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현지시간)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하 ‘귀멸의 칼날 2’)’이 북미 시장에 상륙했다. 그리고 10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에서 당당 1위를 차지했다. 주말 3일간 흥행수익은 무려 7061만 달러. 일본 애니메이션으로서 기존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기록이었던 1999년 ‘극장판 포켓몬스터: 뮤츠의 역습(이하 ‘포켓몬스터 1’)’ 수익을 배 이상 스코어로 따돌린 셈이다. 당시 ‘포켓몬스터 1’은 첫 주말 3104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한편 ‘귀멸의 칼날 2’는 18일까지 북미 누적수익 8743만 달러를 기록하며 북미 비영어 영화 역대 흥행에서도 2위에 랭크됐다. 1위는 2000년 개봉한 이안 감독의 중국/대만/홍콩/미국 합작영화 ‘와호장룡’. 당시 북미서 총 1억2853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대단한 반향을 끌어냈다. 그리고 기존 2위가 앞선 ‘포켓몬스터 1’이다. 8574만 달러를 기록했다. ‘귀멸의 칼날 2’는 곧 ‘와호장룡’을 넘어 비영어 영화 북미 역대 흥행 1위 자리를 넘겨받으리라 예상된다. 그런데 다른 의견도 있다. 각각 1999년과 2000년, 사반세기 전에 기록된 ‘포켓 몬스터 1’과 ‘와호장룡’ 흥행 수치를 2025년 지금과 액면 그대로 비교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영화관 입장료 상승을 고려해야 한단 얘기다. 이를 따져보기 위해선 박스오피스 데이터베이스 더넘버스 자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더넘버스에 따르면 ‘포켓몬스터 1’이 북미 개봉한 1999년 평균 입장료는 5.08달러, 2000년은 5.39달러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2024년 수치를 가져오자면 지금은 11.31달러. 이를 감안해 ‘포켓몬스터 1’ 첫 주말 박스오피스 수치를 환산해 보면 지금 기준으로 6921만 달러, 즉 ‘귀멸의 칼날 2’ 기록에 거의 근접한다. 사실상 그때도 같은 규모 관객이 극장을 찾았단 뜻이다. 한편 ‘와호장룡’ 총수익은 같은 방식으로 2억6991만 달러가 된다. 현재 예상되는 ‘귀멸의 칼날 2’ 총수익은 대략 1억7500만 달러 선. 서로 비교조차 힘들다.
이번 ‘귀멸의 칼날 2’ 북미 성과가 그리 대단치 않단 얘기가 아니다. 다만 ‘귀멸의 칼날 2’를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과 엮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시장에서 아시아 콘텐츠가 일제히 주류시장을 공략하는 새로운 흐름이란 식의 해석엔 문제가 있단 얘기다. 서구 대중문화시장 ‘아시아 붐’은 사반세기 전 이미 한 차례 왔었단 것. 엄밀히 그 첫 현상은 1960~70년대 오리엔탈리즘 열풍 당시겠지만, 제대로 산업화한 체계에서 생성된 붐은 2000년 전후가 처음이다.
2000년 전후 ‘아시아 붐’은, 위에서도 알 수 있듯, 홍콩과 일본이 주도했다. 대략 1996년부터 2006년 정도까지 10년 정도 지속된 흐름. 모든 건 성룡 주연 홍콩영화 ‘홍번구’가 1996년 북미 개봉해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면서 시작됐다. 곧 성룡을 비롯 이연걸, 양자경, 주윤 발 등 배우들이 일제히 미국 진출에 나섰고, 오우삼, 임영동, 서극 등 유명감독들도 미국서 맹활약할 채비를 갖췄다. 이른바 ‘홍콩영화 스타일’이 할리우드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흐름이 2000년 ‘와호장룡’에서 폭발, 역대 비영어 영화 흥행 기록을 세우고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 감독상 등 10개 부문 후보로 올라 4개 부문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어 2004년엔 늦깎이 북미 개봉한 장예모 감독의 중국/홍콩영화 ‘영웅’이 또다시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2006년이 되자 홍콩영화 ‘무간도’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리메이크한 ‘디파티드’가 흥행 성공과 함께 아카데미상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하기에 이른다.
