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들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뜻의 3포 세대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은 2010년대 초반이다. 극심한 불황에 취업난까지 겹치자 청년층의 울분이 고조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취업,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한다는 뜻의 N포 세대로 확장됐다.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듯 혼인율은 끝 모를 하락세를 보였고 이는 곧 출산율 급락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인구 소멸을 야기하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십 수년간 고심했고 혼인∙출산 지원을 꾸준히 확대해왔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소가 빛을 발해 최근 혼인율과 출산율이 반등하는 기염을 토했다. 최근 백화점에서 고가의 혼수 가전∙가구와 주얼리 매출이 늘고 자녀와 조카를 위해 지출을 아끼지 않는 수요를 공략한 키즈 산업도 활성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책 지원을 다각화한 것이 주효했다면서도 현 시점에서 낙관하기는 이르다는 데 공감대를 모았다. 이들은 훈풍을 이어가려면 정책 지원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엔데믹∙에코붐∙정책 효과 복합적 근본적 대책 변화해야
통계청에 따르면 연도별 혼인건수는 2020년 21만3502건에서 2021년 19만2507건으로 하락했고 2022년에는 19만1690건으로 더 내려갔다. 2023년에는 19만3657건으로 소폭 오르더니 지난해 22만2412명으로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태훈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혼인건수와 출산이 동시에 증가한 배경에 대해 흥미로운 설명을 내놨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혼외 출산이 적기 때문에 혼인과 출산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정부와 각 지자체의 지원 필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출산 지원이 많이 확대됐고 지자체 중 대전시의 경우 혼인 축하금을 지급하는 등 신혼부부에 대해서도 지원을 하고 있다”고 지자체의 혼인 및 출산 지원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역시 “젊은 세대에서 비용 등 문제로 결혼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미니 웨딩을 선택하는 등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경우가 늘었고 결혼 장려금 등 제도가 생기면서 나오니 부담감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저출산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혼인율 증가를 위한 정부와 사회의 노력이 있었다”며 “혼인율이 증가하려면 주거, 직장, 아이 양육 문제 등이 체감적으로 나아졌다는 느낌이 들도록 해야 하는데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이러한 여건이 개선됐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의 반등 추세에 낙관해선 안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임 교수는 “오히려 경기는 더 어려워졌고 취업도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착시효과라는 생각이 든다”며 “근본적으로 정책이 변화하지 않으면 이 착시효과는 2~3년 내 끝나고 다시 저출산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아이 낳고 기르기 편한 바탕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혼인∙출산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 꾸준히 확대돼 온 점을 인정하면서도, 앞으로 지원 수준을 더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임 교수는 “근본적으로 변화하려면 경기가 회복하고 주거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며 “일단 혼인율이 반등한 점은 칭찬하지만, 아직은 언 발에 오줌 누는 정도의 효과라고 생각하며, 아이를 낳아서 키울 수 있는 기반을 탄탄하게 만들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 교수는 “합계출산율이 0.76명이라는 것은 인구의 재생산이 안 되면서 생산가능인구 자체가 부족해진다는 뜻”이라며 “생산가능인구가 있어야 소비가 이뤄지고 제품 생산도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복지 정책은 비용이 아닌 투자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어린이집, 유치원 등 교육비를 지원하는 등 이전보다는 혜택이 많이 늘어났지만, 앞으로도 더 지속적으로 확대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도 생산인구가 줄어들면 경제성장률이 둔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며, 정부 차원의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학 이론인 ‘양과 질의 상충관계’를 들어 “자녀에 대한 질적인 투자를 늘리기 위해 자녀 수를 적게 가지려는 상충관계가 있다”며 “실제로 추세를 보면 부부들의 소득∙교육 수준이 계속 올라가고 있기 때문에 사교육, 그리고 양육과 관련된 다양한 것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해결책에 대해서는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는 현금 지원을 확대할 수 있겠고, 장기적으로는 일 가정 양립을 확립해야 한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정부 정책으로 풀어줘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성세대에 유리하게 설정된 재정구조도 미래세대를 위해 밸런스를 맞춰줄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화연 기자 h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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