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 잘 날 없는 한국 배구, 또 큼지막한 악재가 떨어졌다. 한국배구연맹(KOVO)의 졸속 행정에서 비롯된 2025 여수·NH농협컵 프로배구대회(KOVO컵) 파행이다. 개막일에 외인 선수들이 출전할 수 없다는 통보가 전해진 건 초탄에 불과했다. 첫 경기가 끝나자 더는 일정을 이어갈 수 없다며 대회가 중단됐다. 선수단, 관계자, 팬 모두 닭 쫓던 개가 됐다. 끝이 아니다. 한밤중에 사상 최초의 KOVO컵 취소가 발표됐다가, 9시간 후에 대회 재개가 번복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줄을 이었다.
궁금증은 하나다. ‘왜’ 이런 촌극이 벌어졌는지다. KOVO는 국제배구연맹(FIVB)과의 더딘 소통을 변명으로 내밀었다. 일련의 사태 이후 KOVO 관계자는 “FIVB 측에서 갑작스럽게 남자부 세계선수권 대회와 기간이 겹치는 KOVO컵을 승인할 수 없다고 연락이 왔다. 최악의 상황을 막고자 꾸준히 접촉했지만, FIVB측과 빠르게 연락을 주고받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그 과정 때문에 예상치 못한 대회 취소와 재개 번복 등이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얼핏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지만,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FIVB의 지적이 너무 늦었다는 뉘앙스의 변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FIVB는 지난해 말에 이미 국제대회 기간과 각국의 클럽 대회 기간을 명확히 구분 지었다. 특히 이번 세계선수권을 두고는 ‘세계선수권이 끝난 후 3주 이상 휴식기를 갖고 각국 리그 경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지키기만 하면 됐다. 규정을 어긴 것에 대한 지적이 늦어서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는 변명은 본질을 흐리는 궤변이다. FIVB의 기조가 과거와 달리 규정을 엄격하게 지키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변명도 받아들일 수 없다. 제재가 허술했다고 해서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 정당해질 수는 없는 법이다.
남자부 모 구단 고위 관계자는 “KOVO컵 정상개최에 대한 의문은 일찍 제기됐다. 처음엔 FIVB의 공지가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미 나와 있던 상황이었다. KOVO가 확인 절차를 밟을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고 꼬집었다.

KOVO의 안일한 자체 해석도 심각한 문제다. KOVO컵을 일종의 이벤트 대회라고 판단해 FIVB가 세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넘겨짚었다. 대회 정상 진행 여부가 걸린 중대한 문제를 자의적으로 판단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크나큰 실책이다.
우여곡절 끝에 진행중인 KOVO컵은 이미 반쪽짜리 대회가 됐다. 이 시기에 나오는 뻔한 변명과 사과는 의미가 없다. 문제 재발을 막기 위한 명확한 책임 소재 규명 그리고 변화가 필요한 때다.
FIVB와 직접 소통할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진다. 이번 사태에서 KOVO는 대한배구협회를 통해 FIVB와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나눠야 했다. 한시가 급박했던 문제에 공허한 기다림의 시간이 끼어들었던 이유다. KOVO는 “FIVB가 원래 각국 대표 1개 단체하고만 소통하는 걸 지침으로 삼고 있어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문제가 불거지고서야 신무철 KOVO 사무총장이 세계선수권이 열리는 필리핀 마닐라로 부랴부랴 날아가 파비오 아제베도 FIVB 회장을 직접 만났다. 이마저도 아시아배구연맹(AVC) 회장이 다리 역할을 해줬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KOVO의 국제적 연결성이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KOVO 관계자는 “이번 만남을 통해 FIVB와 향후 직접 소통을 약속했다. 대한배구협회와 KOVO가 나뉘어져 있는 한국의 특별한 상황을 감안해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방법을 찾았다는 사실은 다행이다. 그러나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서야 무언가가 굴러가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고 있자면, 모든 문제가 일찌감치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는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KOVO를 향해 피어난 실망과 불신, 결국 이걸 지우는 것도 KOVO 자신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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