은 차에 치여 죽고 강세리는 살인미수 등의 죄로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돼 교도소에서 비참한 일상을 보낸다. 강재인은 YL그룹 차기 회장으로 추임됐고 김도윤(서준영)이라는 새 사랑을 찾았다.

함은정은 “개인적으로는 만족한다. 찾을 거 다 찾았다. 다만 아쉬운 건 엄마의 상태가 더 호전되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며 치매를 앓는 어머니 최자영(이상숙)의 상태에 안타까워 했다. 그러면서도 “집이나 재산을 되찾고 사랑도 어느 정도 되찾았다. 물론 아이와 남편이 있었던 따뜻하고 화목했던 가정의 모습은 없어졌지만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충분히 되찾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만족하는 결말”이라고 말했다.
엔딩 이후 강재인의 삶에 대해선 “회장직을 하면서 영향력 있는 경영인에도 들어가고 김도윤과 본격적인 연애를 해볼 것”이라고 그리며 “남편으로 맞이할지 말지 우당탕탕 하면서 알아가는 이야기가 재밌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티아라 멤버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1996년 아역 배우로 연예계에 발을 들인 함은정은 어느덧 데뷔 30주년을 앞두고 있다. 함은정은 “부끄러워서 정말 숨기고 싶다”고 웃었다. 그는 “역시 같이 하는 사람이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점점 더 깨닫게 되는 것 같다”고 지난 날을 돌아봤다.
이어 “잘 나가는 사람이든 못 나가는 사람이든 그 사람만의 능력치가 있는데 서로 장점만 모아서 작품을 만들면 확실히 좋은 시너지가 난다는 것을 아역 때부터 쭉 봐서 계속 느낀다. 그건 항상 변하지 않는 법칙처럼 있더라”며 “상대의 장점을 보려고 하고 모두를 사랑하면서 작업을 하면 확실히 좋은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좋은 얘기 듣고 싶은 게 사람의 솔직한 마음인데 티아라 활동을 하면서도 있었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아역부터 연예계 생활을 시작한 만큼 연차가 높은 대선배와도 어렵지 않게 지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함은정은 “선배님들이 ‘은정이가 아역부터 해서 그런지 선배들이랑 잘 지낸다’고 하시더라. 저는 그래서 일일드라마가 편하고 좋다. 선생님들이 계시고 다양한 연령대가 있는 게 오히려 마음이 더 편안하다. 아역 때부터 했던 게 역시 다 쓸모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고 웃었다.
지금도 티아라 멤버로서 해외 무대에 서고 있지만 국내에선 배우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배우로서의 만족도에 대해 함은정은 “만족도는 꽤 높다. 스스로에 대한 실력 말고 지금 제가 가고 있는 길로 생각하자면 80∼85점은 될 것 같다. 이렇게 연달아서 드라마에 특화된 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요즘 감개무량하고 감사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일일극으로만 한정된 이미지를 갖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을까. 함은정은 “연기나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명언이었다”고 재치있게 답했다. 자신도 그런 걱정을 했었다는 함은정은 “그 안에서도 자기 스타일대로 잘하는 사람이면 다른 데서도 캐스팅 되니까 연기나 잘하라는 게 엄마의 조언이었는데 그게 벌써 몇 년 전”이라면서 “이번에 정말 깨달았다. 김애란·이상숙·이보희 선생님의 연기를 보면서 저렇게 경지에 오르시는 선배님들이 많이 계신데 저런 연기를 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복수극을 무사히 마친 함은정은 “‘여왕의 집’에서 못했던 로코나 멜로를 해보고 싶다”고 바랐다. 엔딩에서 서준영과의 멜로 장면을 촬영할 당시 감독에게 연기 칭찬을 들었다는 함은정은 “별 장면이 아니었는데도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로코를 한 번 해봐야 되나 생각을 해봤다”면서도 “또 복수극을 하고 싶기도 하다. 복수극에도 종류가 다양하지 않나. 복수극으로 다지기를 해보고 싶기도 하다”고 연기 욕심을 드러냈다.
티아라 활동 계획에 대해선 “투어나 콘서트, 팬미팅 제의는 간간히 계속 들어오고 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다 선보이려고 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다”며 “그리고 한국 팬들도 잊지 않고 있다. 너무 해외만 가니까 한국 팬들이 서운해 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히트곡 메들리로 콘서트 해도 재밌을 것 같다”고 웃었다.
함은정은 “1020부터 3040세대까지 다 올 수 있지 않을까. 제 일일드라마를 보고 1020 팬들이 생겼다. 방송국이나 공항 앞에 애들이 온다. 어떻게 알았냐 하니까 일일드라마 보고 팬이 됐다고 하더라. 정말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뭐든 열심히 해야된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며 “일일드라마여도 재미있으면 보는구나. 시청자는 재밌으면 보고 재미없으면 채널을 돌린다. 그럼 진짜 한 신마다 더 신경 써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뿌듯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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