한편 일본은 1998년부터 미국 TV 방영에 들어간 ‘포켓몬스터’를 위시로 ‘디지몬 어드벤처’ ‘유희왕’ 등 애니메이션이 차례로 미국 시장을 공략했고, 그렇게 1999년 ‘포켓몬스터 1’이 폭발적 흥행을 기록한다. 2001년이 되자 일본 애니메이션 자체에 대한 인정과 평가가 이뤄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과 미국 아카데미상 장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한편 비디오/DVD 2차 시장에선 ‘링’을 필두로 J호러 영화들이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링’과 ‘주온’ 미국판이 차례로 제작돼 흥행에 성공하며 나카다 히데오, 시미즈 다카시 등 J호러 감독들이 할리우드로 진출하는 흐름도 나왔다
. 큰 차원에선 한국도 분명 이 시기 서구 문화시장 ‘아시아 붐’ 수혜를 입었다. 한국영화가 처음 제대로 글로벌 무대에 서게 된 것이 딱 이때이기 때문.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한국영화사 상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게 2000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뒤 세계시장으로 스며든 게 2004년이다. 한국영화가 할리우드에서 처음 리메이크된 것도 ‘시월애’ 리메이크 ‘레이크 하우스’가 등장한 2006년. 나아가 당시 ‘아시아 붐’은 태국에까지 미쳐 무에타이 액션영화 ‘옹박’, 호러영화 ‘셔터’ 등이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는 광경을 연출했다. 아시아 전역이 어마어마한 기세였던 셈이다.
그런데 2000년을 전후로 한 이 ‘아시아 붐’은, 앞서 언급했듯, 최소 상업적 측면에선 10년 정도 지속되다 사그라지고 만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먼저 ‘아시아 붐’ 한 축이었던 홍콩영화계가 1997년 홍콩 반환 후 서서히 중국 시장으로 흡수되는 결말을 맞았다. 그러면서 조금씩 그 개성과 역량, 기반을 잃게 됐다. 또 다른 한 축 일본은 2000년대 경제 불황 여파 탓에 애니메이션계부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해 줄’ 마니아층 대상 콘텐츠로 집중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렇게 대중적 합의점을 잃고 마니아 콘텐츠화 양상으로 나아갔다. J호러 붐 역시 세대교체 실패로 더 진화하지 못하고 그 스타일만 세계 각국 호러영화에 흡수되며 흐지부지됐다.
더 근본적으론, 애니메이션을 포함해 대부분 영화 미디어 중심으로만 ‘아시아 붐’이 형성됐단 한계가 있었다. 전반적 문화 포위력이 약했단 뜻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아시아 붐’과는 양상이 다르다. 지금은 2010년대 중반부터 K팝을 중심으로 한 대중음악이 먼저 시동을 걸었고, 그 뒤로 OTT 등 온라인 기반 뉴미디어가 아시아 영상 콘텐츠 봇물을 터뜨린 분위기다. 대중 음악과 실사영화, 애니메이션, TV드라마, 일본 만화와 한국의 웹툰, 게임과 문학까지 실질적 전방위 문화 포위가 형성된 상황. 이러면 그리 쉽게 자리를 잃진 않는다.
그런데 잘 보면 두 차례 ‘아시아 붐’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새로운 미디어 시장이 막을 올리며 기반이 마련됐단 점이다. 첫 번째 붐은 1980년대 VCR 보급과 함께 비디오 렌탈시장이 열리며 시작됐다. 기존에 극장이 소화할 수 있던 물량보다 턱없이 많은 콘텐츠가 필요해지면서 그간 극장배급의 완강한 게이트키핑을 통과할 수 없었던 홍콩 액션영화, 일본 애니메이션, 그 밖에 각종 아시아 영상 콘텐츠가 비디오 렌탈시장을 통해 대규모로 서구시장에 유입됐다. 그렇게 어느 시점을 통과하자 아시아 영상 콘텐츠 자체의 위상도 달라졌다.
지금의 붐은, 다들 알다시피, 유튜브와 OTT 등 온라인 기반 뉴미디어 시장이 열리며 시작됐다. 그러다 보니 비디오시장 시절엔 거의 취급되지 않던 뮤직비디오가 국경을 넘나들며 유통돼 K팝 붐 밑거름이 됐고, SNS를 통해 그 팬덤 문화까지 정착됐다. 비디오시장 시절보다도 문턱이 낮아진 OTT 시대와 함께 영화와 애니메이션, TV 드라마 배급에도 새 국면이 열렸다. 온라인 특화 미디어 웹툰 등도 그렇게 자리를 굳혔다. 비디오카세트 안에 들어가 대량 유통될 수 있는 콘텐츠만 진입하던 때보다 훨씬 다양한 부문에 걸쳐 공략이 가능했던 이유다.
물론 이 전방위적 ‘아시아 붐’ 역시, 예전에도 그랬듯, 언젠간 끝나리라 예상하는 이들이 있다. 이것도 서구사회 PC(Political Correctness) 열풍에 크게 힘입은 현상이라 해석하는 측에서 특히 그렇다. 그런 정치 사회적 기류는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단 것이다. 아예 틀린 얘긴 아니지만, 곧바로 그런 기류 없이도 시장 돌파에 성공했던 2000년 전후 ‘아시아 붐’은 그럼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으로 넘어가게 된다. 지금만 바라봐선 예단이 불가하단 뜻이다. ‘귀멸의 칼날 2’ 북미 일대 흥행이, 또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현상적 인기가 다르게 읽히는 이유다. ‘포켓몬스터 1’과 ‘와호장룡’을 굳이 다시 끌어올려 함께 놓고 바라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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